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을 팝니다

박윤예 기자(yespyy@mk.co.kr) 2024. 11. 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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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을 팝니다, 제임스 데이비스 지음, 이승연 옮김, 사월의책 펴냄, 2만3000원
정신병을 팝니다
영국에서 1980년대부터 빚과 항우울제 처방이 꾸준히 치솟기 시작한다. 신용카드 규제 완화와 함께 급증한 가계부채는 젊은이들을 일찍부터 신자유주의로 편입시킨다. 영국인 저자는 빚과 마찬가지로 항우울제 처방 급증이 영국의 ‘철의 여인’으로 유명한 마거릿 대처 수상에 의해 주창된 신자유주의 영향이라고 강조한다.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우리 마음을 병들게 했는지를 다룬 책이 출간됐다. 문제 의식의 출발점은 1980년대다. 마거릿 대처(1925~2013)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영국 총리를 지냈을 때다. 대처는 이전의 낡은 규제자본주의를 버리고 경쟁력, 자립, 기업가 정신, 생산성과 같은 개인적 자질을 북돋우는 새로운 경제 질서인 신자유주의를 주창했다. 시장이 자기 일을 하도록 정부는 역할을 줄이고 기업은 자유롭게 사업을 확장하고 국유산업은 민영화하고, 수많은 노동·복지·사회보호는 축소했다.

대처는 단순히 경제제도만 바꾼 것이 아니다. 그는 “경제는 수단이며 목표는 마음과 영혼을 바꾸는 것이다”고 말했다. 경제를 바꾸는 것은 접근법을 바꾸기 위한 수단이고, 접근법을 바꾸는 것은 심리적·개인적·도덕적 삶의 내적구조, 즉 정신을 개조하는 일인 셈이다.

앞서 공산주의를 주창한 마르크스도 마음과 영혼에 주목했다. 마르크스는 기독교가 고통을 종교적 미덕으로 삼음으로써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는 억압적 조건에 대항하고 변화시키키기보다 이를 수용하고 견디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봤다. 고통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데 책임을 지는 사회제도들이 경제의 목적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신자유주의 속 사람들은 유해한 사회적, 정치적 환경과 노동 환경을 비난하는 대신 잘못된 뇌와 정신을 탓한다. 그러면서 거대 제약 기업의 수익성 높은 약물 처방에 장기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이러한 정신 건강의 시장화된 시각이 우리의 고통에서 더 깊은 의미와 목적을 빼앗아 간다.

지난 40년간 의학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정신의학 및 정신건강이라는 분야는 예외다. 1980년대 이후 정신 건강 장애율은 일관되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35년간 정신 질환으로 장애 수당을 받는 사람 수가 대부분의 서구 국가에서 3배 이상 증가했다. 정신 장애가 급증하는 곳에서는 항우울제, 항정신병제, 진정제 등 정신과 약물 처방 건수도 급증했다.

1980년대 이후 영국은 제조업 부문이 쇠퇴하고 서비스업 부문이 확대됐다. 서비스업 부문으로의 국가적 전환은 영국의 직장 생활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사람들은 더 오래 일하고, 더 자주 이직하며 더 멀리 통근하게 됐다. 왜냐하면 서비스 경제는 24시간 돌아가므로 노동시간이 증가했고, 유연한 근로자를 요구하게 됐고, 도심지에서 운영되는 서비스 경제 특성상 도심지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사람들은 외곽으로 이사가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들은 일하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업체 입장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이 직무를 위해 필요한 개인적 자질을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비스 경제에서는 제조업 경제와 달리 노동자들의 실제 생산성을 측정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서비스 경제에 적합한 노동자를 찾기 위한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소수의 기업들이 도입했던 ‘성격 검사’가 빠르게 유행하여 2014년 포춘 500대 기업의 80%가 이 검사들을 사용하고 있다.

기업체들이 찾는 노동자는 협동적이고 긍정적이고 다정하며 야망 있고 가능하면 외향적이고 너무 고집스럽지 않은 사람이다. 노동 문화가 변화하면서 노동자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나 무엇을 생산하는지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 혹은 어떤 사람처럼 보이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이제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가면을 써야 한다.

특히 저자는 항우울제 장기 복용의 위험을 경고한다. 일반적인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약물을 오래 복용할수록 더 심한 정신 장애 진단을 받는 쪽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2010년 출간된 로버트 휘태커의 책 ‘약이 병이 되는 시대’를 인용했다. 휘태커는 “전혀 다른 유형의 연구들이 결국 정신과 약물이 진단의 종류를 막론하고 장기적 경과를 악화시킨다는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후 휘태커는 거대 제약 기업의 지원을 받는 조직적 반격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지속적으로 나오면서 그의 입지는 강화됐다.

저자 제임스 데이비스는 영국 로햄프턴 대학교의 의료인류학 및 심리학 교수이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사회인류학과 의료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에서 일했던 공인 심리치료사이기도 하다. 정신의학과 심리치료의 사회적 실상에 대한 비판적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등 사회 참여 활동을 펼치는 실천적인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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