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리 내린 파월 “트럼프가 사임 요구해도 No 할 것”

김정훈 기자 2024. 11. 9.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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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대통령 권력투쟁 예고

“만약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사임을 요구하면, 물러날 겁니까?” 한 기자가 물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짧고 분명하게 답했다. “No(아니오).”

“법적으로 물러나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요?” 기자의 추가 질문에도 파월의 답은 한결같았다. “No(물러나지 않아도 됩니다).”

“대통령이 파월 당신을 해고하거나 끌어내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에도 파월은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줘 또박또박 말했다.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Not permitted under the law).”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연준은 지난 9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한 데 이어, 이날 0.25%포인트 추가 인하했다. /AFP 연합뉴스

미 연준이 9월에 이어 2회 연속으로 기준 금리를 낮춘 7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에선 금리가 아니라 파월의 임기가 더 큰 관심을 받았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당선 이틀 뒤에 나온 이 같은 (파월의) 발언은 미 중앙은행과 대통령 사이에 앞으로 일어날 권력투쟁을 예고한다”고 전했다.

◇파월, 트럼프 1기 때부터 대립

이날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 금리를 연 4.75~5%에서 4.5~4.75%로 0.25%포인트 낮췄다. 시장에선 이미 연준의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앞서 연준이 금리를 0.5%포인트 낮춘 9월에, 연내 금리 추가 인하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시장의 관심은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연준 의장과 그를 공개적으로 못마땅하게 대하는 트럼프 간의 갈등에 쏠렸다.

그래픽=이철원

애초 파월을 2018년 연준 의장으로 임명한 것은 트럼프였다. 트럼프는 공화당원인 파월이 자신의 저금리와 금융 규제 완화 기조를 따를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파월은 트럼프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임명된 그해 4차례에 걸쳐 기준 금리를 총 1%포인트 올렸다. 트럼프는 당시 ‘연준이 미쳤다(gone crazy)’ ‘파월은 멍청하다(clueless)’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지만, 그를 해임하지는 못했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는 파월을 연임시켰고, 파월의 임기는 2026년 5월까지로 연장됐다.

올해 대선에서 트럼프와 파월의 갈등은 재점화했다. 트럼프는 대선 전에 금리를 내리는 것은 민주당을 돕는 일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고 압박했고, 파월은 “우리는 아직 치러지지 않은 선거 결과를 염두에 두고 정책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맞받았다. 이후 트럼프는 연준 의장이 ‘한 달에 한 번 사무실에서 동전던지기를 해 금리를 결정하는 존재’로 조롱했지만, 결국 파월은 지난 9월 금리를 0.5%포인트 인하했다. 트럼프는 파월의 행위가 ‘정치적’이라며 분개했다.

◇연준 금리 인하 속도 늦춰질 듯

통상 집권당은 낮은 금리를 좋아한다. 낮은 금리로 소비가 늘고, 성장이 촉진되는 경향 때문이다. 대선 과정에서는 파월이 금리를 인하해 민주당 편을 들려 한다고 비판했던 트럼프도 재집권 후엔 저금리를 선호할 수 있다.

하지만 파월은 반대로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크다. 연준은 지난 9월에 내년 1%포인트 금리 추가 인하를 예고했는데, 예상한 만큼 금리가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강하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사라지지 않아, 데이터로 판단하는 연준이 금리 인하를 계획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공약도 금리 인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모든 나라에서 수입되는 물품에 관세 10~20%를 부과하고, 중국산에 60%를 매기겠다는 트럼프의 계획이 현실화하면 수입 물가 상승으로 추가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트럼플레이션(트럼프와 인플레이션을 합친 말)’은 금리 인상 요인이다.

당분간 트럼프와 파월의 신경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CNN은 이날 트럼프 측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가 파월의 남은 임기를 보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 진영에서는 차기 연준 의장을 미리 임명해 파월의 힘을 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트럼프의 경제 고문 스콧 베센트는 배런스 인터뷰에서 “파월의 임기가 1년 이상 남아 있을 때라도 의회가 차기 연준 의장 임명을 승인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입맛에 맞는 차기 의장을 미리 뽑아 놓고, 시장이 파월이 아닌 차기 의장의 발언에 더 움직이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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