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일극 집중체제, 제왕적 권위에 본인 도취…민심과는 자연히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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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등 돌린 민심 왜…허태열 전 비서실장의 진단
왜 대통령이 되면 민심과 멀어지는가. 우리 대통령제에 드리운 오랜 질문이다. 7일 윤석열 대통령의 140분간 대국민담화·회견 역시 같은 의문을 갖게 했다. 구중심처(九重深處)인 청와대 공간 탓이란 가설이 있었으나 훨씬 개방적·수평적인 ‘용산’에서도 같은 문제가 드러났다. 무엇이 문제인가.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한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을 만난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의 첫 7개월간 비서실장이었던 허태열 전 실장이다. 내무 관료로 풍부한 공직 경험과 정무 감각(3선 의원)을 갖춘 인물이다.
윤 대통령의 회견이 끝난 지 2시간여 만에 그와 서울 개포동 사무실에서 마주했다. 먼저 140분에 대해 물었다.
Q : 어떻게 보았나.
A : “국정 전반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육성으로 설명한 건 나쁠 건 없다. 그러나 오늘 회견이 있게 된 결정적 사유가 김건희 여사 문제, 명태균씨의 공천 개입에 대한 윤 대통령 부부와의 관계, 한동훈 대표를 포함한 당내 갈등 등인데 이번에 어느 정도 정리되는 계기가 되어야 했는데 그 점에선 많이 미흡했다고 본다.”
Q :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
A : “김 여사 문제에 대해 사과한 건 당연하다. 김 여사가 그런 일에 나서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대외활동을 안 하겠다는데 단서가 붙어있다. 또 대외활동의 창구가 될 제2부속실을 설치하면 공적 창구가 만들어지는 건데 그게 바로 대외활동 아닌가. 민원처리라며 제2부속실 이름으로 ‘기획재정부 소관이라 담당 국장 들어오라’고 하면 국정 관여가 될 게 아닌가. 부속실장 결재까지 했다니 논리적으로 안 맞는다. 야당 설득에 한계가 있는 사안인데 친윤·친한이 갈등하는 국민의힘만이라도 단일대오를 할 수 있게 여당과 한 대표가 주장하는 걸 윤 대통령이 흔쾌히 결단해야 했는데 못해 아쉬움이 든다.”
Q : 대통령이 되면 왜 이렇게 민심을 읽는데 서툴러지나.
A : “5년이란 임기가 보장되고 ‘다음 선거에 안 나갈 건데’가 기본적으로 마음에 자리 잡아 민심에 집중하지 않는다. 국회 출석도 안 하니 면전에서 곤란하게 하는 것도 없어 자연적으로 독선이 되고 권위주의가 된다. 주변에서도 ‘각하의 말씀이 옳다’ 모신다(※강준만은 “아부의 폭포수”라고 표현했다). 그런 문화가 왕조시대부터 내려왔고 유교 문화의 영향도 있다. 제왕은 무치(無恥)란 말도 있지 않나. 세상은 다원화됐고 국민 수준은 높아졌는데 대통령은 여전히 그런 문화 속에 살고 갇혀 있는 거다. 민심과 괴리되고 (대응이) 항상 한 발짝씩 늦다.”
A : “누구나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내포하는 독선과 권위주의를 틀 속에 갇히기 마련이다. 용산도 문만 두드리면 (대통령과) 만날 수 있나? 똑같은 거다. 우리 대통령제는 행정부 수반이면서 국가 원수의 지위까지 줬다. 사법·입법부도 구체적 업무에 관여하지 않지만 다 통할할 수 있다. 인사(人事)도 그렇다. 하다못해 경제단체장도 낙점받아 한다.”
Q :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가 어려웠던 이유는 뭔가.
A : “집무실보다는 관저에서 주로 계셨다. 여성 대통령이라 준비하고 나오기 어려웠던 탓인 듯하다. 내가 ‘보고서를 골백번 이상 봐도 대한민국 공무원 이상 보고서를 잘 쓰는 집단 없습니다. 보고서엔 이리 돼있지만 행간엔 이런 뜻이 있고 여기에 대해선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라고 많이 말했다. 누가 글로 다 쓰나.”
Q : 윤 대통령도 직언이 어렵다고 알려졌다.
A : “나는 윤 대통령을 잘 모른다. 다만 인생사를 검사적 판단, 흑백으로 보는 것 같다.”
Q : 지금은 김 여사가 논란이지만 박 전 대통령 때엔 최순실씨가 결국 문제가 됐다.
A : “최씨는 향단이 같은 역할인데 세월이 오래되다 보니 임의로워진 거다. 육영수 여사가 시중에 돌아가는 얘기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하듯, 최씨가 기탄없이 한 거다. 그게 국정농단인가.”
Q : 실세로 소문났고 로비 통로도 됐다.
A : “내가 박 전 대통령의 웬만한 친소관계를 다 아는데, 전혀 모르는 인사안이 나올 때면 내 마음에 ‘이거는 그쪽에서 하나 보다’ 하긴 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어떤 자리든 노리는 사람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한다. 허태열이나 ‘문고리’(박 전 대통령 비서그룹)가 안 통할 것 같으면 최씨한테 많이 갔을 거다.”
대통령 주변 음해·비방 어마어마해
Q : 오늘 윤 대통령도 비슷한 논리로 해명했다.
A : “그게 한국 문화다. 다만 민도가 높아지고 거야(巨野)이고 언론 환경도 달라지고 하니 새삼 문제가 불거지는 거다. 대통령이 세상이 달라졌다는 걸 알아야 한다.”
Q : 전국지표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19%가 나왔다.
A : “광우병 등 특별한 사건이 없는데 스멀스멀 떨어져 20% 아래로 간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거 대통령은 윤 대통령과 달리 무너지지 않은 지지층이 있었다. 정치도 알아서, 복구도 했다. 정치를 3년 한 윤 대통령이 가능할까. 이번에 명쾌하게 정리했어야 했다.”
Q :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 시동을 건 듯하다.
A : “탄핵은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있다. 거칠게 탄핵을 밀어붙이면 국민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뒤집어질 수도 있다. 하야는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고, 또 하야란 포장지를 씌워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김 여사 특검은 안 하겠다’는 등 주고받기식으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거래에 의한 하야는 윤 대통령이 정말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 사람은 ‘식물 대통령’으로 3년을 더 해야 하고 한 사람은 사법리스크가 걸려 있다. 이런 때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내각제 합의를 하면 어떨까. 내각제를 하면 총리가 수시로 국회에 나가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해야 한다. 여론에 대해 틀린 판단을 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이 오늘 4대 개혁을 하겠다고 했는데, 내각제라면 법안을 통과시키고 다음 총선에서 이겨 해결했을 것이다. 내각제가 훨씬 더 강력한 제도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6년을 했다.”
Q : 1987년 이전까지 대통령제는 옳았지만 그 이후는 틀렸다고 했다. 대통령제론 도저히 안 된다고 보는 건가.
A : “더 가면 더 나락으로 빠질 거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대통령까지는 대통령제가 옳았다. 이면엔 간선제다. 대통령들이 소신껏 국정을 했다. 이젠 자고 나면 선거고 여론도 날로 바뀐다. 국민이 대통령과 국회에 권력을 나눠주고 싸움을 붙인다(※수시로 여소야대가 된다는 의미다). 대통령에게 집중되니 ‘올 오어 낫싱(전부 아니면 전무)’이고 야당은 다음 대선까지 무한투쟁, 무한정쟁이다. 완전 정글의 법칙이다.”
Q : 국민이 내각제에 호응할까.
A : “당연히 저항감이 있을 거다. 그러나 대통령제가 얼마나 허망한 제도인지 봐오지 않았나. 우리 국민만큼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국민도 없다.”
Q : 민주당이 대통령 중임제로의 개헌을 말하기 시작했다.
A : “개헌하면서 대통령제를 연장할 이유는 없다. 다른 선진국처럼 내각제로 가야 한다.”
허 전 실장은 ‘단명(短命)’ 비서실장이다. 다음 등장한 이가 김기춘 전 실장이다. 당시에 관해 물었다.
Q : 비서실장직에서 7개월 만에 떠났다.
A :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것밖에 없었는데 (대통령과) 조금 견해가 달랐다. 한때 ‘실장님이 전화하면 무슨 반대부터 할까 봐 겁부터 난다’고 웃으면서 농담할 정도였다. 내가 ‘왜 겁나시냐. 대통령 잘되시는 것만 바란다’고 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자들이 있었다. 음해성 투서를 넣곤 했다. 대통령에게 내가 인사개입한다고 투서가 들어간 적도 있다. 내가 ‘투서 속 당사자와 밥자리 한 번도 없었다’고 해명한 일도 있다. 오래가면 안 되겠더라.”
Q : 대통령 주변에 음해·비방이 엄청난 것 같다.
A : “어마어마하다. 국정을 다 들고 있으니까 한자리를 얻으려고…. 조선시대 당쟁도 다 자리 때문 아니냐.”
Q : 지금도 윤·한 갈등도 둘 사이 문제도 있지만, 갈등을 부추기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A : “대통령의 예지가 있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현인이었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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