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실엔 수도 밸브가 1개뿐? 통화량만 조절하니까

2024. 11. 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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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통화정책의 원리와 기준금리
소양강 댐의 방류 모습. 댐 관리자가 가장 가까운 논의 수위계를 보고 방류량을 결정한다면, 중앙은행 기준금리는 이 논의 수위계와 같이 통화량 조절의 지표가 된다.
낯선 곳에 여행을 가거나 처음 가보는 건물 화장실에 들어가면 ‘여기는 수도꼭지를 어떻게 틀어야 물이 나오나, 손을 가까이 대면 자동으로 나오는 건가’ 하며 한번씩 들여다보게 된다. 대개는 작동방식을 금세 알아낼 수 있지만, 가끔은 손을 씻거나 샤워를 시작하기 전에 꽤 오래 고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샤워를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는 두 가지다. 얼마나 따뜻한 물이, 얼마나 콸콸 쏟아지느냐. 이걸 조절하기 위한 수도꼭지 밸브는, 예전에 가장 표준적이었던 것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보통 더운 물 밸브와 차가운 물 밸브 두 개가 있다. 이들을 각각 어떻게 트는가에 따라 수온과 유속이 정해진다. 요즘은 소위 ‘원터치’라고 부르는 손잡이 하나짜리가 많은데, 이건 한 방향이 아니라 두 방향, 즉 2차원으로 움직인다. 보통 위아래로 조절하면 유속이 달라지고, 좌우로 조절하면 온도가 달라진다. 이렇게 수온 얼마, 유속 얼마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려면 밸브가 두 개 있거나 두 방향으로 움직이는 밸브가 필요하다. 목표가 2개면 수단도 2개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수학적인 철칙이다. 그런데 가끔 군대나 큰 체육관, 옛날에 지은 숙박업소의 샤워실에 가 보면 수도꼭지 밸브가 하나뿐인 경우가 있다. 이때는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수온이나 유속 중 하나뿐이다. 온도가 ‘평균적인 사람들이 좋아하는 샤워 온도’로 맞춰져 있고 유속만 조절하든지, 유속이 고정되어 있고 온도만 개인 선호에 맞추든지.

수단이 하나면 목표도 한 개 넘을 수 없어
수온과 유속 이라는 2개 목표를 맞추려면 수도밸브도 2개가 필요하다.
2024년 10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2021년 8월 긴축기조로 전환한지 3년 2개월만에 처음으로 완화 방향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런데 그 나흘 뒤 은행연합회에서는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가 지난 달보다 0.04%p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당장 “기준금리를 낮췄는데 대출금리는 왜 오르냐” 하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이번 경우 외에도 경제 구석구석에서 경기, 실업률, 가동률, 연체율 등 자잘한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통화정책의 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곤 한다. 사실 한은총재나 금융통화위원들은 좀 억울할 수도 있다. 중앙은행에서 통화정책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물가 안정’ 딱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수도꼭지에 비유하자면, 중앙은행 총재실에는 ‘통화량 조절’이라는 딱지가 붙은 밸브 하나만 달려 있다. 밸브가 한 개뿐이므로, 도달할 수 있는 목표도 ‘물가 안정’이라는 하나의 목표보다 더 많을 수 없다.

물가는 기본적으로 일정기간 동안 발생하는 실물거래의 양, 그리고 사람들이 거래에 사용할 수 있는 결제수단의 양, 이 둘 사이의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현금이나 요구불 예금 등 결제에 바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합친 것이 통화량이다. 한 경제에서 이루어지는 실물거래의 양보다 통화량이 많으면 물가수준이 높아지면서 화폐가치가 떨어진다. 반대로 통화량이 모자라면 물가수준이 낮아진다. 한마디로 물가라는 것은 실물과 화폐의 상대가격이다. 통화량을 결정하는 것은 화폐발행권을 독점한 중앙은행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물가 안정이 되는 것이고, 통화정책은 곧 통화량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뉴스에는 통화량이라는 말보다 금리라는 말이 훨씬 더 자주 등장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기사가 나온다. “통화량을 5000억원 늘리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는 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직접 정하는 무슨 방법이 있는 것처럼 오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아니다. 중앙은행은 통화량만 결정한다. 통화량을 늘리고 줄이는 데 따라, 자금시장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더 쉬워지거나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이자율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 이자율을 신호로 삼아 이자율이 어느 특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중앙은행이 돈을 풀거나 조이거나 하는 것이 통화정책이다. 이자율 자체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5만원권 지폐. 한국은행은 현금과 요구불 예금 등 통화량을 늘리거나 줄여서 물가를 조절한다. [중앙포토]
미국 연준에서는 기준금리를 Federal Funds Rate라고 부른다. 중앙은행은 ‘민간은행의 은행’ 역할을 하는데, Federal Funds는 이렇게 민간은행들이 중앙은행을 통해 서로 거래하는 자금시장에서 돌아다니는 돈을 가리킨다. 민간은행은 지급준비율 같은 각종 규제를 따르기 위해 대차대조표를 끊임없이 조정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매일 마감시간에 현금이 좀 모자라거나 남을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은행한테 “야, 하룻밤만 돈 좀 빌리자. 내일 갚을게” 하는 상황이 생긴다. 바로 이런 돈에 붙는 이자율, 즉 시중은행 사이의 초단기 대출금리, 소위 ‘콜금리’가 기준금리가 된다. 한국의 기준금리도 이론적으로는 같은 개념이다.

그러면 왜 통화량 자체를 정책지표로 삼지 않고 기준금리를 이용하느냐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이번에는 소양강댐 수문과 연결되어 시간당 방류량을 조절하는 핸들을 떠올려보자. 이걸 이용해서 달성해야 하는 목표는 수도권 사람들이 물을 딱 알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생활용수, 농업용수, 공업용수 등이 모자라면 안되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많이 내보내면 홍수가 난다. 그런데 수도권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의 총량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려면 너무 어렵다. 한강 수위, 지하수 수위, 건물마다 수도관에 들어찬 물의 양, 실개천에 흐르는 물, 저수지에 담긴 물 등등. 그러면 소양강댐 관리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수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 것이냐. 댐에서 제일 가까운 논에 정밀한 수위계를 하나 달아놓고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거다. 이 논에 있는 물의 깊이, 그리고 수도권 사람들이 지금 물이 넉넉하다 모자라다 느끼는 정도, 이 둘의 관계는 수십 년 동안의 경험으로 이미 파악이 되어 있다. 중앙은행 기준금리는 바로 이 논의 수위계와 마찬가지다. 전국의 통화량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려우니, 제일 가까운 곳에서, 중앙은행을 통해 민간은행끼리 거래하는 금리를 정책지표 삼아 관찰하는 것이다.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상상해 보자. “요즘 수도권 농지에서 물이 조금씩 모자란다는 신호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준 논’ 수위가 1㎜ 높아질 때까지 수문을 조금 더 열까요?”

한 밸브로 수온·유속 둘 다 맞추진 못 해
그런데 소양강댐의 방류량이 수도권 전체에 흐르는 물의 양을 결정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정책수단이지만, 굉장히 많은 다른 요인들도 영향을 준다. 햇볕 때문에 강물이 얼마나 증발하는지, 비가 얼마나 내리는지, 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퇴적물이 얼마나 있는지 등등. 이런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소양강댐 방류량 하나로 개별 농지나 건물의 용수 상황을 일일이 조절할 수는 없다. ‘기준 논’ 수위를 올리기로 해서 방류량이 많아지고 어느 농촌의 저수지에 물이 넉넉하게 담겼더라도, 다른 쪽 공장에서는 낡은 수도관이 막혀 물이 안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일들은 개인이, 개별 기업이, 정부가, 또는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췄는데 대출금리가 왜 오르냐 하는 문제는 대개 이런 상황에 발생한다. 통화량이 많아지고 전반적으로 돈 빌리기가 쉬워지더라도,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키려고 은행들이 그쪽 대출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평균 대출금리가 올라가는 일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통화정책에 대해 논의할 때, 중앙은행의 정책수단이 통화량 딱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수도 밸브 하나로 수온과 유속을 둘 다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정 건물의 용수 부족 상황을 소양강댐 수문을 열어 해결할 수도 없다. 중앙은행의 정책목표는 예나 지금이나 물가 안정, 이것 하나뿐이다.

이태환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와 스탠포드대에서 공부하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한국경제의 다양한 측면을 연구했다. 주변의 사회문화 현상을 경제학으로 해석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SERICEO에서 5년 간 ‘세상만사 경제학’ 강의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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