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인 척…군무원 살해범, 경찰엔 “신고 취하” 부대엔 “결근”

‘북한강 주검 훼손·유기’ 군 장교 구속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던 여성 군무원을 살해한 뒤 주검을 훼손하고 북한강에 유기한 현역 군 장교가 5일 오전 강원 춘천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이 끝난 뒤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같은 부대 군무원을 살해한 뒤 주검을 북한강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현역 군 장교가 피해자를 찾는 경찰과 통화하면서 피해자인 여성 목소리 흉내까지 낸 정황이 드러났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살인·사체손괴·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육군 장교 ㄱ(38)씨가 범행 다음 날인 지난달 26일 피해자 ㄴ씨인 것처럼 경찰과 통화했다고 8일 밝혔다. 통화는 ㄴ씨 어머니가 ‘당분간 집에 못 들어간다’는 취지의 문자를 받고, 지난달 26일 오전 8시40분께 112에 딸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며 미귀가 신고를 한 데서 시작됐다. 어머니 주거지를 관할하는 관악경찰서는 신고 직후 ㄴ씨 휴대전화로 피해자 신변을 확인하기 위한 등기 문자를 보냈고, 파출소 직원이 카카오톡 메시지와 보이스톡도 보냈다.

이 과정에서 ㄱ씨는 ㄴ씨 휴대전화로 파출소 직원에게 보이스톡(카카오 메신저 전화)을 걸어 피해자를 가장해 인적 사항을 말하며 미귀가 신고 취소를 요청했다고 한다. 112 상황실에도 “고속도로라 연락이 어렵다”며 신고를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통화 이후에도 미귀가 신고 절차상 대면 확인이 필요하다고 봤다. 다만 군부대에는 수사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야 했다. ㄴ씨 어머니는 이 과정에서 딸에게 피해가 갈까봐 미귀가 신고를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ㄱ씨는 지난달 25일 오후 3시께 경기도 과천의 한 주차장에 주차된 차 안에서 말다툼을 벌이다 ㄴ씨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 조사 결과 ㄱ씨는 범행 뒤 ㄴ씨 휴대전화로 부대 쪽에 ‘출근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휴대전화를 버리는 등 범행을 은폐하고 증거 인멸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춘천지법은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ㄱ씨에게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