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도 실내에서 키우는 개가 있었다

유석재 기자 2024. 11. 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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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문헌서 찾은 ‘개 이야기’

때로는 개가 사람보다 낫다

이종묵 엮음 | 돌베개 | 280쪽 | 1만8500원

실내에서 개를 키우는 문화가 조선 시대에도 없지는 않았다. 실학자 이규경은 이런 개들을 방구(房狗)라 기록하고 몇 가지 품종을 소개했다. 마카오에서 온 합팔구(哈叭狗)는 발발이라고도 부르는데 춤을 잘 추고 재주를 부리며 편지 전달 심부름도 한다. 베이징 토산품인 불림구(拂林狗)는 보통 개의 반 크기이며, 앞발이 원숭이처럼 긴 서번구(西番狗)는 빗자루로 청소까지 하며 고기를 주면 먹기 전후로 절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반려견 문화는 왕실 등 최상류층에 한정된 예외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 보통 조선 개들은 마당에서 생활했고 인분을 먹고 살았다. 똥개는 조선 개들의 디폴트값이었다. 이 때문에 ‘이런 개 같은’ ‘개만도 못한’ 같은 우리말에서 보듯 개는 아주 천한 존재였다. 그럼에도 몇몇 개들은 세상에서 칭송을 받았다.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 충구(忠狗), 꼿꼿한 절개를 지켜낸 열구(烈狗), 의로움으로 뭇 사람들을 감탄시킨 의구(義狗)의 이름을 지니고 말이다.

고려·조선 시대 옛 문헌에서 개에 대한 글 31편을 뽑아 번역한 뒤 더 분량이 많은 해설을 꼼꼼하게 달았지만,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는 겸손하게도 책에 ‘엮은이’로 이름을 적었다. 정작 본인은 개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여러 기록에 남은 ‘사람보다 나은 개’를 위해 책 한 권은 남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의 개와 고양이를 그린 작자 미상의 '묘견도(猫犬圖)'. 고려·조선 시대엔 충성스럽거나 의로운 행적으로 유명해진 개들을 기려 사람이 본받게 하는 일도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예를 들어 이런 이야기다. 영일 땅의 사또가 관아에 앉아 있는데 웬 개가 문으로 쓱 들어오더니 동쪽으로 쫓아내면 서쪽으로 다시 들어오기를 멈추지 않았다. ‘내버려두고 뭘 하는지 보자’ 했더니 뭔가 하소연하듯 슬프게 컹컹 짖었다. 그 개를 따라가 보니 제 집 방에 여주인이 피살된 채 쓰러져 있었다. 마을을 뒤진 끝에 그 개가 어떤 사람 앞에서 사납게 짖는 걸 볼 수 있었다. 수절하는 과부를 겁탈하려다 죽인 범인이었다.

오수의 개와 선산의 개는 술에 취해 길에서 자던 주인이 들불로 위험에 빠지자 제 몸에 물을 적셔 불을 끄고 힘이 다해 죽었다. 새끼 없는 개가 어미를 여읜 다른 개들을 거둬 젖을 먹인 일이 있었는가 하면, 어미 개의 원수를 갚은 개, 주인이 죽자 따라 죽은 개, 여럿이 다 모인 뒤에야 식사를 하는 예절 갖춘 개, 앞을 보지 못하는 주인을 인도하는 ‘조선의 안내견’, 심지어 불성(佛性)을 지닌 듯 몸에서 사리가 나온 개도 있었다. 사람들은 때로 이 개들의 무덤을 만들어 ‘의구총’ ‘효구총’이라 이름 짓고 기려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수록됐다.

책에서 소개하거나 인용한 옛글 대부분은 사람의 관점에서 개를 판단하며, 개를 빗대 오히려 사람을 꾸짖는다. 결국 충성과 의리가 사라진 세태를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개 이야기를 쓴 것이다. 같은 일화가 여러 글에서 반복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달라지기도 하고, 일부에선 옛 중국 문헌을 번안한 듯한 내용도 있다.

주목할 것은 그 속에서 드러나는 개에 대한 성찰이다. 정조 때 선비 박종경은 병이 나 겨우 잠자리에 들었을 때 개가 새벽까지 별 이유 없이 사납게 계속 짖어대자 하인을 불러 내일 아침에 잡으라고 했다. 조금 지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개가 짖는 것은 개의 본성이다. 저놈이 제 본성을 따르는데 내가 죽인다면 동물의 본성을 완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옳은 일이 아니다.’ 그리고 개를 용서하는 시를 지었다. 편자는 “사실은 개에게 용서를 구할 일”이라 말한다.

당시 선비들은 ‘훌륭한 개’들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사람과 동물은 모두 이(理)를 지니고 태어나 오상(五常·인의예지신)의 덕을 품고 있으나, 바른 기(氣)를 얻으면 사람이 되고 치우친 기를 얻으면 동물이 된다. 그러나 주인의 덕에 감화된 일부 동물, 특히 개에게서는 오상 중 일부가 제대로 발현된 올바른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람이 그런 개보다 못한 경우가 많이 보이니 혀를 찰 일이 아닌가?

과연 맞는 해석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인간을 잘 따르고 좀처럼 배신할 줄 모르는 개의 우직한 본성이야말로 ‘사람이 개만도 못하다’는 말을 낳게 한 원천이 아니었을까. 편자는 이렇게 말한다. “개를 사랑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개를 계기로 해서) 사람답지 못한 처신이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기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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