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화가 걸작부터 잊혀졌던 명작까지

최하은 2024. 11. 9.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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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미술관: 이건희 홍라희 마스터피스
권근영 지음
중앙북스

‘세기의 기증’은 27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을 미술품 앞으로 불러 모았다. 무료인 전시에도 암표가 등장했고, 현장 예매 ‘오픈런’이 펼쳐지기도 했다. 2021년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2만 3000여 점의 소장품을 내놓은 이후 생겨난 풍경이다. 소장품에는 고미술, 즉 문화재는 물론 이중섭, 김환기를 비롯한 국내 거장부터 모네, 피카소 등의 명작이 포함됐다. 전국 곳곳에서 열린 전시는 광풍을 일으켰다.

방대한 컬렉션 속 작품 하나하나는 어떤 운명을 품고 있을까. 이 책은 한국의 근현대미술에 초점을 맞춰 이름난 대표작부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희귀작까지 들여다본다. 저자는 미술 전문 기자로 활동하며 한국 근현대미술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술사적 가치뿐 아니라 작품에 녹아있는 화가의 집념과 컬렉터의 집요함까지 놓치지 않는다. 소장품을 내놓은 유족은 ‘기증에 대해선 함구한다’는 입장. 저자는 아쉬움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화가와 그들의 가족, 컬렉션의 조력자들을 만나고 사료를 모아 퍼즐을 맞춰나갔다.

이중섭의 ‘황소’.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책의 제목처럼, 컬렉터 이건희·홍라희의 사적(私的)인 수집품들은 모두의 사랑을 받는 마스터피스가 됐다. 저자는 “우리 근현대미술사의 실마리를 풀어주는 사적(史的)인 컬렉션”이라고도 표현한다. 배울 수만 있다면 상대를 가리지 않았던 이건희, 한국 미술의 ‘취향’을 이끈 미술경영인 홍라희. 이들 부부가 어떻게 작품을 만나고 바라봤는지, 어디에 두고 감상했는지도 여러 일화로 엿볼 수 있다.

저자는 특히 10명의 미술가를 조명한다. ‘한국의 반 고흐’ 이중섭, ‘국민화가’ 박수근과 같이 익숙한 이들도 있지만 조금 낯선 이름과 작품도 등장한다. 책의 문을 여는 작가는 백남순(1904~1994), 잊혔던 전설의 여성 화가다. 해외파 부부 화가 1호로 꿈을 키웠지만, 식민지에 태어난 이들에게 낭만적인 삶은 허락되지 않았다. 작품 대부분이 전쟁통에 소실됐는데, 8폭 병풍 하나가 친구 결혼 선물로 보내진 덕에 살아남았다. 1936년작 ‘낙원’은 이건희 컬렉션으로 기증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꼼꼼한 취재로 엮어진 이 책의 이야기를 알고 작품을 마주하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 것이다.

현역 미술가들은 직접 만났다. 현대 수묵화의 거장 박대성 화백은 36년 전 이건희 회장과의 첫 만남을 들려준다. 왼손을 잃은 중졸의 40대 화가에게 존경을 표한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국내외에서 러브콜을 받는 숯의 예술가 이배 작가의 청도 작업실도 찾았다. 긴 무명 기간을 자기완성을 향한 노력으로 버텼다는 그의 말에서 삶의 지혜도 읽어낼 수 있다.

책장을 덮을 땐 한국 미술의 깊이와 아름다움이 다시 느껴질 것이다.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에 연재하며 뜨거운 반응을 부른 ‘이건희·홍라희 마스터피스’를 새롭게 구성해 책으로 엮었다.

최하은 기자 choi.ha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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