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성공한 리더의 마지막 실패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2024. 11. 8. 23:1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평사원의 전설이었던 日 세븐일레븐 회장
말년에 후계자 제대로 못 세워 쓸쓸한 퇴장
바이든 너무 늦게 사퇴해 민주당 대선 참패
좋은 후계자 키우는 것이 마지막 성공 조건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2016년 4월 7일 오후, 200여 명의 기자가 몰린 회견장에서 세븐일레븐의 지주사 ‘세븐앤드아이홀딩스’의 스즈키 도시후미 회장이 사퇴를 표명했다. 그날 오전 스즈키는 세븐일레븐 사장인 이사카 류이치의 해임안을 이사회에 냈는데, 그 해임안이 부결되자 사퇴를 결심한 것이다.

1932년생인 스즈키는 31세에 슈퍼마켓 사업을 하는 이토요카도에 입사했고, 1970년대 초에 미국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일본에 들여왔다. 1974년 도쿄에 세븐일레븐 1호점을 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추진력 덕분이었다. 편의점에서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1978년에 세븐일레븐 사장이 되었고, 1991년에는 세븐일레븐의 모기업을 인수해서 세븐일레븐을 완전한 일본 회사로 만들었다. 73세가 되던 2005년, 이토요카도와 세븐일레븐 지주사의 회장에 취임했다. 직원들은 그가 주재하는 회의를 어전회의라 불렀고, 창업주 일가는 존재감마저 희미해졌다.

2016년 84세의 스즈키 회장은 별안간 당시 세븐일레븐 사장이던 이사카를 해임하겠다고 밝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스즈키가 이사카의 후임으로 지명한 사람은 따로 있었지만, 시장은 스즈키 회장이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려는 포석이 아닌가 의심했다.

시장은 스즈키의 결정을 환영하지 않았고, 특히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이 격렬히 반발했다.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후계로 삼으면 기업 가치가 떨어질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은 2014년에 제정된 스튜어드십 코드, 2015년에 제정된 거버넌스 코드 때문에 사외이사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던 때였다.

이사카 해임안은 부결되었고, 어전회의에서 망신당한 스즈키는 은퇴를 선언했다. 평사원에서 출발해서 일본 최대 소매그룹의 수장이 되었던 이 전설의 경영인은 화려한 경력의 마지막 순간에 실패자가 되었다. 후계자를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소니를 부활시킨 영웅으로 기억되는 히라이 가즈오처럼 자신보다 더 나은 후임을 찾으려 노력하고 적절한 시기에 자기 자리에서 내려왔다면 사람들은 스즈키를 실패자로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미국 대선을 보며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서 같은 연민을 느낀다. 스즈키 회장보다 10년 뒤에 태어난 그는 41세에 미국 상원의원이 되었고, 67세에 부통령, 79세에 대통령이 되었다. 연임에 도전했을 때는 82세의 고령이었다. 그가 좀 더 빠르게 연임을 포기했더라면 미국 민주당은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대통령 후보를 고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후보가 되었다고 해도, 대선을 위해 더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의 후계자가 선거를 준비할 시간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을 때 연임을 포기했다. 그와 그의 참모들이 좀 더 일찍 현실을 직시하고 결단을 내렸다면 선거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초라한 민주당은 아니었을 것이다.

앨 고어가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했을 때는 아무도 화살을 전임인 빌 클린턴에게 돌리지 않았다. 민주당도 지금처럼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바이든 재직 시에 미국은 일자리가 늘었고 코로나 충격에서 벗어났다. 양적 완화를 끝내면서 걱정했던 경착륙 문제도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성공한 리더로 기억될 수도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이 실패로 끝났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리더들은 어떨까? 후계자를 키우는 일에 진심일까? 그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정치 리더들이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이 유승민과 이준석을 쳐내는 것을 보며, 저런 식으로 당의 인재를 내치면 당에 손해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나경원이나 김기현 같은 이들마저 모욕하는 것을 보며 경악했다. 무리하게 한동훈을 세웠다가 지금은 그를 끌어내리려 한다. 그들 모두에게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 아닌가.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박용진 전 의원을 끝내 공천에서 배제한 것은 여러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선진국 공당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성공한 리더는 좋은 후계자가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성공을 완성한다. 그 토양을 파괴하는 리더는 성공의 마지막을 실패로 장식한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성공한 리더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