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조국, 해방 직후의 민낯

이후남 2024. 11. 9.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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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조선으로
이연식 지음
역사비평사

‘명월관 도색영화 상영 사건’은 이 책이 전하는 해방 직후 사회상 중에도 단연 흥미를 끄는 대목이다. 도색영화는 요즘 말로 포르노. 때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11월, 사업가를 자처하는 ‘김린이’라는 사람이 명월관에서 기생 4~5명을 거느린 가운데 20여 명과 술판을 벌이다가 도색영화를 틀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엄정한 수사 의지를 밝혔다. 한데 도색영화를 상영한 것으로 전해진 요정들 가운데 명월관 등 두 곳은 벌금과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일주일 뒤 영업을 재개했다. 다른 두 곳은 증거불충분으로 이런 제재조차 받지 않았다.

이 사건이 공분을 일으킨 것은 단지 풍기 문란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 밖에서는 전재민들이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여 울고 있는 한편에, 불야성을 이루는 모리배의 소굴인 요릿집에서 민족적 양심을 잃어버리고 그러한 추태를 연출한 피고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이듬해 재판에서 김린이 등 2명에게 벌금과 징역을 구형하며 검찰관이 한 말이다.

태극기가 걸려 있는 중앙청. 과거 조선총독부 건물로 정부 수립 이후 국회의사당·정부청사 등으로 쓰이다 1995년 철거됐다. [중앙포토]
당시 전재민(戰災民)이나 전재동포는 해방 직후 만주·일본을 비롯해 해외에서 귀환한 사람들과 한국전쟁 이전의 초기 월남민들을 한꺼번에 이르던 말. 책에 따르면 그 규모는 약 250만 명까지도 추정된다. 그 무렵 남한 인구는 1600만 명. 지은이는 당시 일본과 비교해도 남한의 유입 인구 비율과 사회적 충격이 더욱 컸음을 지적하며 “식민지 시대의 극심한 인구 유출이라는 식민 통치의 후유증이 해방 후 급격한 인구 증가라는 변형된 형태로 이어졌음을 의미한다”고 썼다.

그 실상을 이 책은 당시 언론에 보도된 사건들이나 당시 사람들이 훗날 기록에 남긴 여러 경험 등을 사료로 삼아 전한다. 해외 체류 조선인의 구호 및 귀환 방법은 미군정에 부임한 하지 중장의 첫 기자회견에서 나온 첫 질문이기도 했다. 곳곳에서 전재민 구호 활동과 이를 위한 단체들이 등장했고, 전재민들이 스스로 단체를 만들어 새 나라 건설에 기여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일본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던 조선인들은 우키시마호 사건 이후 한동안 작은 밀선을 빌려 귀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책에는 조선의 단체들이 구호선을 띄운 사례도 나온다.

하지만 갈수록 온정보다 비정한 현실이 두드러졌다. 지은이는 특히 당시의 주거 문제를 귀속재산 문제와 함께 조명한다. 귀속재산은 공공과 민간을 아울러 일본이나 일본인 소유였던 재산으로, 적산(敵産)이라고도 했다. 조선인 단체들의 주장이나 건의와 달리 미군정은 일본인의 재산을 동결하는 대신 1945년 9월 법령 2호를 통해 매매를 허용했다. 지은이는 이를 “욕망과 죄악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버린 것”이라고 비판한다. 책에 따르면, 문서위조·명의 도용 등을 통해 한 사람이 여러 건의 일본인 주택·점포·토지 등을 싹쓸이하는 ‘부동산 투기’가 나타났다. 당시 모리배(謀利輩,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만 꾀하는 사람이나 무리)나 간상배(奸商輩, 간사한 방법으로 부당한 이익을 보려는 장사치의 무리)는 사재기, 밀수, 암거래, 구호물품 횡령, 일본인 재산 매매 등으로 떼돈을 번 이들을 가리키곤 했다. 미군정은 뒤늦게 같은 해 12월 법령 33호를 통해 기존 매매 계약을 모두 무효화하고, 곧이어 귀속재산을 모두 군정청에서 접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명월관 도색영화 상영 사건이 터진 것은 이 무렵이다. 비리의 온상으로 여겨진 일본인 소유의 요정과 유곽만 아니라 조선인 소유의 유사 업소도 전재민에게 개방하라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을 때이자, 미군정과 서울시의 요정 개방 계획이 지지부진하던 때였다. 책에는 미군정의 가주택 건설 사업 등과 더불어 초대 서울특별시장이었던 김형민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조명한다. 그가 용산구 청파동에 여러 채의 적산가옥을 소유했었다는 것은 시장 퇴임 이후 뜻밖의 계기로 알려지는데, 지은이는 이를 일제강점기 용산과 신용산에 대한 얘기로도 이어간다.

이를 비롯해 이 책은 당시의 여러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사적 서술 대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펼쳐낸다. 지은이는 앞서 『조선을 떠나며』(2012)에서는 1945년 일본의 패전을 조선에서 맞은 일본인들을 다뤘다. 이번 신간은 그 자매편. 책의 말미에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와 더불어 해방 이후 일본에서 동포들이 처한 상황과 사할린 동포들의 상황까지 시야를 넓힌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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