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튜닝] 책과 기타

이지혜 기자 2024. 11. 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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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책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책 잘 안 읽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꽤 봤어도. 마찬가지로 음악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못 봤다. 그렇지만 음악을 안 듣는 사람도 거의 못 본 것 같다.

내 경험에 따르면, 책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대개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다. 내 주위 북에디터들은 힘든 책을 마감하고 나서 지친 얼굴로, “나는 책이 싫어, 정말 싫어”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일이 싫어, 정말 싫어”라는 말로 치환할 수 있겠다.

아무튼 음악은 쉽게 즐기고 가까이하면서도 책은 쉽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나는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뒤로 어쩐지 그 반대가 됐다. 마음 편히 음악을 즐기지 못하게 된 날이 많아졌다.

내 집은 대체로 고요하다. 초침 소리가 싫어 언제부턴가 시계도 두지 않았다. 음악을 틀어놓고 일하는 경우도 좀처럼 없다. 어느새 가사에 꽂혀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간혹 듣는 음악은 양방언이나 히사이시 조 같은 곡들이었다.

그런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밴드 음악을 찾아 듣고, 음악을 좀 듣다 보면 ‘아! 기타 연습해야지!’ 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연주 탓에 속이 상하고 그럴 때마다 내가 듣던 음악의 기타 소리와 비교하게 된다. 프로 뮤지션들과 이제 겨우 기타 배운 지 2년이 되어가는 나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만 그렇게 되는 걸 어쩌겠는가.

그 정도가 심한 날은 연습도 괴롭다. 내 손에서 만들어지는 불협화음이 나조차도 견디기 힘들어서다. 가뜩이나 배움 속도도 더딘데, 매일 연습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고 나를 다그친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조금이라도 연습해보려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문득 어떤 의무감에 사로잡혀 책을 읽는 사람들 모습이 떠올랐다. 1년에 300권, 500권씩 책 읽기를 목표로 한다거나, 한번 잡은 책은 반드시 끝까지 읽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을 볼 때면 나는 저렇게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내 책장엔 읽다 만 책이 수두룩하다. 책을 만드는 게 직업인지라 내 취향이 아니거나 재미가 없어도 참고자료 삼아 끝까지 어떻게든 보는 책도 물론 있다. 하지만 보다 재미없으면 바로 페이지를 넘기거나 훌쩍 건너뛰는 일도 많다. 아예 덮어버리고 다른 책을 잡거나 딴 일을 하는 일도 허다하다.

내게 책은 일일 때도 있고, 공부일 때도 있고, 수많은 놀거리 중 하나일 때도 있다. 덕분에 한번씩 지치긴 해도 20년 가까이 놓지 않고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듯하다.

기타를 배운 지 2년이 다 돼가는 시점에서 지금 내게 필요한 것도 어쩌면 기타를 즐기는 나만의 방식을 찾는 게 아닐까.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나 연습을 쉴 수는 없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연습이 잘 안 되는 날은 기타를 좀 내려놓기도 하면서. 그래야 오래 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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