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의 신호 ‘부모따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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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쪽 부모 멀리하도록 자녀 조종
결국 부모를 거부·증오하게 돼
이혼 가정에서 종종 볼 수 있어
법적조치 통한 개입으로 해결해야
」
부모따돌림은 한쪽 부모가 자녀의 심리를 조종해 다른 부모를 멀리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아동에 대한 중대한 정서적 학대 중 하나로 꼽힌다. 어느 한쪽 부모가 자녀에게 다른 부모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도록 하거나 부정적 감정을 심어주는 데서 시작된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자녀는 한쪽 부모를 경멸하고 거부하는 상태로 이어지기 쉽다.
부모따돌림의 결과는 학습화된 증오다. 아동 스스로의 감정이나 경험이 아니라, 따돌림을 주도하는 한쪽 부모의 세뇌와 조정의 결과로 다른 부모를 거부하고 증오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이혼 가정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따돌림을 주도하는 부모는 자녀를 독점하고 다른 부모와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방해한다. 그 결과 아동은 헤어진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숨기거나 포기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고 결국엔 한쪽 부모를 거부하거나 증오하게 된다.
정서적 학대는 신체적 학대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게 이뤄진다. 그러다 보니 피해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아동의 정신건강엔 신체적 학대 못지않은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서적 학대를 겪은 아동은 성인이 된 뒤에도 조절 능력이 저하되고 친밀한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또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기 증오와 우울증 등을 겪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한국에선 아직 부모따돌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식별과 대응 방안도 부재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따돌림은 이혼 과정에서 자녀 양육권을 확보하는 강력한 무기로 작동되고 있다. 부모따돌림을 통해 자녀를 통제하고 독점한 부모는 자녀와의 강한 연맹을 근거로 양육권을 주장한다. 심지어는 양육권을 지정받지 못한 경우에도 자녀를 보내 주지 않고 버티기도 한다.
부모따돌림에 대한 연구가 오래 진행된 서구 국가들은 다르다. 부모따돌림이 확인되면 법원이 직권으로 따돌림을 주도하는 부모와 자녀를 일정 기간 분리시키는 것은 물론, 부모에 대한 심리치료 명령을 내린다. 심할 경우 양육권도 박탈한다. 지금 양육하는 부모와 떨어지는 것보다 부모따돌림으로 다른 부모와 단절되는 게 아동에게 미칠 폐해가 더 크다는 판단에서다.
치료 프로그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녀가 한쪽 부모에게서 벗어나 다른 부모에게서도 보살핌을 받게 될 경우 긍정적인 유대관계가 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이런 개입 없이 계속 일방적으로 한쪽 부모의 지배에 놓이게 된 자녀는 다른 부모에 대한 적개심을 평생 지속하며 살아야만 했다. 부모따돌림으로 인한 이 같은 정서적 학대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도 많은 연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부모들이 사랑하는 자녀로부터 하루아침에 증오와 거부의 대상이 되고 생이별을 겪게 되면서 받는 충격은 부모따돌림의 또 다른 비극이다. 그렇다고 학대당하는 아이를 그냥 지켜만 볼 수는 없다.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이해해. 하지만 엄마 아빠는 결코 너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등의 말로 아이에게 다가가며 함께 버텨 내야만 한다. 더 이상 이기적인 부모 일방의 정서적 학대가 아이를 위한 것으로 치장돼서는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아동 학대 근절을 위한 적극적인 법적 조치와 개입·예방에 나서야 할 때다.
송미강 부모따돌림방지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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