핵연료 잔해 3g 회수에 성공… 후쿠시마 원전 폐쇄 첫발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4. 11. 9.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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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사고 난 원전 내부 첫 취재

지난 6일 오후 1시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원전 5호기 내부에 입성했다. 여러 개의 두꺼운 철문을 거친 다음에야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가니 탁 트인 옥상 같은 공간이 나왔다. 수영장 같은 넓은 수조(水槽·pool)엔 맑은 물이 담겼고, 이 안에 길다란 철제봉 수백 개가 청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른바 사용후연료풀(SFP)에 담긴 핵연료봉들이다. 도쿄전력 관계자는 “이 핵연료봉은 폐로 작업이 진행되면서 다른 곳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6일 도쿄전력이 공개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원전 2호기의 핵연료 잔해 채취 작업 과정. 도쿄전력은 이날 처음으로 극소량의 핵연료 잔해 회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길이 22m의 파이프 끝에 달린 도구를 원격으로 움직여 원자로 안의 핵연료 잔해를 긁어내는 모습. /AP 연합뉴스

수조 옆엔 직경 10m가 넘는 60cm 두께의 둥근 콘크리트 판이 3중으로 겹겹이 싸인 게 보였다. 이 바로 밑에 원자력 압력 용기(RPV)가 있다. 원자력 압력 용기는 핵분열이 일어나는 원자로 본체다. 현재는 쇠사슬로 봉인됐다. 사고가 터진 후쿠시마 제1원전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모니터링을 받고 있다. 주변을 보니 여러 곳에 모니터링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

일본 도쿄전력이 13년 전 원전 노심 용융 사고가 터졌던 후쿠시마 원전의 내부를 본지에 공개했다. 노심 용융은 원자로의 핵연료가 과열 등으로 녹어내리는 현상(멜트다운·Meltdown)이다. 본래 사고가 난 원전 내부에 해외 언론의 출입을 허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고 난 원전의 외부 모습만 공개했다.

도쿄전력은 이날 후쿠시마 사고 원전의 원자로 안에 있던 극소량의 핵연료 잔해(데브리) 3g을 꺼내 회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약 8조엔(약 72조6000억원)을 투입해 오염수 방류와 핵연료 잔해 제거 작업을 거쳐 후쿠시마 사고 원전의 폐로를 2051년까지 마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도쿄전력 측은 “후쿠시마 원전 폐로는 일본뿐 아니라, 주변 국가에도 중요한 환경 이슈인 만큼, 앞으로도 언론 등을 통해 원전 폐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내부를 공개한 원전은 5호기로, 13년 전 수소 폭발과 함께 핵연료가 녹아 원자력 압력 용기 밖으로 흘러내린 2호기와 똑같은 구조를 지녔다. 2호기는 원전 바닥에 237t의 핵연료 잔해가 그대로 방치된 상태여서, 사람이 출입할 수 없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으로 14~15m의 쓰나미가 덮치면서 1~3호기는 수소 폭발과 함께 노심 용융을 겪었지만, 다행히 예비 전력이 버텨준 덕분에 5·6호기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의 1·2·3·4·5·6호기를 모두 폐로할 계획으로, 이것이 성공한다면 핵연료가 녹은 사고 원전이 안전하게 폐로 처리된 첫 사례가 된다.

‘삐, 삐.’ 왼쪽 가슴에 착용한 방사능 측정기가 갑자기 경고음을 냈다. 원자로 압력 용기의 바로 밑인 페디스털(원자로의 토대)에 들어갔을 때다. 5분쯤 지나 다시 ‘삐’ 경고음을 냈다. 피폭량이 일정 수준을 넘었으니 주의하라는 신호다. 네 차례 이상 울리면 서둘러 해당 공간을 벗어나야 한다.

페디스털에서 위를 올려보니 수백 개가 넘는 핵연료 제어봉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것이 보였다. 사고 이후 13년간 가동을 안 한 탓에 군데군데엔 녹이 슬었다. 철망으로 된 페디스털의 바닥을 내려다보니 끝이 보이지 않게 아득했다. 도쿄전력 관계자는 “2호기의 경우엔 원자력 압력 용기에서 녹아내린 핵 연료가 주변 핵연료 제어봉과 같은 철제를 녹인 것이 아래 깊은 바닥으로 떨어져 고여 있는 상태”라고 했다.

후쿠시마 원전의 폐로를 위해선 크게 두 가지 작업이 필요하다. 먼저 2031년까지 1~6호기 사용후연료풀(수조)에 저장돼 있는 수천 개의 사용후연료봉을 이전해야 한다. 당초 도쿄전력은 2021년까지 사고 원전인 1~4호기의 3108개 핵연료를 모두 다른 곳으로 이전할 예정이었지만, 현재 3·4호기만 완료한 상태다. 1, 2호기는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

그다음으로는 녹은 핵연료와 주변 물질이 얽힌 핵연료 잔해물 880t(1~3호기)을 제거해야 하는데 이 작업이 쉽지 않다. 피폭의 위험성이 높아 모두 원격으로 진행해야 해서다. 도쿄전력은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22m 길이의 파이프를 개발했다. 끝엔 손톱 형태의 도구가 부착됐다. 이를 통해 바닥에 고인 핵연료 잔해를 떼어 내 원자로 격납 용기 밖으로 꺼낸 것이다. 이번에 회수에 성공한 3g의 핵연료 잔해는 밀폐 용기에 넣어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 등 4곳의 연구소로 옮겨진 뒤 분석 작업을 거치게 된다. 향후 880t의 잔해물을 모두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데 활용된다.

도쿄전력 관계자는 “이번에 회수에 성공한 핵연료 잔해물을 실제로 분석해서 우라늄과 금속이 어떤 비율로 섞였는지, 왜 그런 비율인지를 확인하면 앞으로 본격적으로 핵연료 잔해물 반출 계획을 세우는 데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그러나 여전히 폐로 작업이 쉽지 않고 더디게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후쿠시마 원전 폐로 작업을 2051년까지 완료하겠다는 도쿄전력의 목표는 비현실적”이라며 “녹은 핵연료를 꺼내는 데 100년 이상 걸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고 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최대 높이 15m의 쓰나미가 덮치면서 발생했다. 당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1~6호기 가운데 1~3호기의 전원이 끊기면서 원자로의 노심을 식힐 냉각수를 공급하지 못했고 결국 노심 용융으로 이어졌다. 녹은 핵연료가 흘러나오면서 주변 구조물 등과 뒤엉킨 잔해물 약 880t이 현재 1~3호기의 바닥에 고여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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