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박찬호와 전유성의 손편지

정영재 2024. 11. 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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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문화스포츠 에디터
지난 수요일(11월 6일) 출근해 보니 등기우편이 와 있었다. 겉봉엔 ‘Chan Ho Park’과 함께 주소지가 인쇄돼 있었다. 조심조심 겉봉을 뜯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 ㈜팀61 대표가 쓴 손편지가 들어 있었다.

‘이번에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고 기쁩니다. 긴 시간 인터뷰를 하면서 더 깊은 한국야구의 애정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제게 주신 친절과 배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기쁨과 보람이 함께 있으시길 바랍니다.
All the best.
박찬호 올림’

「 인터뷰 고맙다며 편지 보낸 레전드
답장 못 받아도 즐겁다는 개그 대부

그는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 했던 것 같다. 10월 3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박찬호 빌딩’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의 오랜 벗이자 멘토인 이태일 프레인 스포티즌 부사장(전 NC 다이노스 사장)과 함께였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입성 30주년을 맞아 두 사람이 『베터 앤 베터』(지와인)라는 책을 냈다. 인터뷰는 목요일인데 갓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은 수요일에 받았다. 350쪽이 넘는 책을 겨우 다 읽고 중요한 대목을 질문지에 옮겨 적었다.

우리는 ‘나 스스로를 알아가는 일’ ‘호기심과 꾸준함’ ‘즐거워야 견딜 수 있음’ ‘스포츠 리터러시(문해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 야구의 역사·현재·미래로 주제가 옮겨지면서 인터뷰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게 이어졌다. 인터뷰 내용은 중앙SUNDAY 11월 2~3일자 28면 ‘SUNDAY가 만난 사람’에 실렸다.

박찬호는 LA 다저스에 입단한 1994년부터 이태일 당시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와 손편지로 안부를 나누곤 했다. 박 대표는 “미국 가서 경기장 밖에서 콤플렉스가 많았다. 운동만 했지 아는 게 없고, 사람들과 대화할 때와 미디어 인터뷰를 할 때 내가 굉장히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그럴 때마다 이태일 기자님과 편지로 소통하면서 노하우를 얻고 격려도 받았다”고 했다.

그에게 손편지는 단순히 안부를 전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해 주는 도구였다. 그래서 은퇴 후에도 그는 손편지로 소통하는 걸 즐기는 것 같다.

박 대표가 내게 보낸 편지에는 날짜가 10월 31일로 적혀 있었다. 기사가 나오기 전, 인터뷰 당일에 쓴 거다. 기사 내용 이전에 인터뷰 자체가 즐겁고 유익했기에 그 고마움을 담아 편지를 썼다고 나는 이해했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10월 8일에는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에 사는 ‘개그계 대부’ 전유성 선생을 만났다. 거기서도 손편지 얘기가 나왔다. 전 선생은 몸이 안 좋아져서 즐기던 술을 끊었는데, 대신에 지인에게 손편지 쓰는 낙으로 산다고 했다. 답장을 많이 받았겠다고 묻자 “답장은 개뿔. 전화는 많이 받았죠. ‘편지지 코팅해 놓을게요’ ‘가보로 간직할게요’ 말들은 하는데 답장 보낸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라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힘들게 쓴 편지에 답장을 못 받으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냐고 다시 묻자 그는 “상관없어요. 뭔가를 쓴다는 건 늘 즐거운 일이니까요”라고 쿨하게 답했다. 세상을 뒤집어 놓았던 ‘전유성식 역발상’도 손편지를 포함한 ‘쓰기’를 통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나도 편지를 쓰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편지를 복사하기도 그렇고, 어디에 옮겨 놓을 수도 없으니 보내고 나면 사라져 버리는 거 아닌가.’ 지금이야 휴대폰으로 찰칵 찍어 놓으면 되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도 없었으니….

이제는 안다. 그 편지는 사라져 버린 게 아니라 받는 사람의 손에, 그리고 내 마음에 남아 있다는 것을. 전유성의 아이디어는, 박찬호의 명성은, 읽고 쓰는 속에서 무르익어 간다는 걸. 초간단 톡과 문자만 날아다니는 이 가벼운 세상 속에서, 손편지는 아직 살아 있다.

정영재 문화스포츠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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