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실엔 수도 밸브가 1개뿐? 통화량만 조절하니까
[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통화정책의 원리와 기준금리
우리가 샤워를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는 두 가지다. 얼마나 따뜻한 물이, 얼마나 콸콸 쏟아지느냐. 이걸 조절하기 위한 수도꼭지 밸브는, 예전에 가장 표준적이었던 것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보통 더운 물 밸브와 차가운 물 밸브 두 개가 있다. 이들을 각각 어떻게 트는가에 따라 수온과 유속이 정해진다. 요즘은 소위 ‘원터치’라고 부르는 손잡이 하나짜리가 많은데, 이건 한 방향이 아니라 두 방향, 즉 2차원으로 움직인다. 보통 위아래로 조절하면 유속이 달라지고, 좌우로 조절하면 온도가 달라진다. 이렇게 수온 얼마, 유속 얼마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려면 밸브가 두 개 있거나 두 방향으로 움직이는 밸브가 필요하다. 목표가 2개면 수단도 2개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수학적인 철칙이다. 그런데 가끔 군대나 큰 체육관, 옛날에 지은 숙박업소의 샤워실에 가 보면 수도꼭지 밸브가 하나뿐인 경우가 있다. 이때는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수온이나 유속 중 하나뿐이다. 온도가 ‘평균적인 사람들이 좋아하는 샤워 온도’로 맞춰져 있고 유속만 조절하든지, 유속이 고정되어 있고 온도만 개인 선호에 맞추든지.
물가는 기본적으로 일정기간 동안 발생하는 실물거래의 양, 그리고 사람들이 거래에 사용할 수 있는 결제수단의 양, 이 둘 사이의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현금이나 요구불 예금 등 결제에 바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합친 것이 통화량이다. 한 경제에서 이루어지는 실물거래의 양보다 통화량이 많으면 물가수준이 높아지면서 화폐가치가 떨어진다. 반대로 통화량이 모자라면 물가수준이 낮아진다. 한마디로 물가라는 것은 실물과 화폐의 상대가격이다. 통화량을 결정하는 것은 화폐발행권을 독점한 중앙은행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물가 안정이 되는 것이고, 통화정책은 곧 통화량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뉴스에는 통화량이라는 말보다 금리라는 말이 훨씬 더 자주 등장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기사가 나온다. “통화량을 5000억원 늘리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는 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직접 정하는 무슨 방법이 있는 것처럼 오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아니다. 중앙은행은 통화량만 결정한다. 통화량을 늘리고 줄이는 데 따라, 자금시장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더 쉬워지거나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이자율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 이자율을 신호로 삼아 이자율이 어느 특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중앙은행이 돈을 풀거나 조이거나 하는 것이 통화정책이다. 이자율 자체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왜 통화량 자체를 정책지표로 삼지 않고 기준금리를 이용하느냐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이번에는 소양강댐 수문과 연결되어 시간당 방류량을 조절하는 핸들을 떠올려보자. 이걸 이용해서 달성해야 하는 목표는 수도권 사람들이 물을 딱 알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생활용수, 농업용수, 공업용수 등이 모자라면 안되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많이 내보내면 홍수가 난다. 그런데 수도권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의 총량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려면 너무 어렵다. 한강 수위, 지하수 수위, 건물마다 수도관에 들어찬 물의 양, 실개천에 흐르는 물, 저수지에 담긴 물 등등. 그러면 소양강댐 관리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수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 것이냐. 댐에서 제일 가까운 논에 정밀한 수위계를 하나 달아놓고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거다. 이 논에 있는 물의 깊이, 그리고 수도권 사람들이 지금 물이 넉넉하다 모자라다 느끼는 정도, 이 둘의 관계는 수십 년 동안의 경험으로 이미 파악이 되어 있다. 중앙은행 기준금리는 바로 이 논의 수위계와 마찬가지다. 전국의 통화량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려우니, 제일 가까운 곳에서, 중앙은행을 통해 민간은행끼리 거래하는 금리를 정책지표 삼아 관찰하는 것이다.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상상해 보자. “요즘 수도권 농지에서 물이 조금씩 모자란다는 신호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준 논’ 수위가 1㎜ 높아질 때까지 수문을 조금 더 열까요?”
한 밸브로 수온·유속 둘 다 맞추진 못 해
그런데 소양강댐의 방류량이 수도권 전체에 흐르는 물의 양을 결정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정책수단이지만, 굉장히 많은 다른 요인들도 영향을 준다. 햇볕 때문에 강물이 얼마나 증발하는지, 비가 얼마나 내리는지, 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퇴적물이 얼마나 있는지 등등. 이런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소양강댐 방류량 하나로 개별 농지나 건물의 용수 상황을 일일이 조절할 수는 없다. ‘기준 논’ 수위를 올리기로 해서 방류량이 많아지고 어느 농촌의 저수지에 물이 넉넉하게 담겼더라도, 다른 쪽 공장에서는 낡은 수도관이 막혀 물이 안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일들은 개인이, 개별 기업이, 정부가, 또는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췄는데 대출금리가 왜 오르냐 하는 문제는 대개 이런 상황에 발생한다. 통화량이 많아지고 전반적으로 돈 빌리기가 쉬워지더라도,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키려고 은행들이 그쪽 대출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평균 대출금리가 올라가는 일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통화정책에 대해 논의할 때, 중앙은행의 정책수단이 통화량 딱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수도 밸브 하나로 수온과 유속을 둘 다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정 건물의 용수 부족 상황을 소양강댐 수문을 열어 해결할 수도 없다. 중앙은행의 정책목표는 예나 지금이나 물가 안정, 이것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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