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촛불” 장외 나선 거야…‘이재명 방탄’ 논란에 여전히 ‘그들만의 외침’
이재명 1심 선고·추가 스모킹건, 향후 집회의 향방 가를 분수령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또 한번 찾아온 정치사의 분기점일까. 광장만 메우다 사라질 그들만의 외침일까. 11월의 시작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은 대정부 투쟁의 공간을 '장외'로 확장했다. '김건희 특검 촉구'로 집회의 대외 명분을 축소했지만, 민주당은 내심 2016년 촛불의 재현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번 집회의 화력이 들불처럼 번질지, 성냥불에 그칠지는 미지수다. 실정을 거듭하는 대통령과 법의 심판대에 선 거야(巨野) 대표 사이, 민심의 발길은 아직 광장의 경계에 머물러있다.
11월2일 집회 현장엔 민주당이 제공한 '김건희를 특검하라' 문구의 손 피켓이 물결을 이뤘다. 그러나 이날 무대에 오른 민주당 지도부의 입에선 정권 자체를 '직격'하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특검이든 탄핵이든 개헌이든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 한다"고 했고, 이언주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은 내려와야 한다"고 외쳤다. 전현희 최고위원도 "윤석열 정권 심판 열차를 출발시키자"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표 역시 "불의한 권력을 우리 손으로 확실하게 심판하자"며 결을 같이했다.
취재에 따르면, 복수의 민주당 지도부 인사는 집회를 준비하던 막판에 발언 수위를 한층 높였다. 집회 직전 발생한 두 가지 '사건'에 따른 결정이었다. 집회 이틀 전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공천 개입 의혹이 담긴 명태균씨와의 통화 음성을 깜짝 공개했다. 파장은 순식간에 커졌지만 대통령실은 '짜깁기' '법적으로 문제없다' 등 민심과 동떨어진 해명으로 오히려 성난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튿날엔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인 19%를 기록했다는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10월29~31일 전국 유권자 1005명 대상 실시,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이는 비슷한 기간 역대 대통령들의 지지율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낮은 수치다(표 참고). '공멸'을 막아야 하는 여당에서 곧장 대통령을 향한 '결자해지' 요구가 이어져 나왔다. 윤 대통령 스스로 보인 '빈틈'이 야당의 정권 퇴진 외침에 '불쏘시개'가 되어준 셈이다.
선고 앞둔 이재명, 중도 참여 막는 '젖은 장작'
이번 장외 집회 참가 규모는 경찰 추산 2만 명, 당 추산 30만 명이었다. 양측 간 차이가 커 정확한 인원을 알 순 없지만, 야권 지지층을 넘어 중도 민심의 참여까지 이끌진 못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중도층에서의 윤 대통령 지지율은 14%(갤럽)로, 탄핵 국면 직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집회 참여 동력이 작용하지 않고 있는 건 8년 전과 분명한 차이점이다.
그 원인으로는 크게 이번 장외 집회의 '시기'와 '방향'이 꼽힌다. 집회는 당장 11월15일부터 이어지는 이재명 대표 1심 선고를 앞두고 열렸다. 집회와 선고 시기가 맞물린 탓에, 민주당 집회 자체를 여론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방탄'으로 인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집회 행렬 가장 앞에 서있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집회의 발화를 막는 '젖은 장작'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이는 윤석열 정권 심판과 김건희 여사 수사를 원하는 민심이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향하지 않고 있는 주요인으로도 꼽히고 있다. 일각에선 집회를 통해 이 대표와 민주당의 '위력'을 과시함으로써, 선고 전 사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정권 규탄과 이 대표 선고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고 적극 반박하고 있지만, 정권을 향한 공세 수위는 다소 조절하는 모양새다. 조국혁신당과 달리 탄핵소추장 작성 등 본격적인 '탄핵' 추진과 거리를 두고 있으며, 대신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이라는 '우회로'를 조금씩 제시하고 있다. 이 대표의 선고 결과에 따라 당 차원의 투쟁 강도는 크게 조절될 전망이다.
이 대표의 선고는 향후 집회의 '화력'을 결정짓는 주요 분기점이 될 것으로도 보인다. 의원직 상실에 이르는 유죄가 나올 경우 집회는 더더욱 민주당 적극 지지층만의 공간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무죄 또는 미미한 형량에 그칠 경우 임기 단축은 물론, 하야·탄핵을 외치는 민주당의 목소리에 지금보다 한층 더 힘이 실릴 전망이다. 1심 선고에 불과하지만 '민주당이 이 대표의 대법원 유죄 확정 전 조기 대선을 치르려 한다'는 시선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시기' 못지않게 2016년 탄핵 정국 때와는 사뭇 다른 집회의 '방향'도 한계로 꼽힌다. 11월2일 장외 집회는 사실상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다. '위'로부터의 집회인 셈이다. 시민들 주도로 집회 규모가 커진 후 막판에 정치권이 가세해 화룡점정을 찍은 2016년 '촛불 집회'와의 차이점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정치는 민심을 앞서가면 안 된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장외 집회는 복잡한 정치 상황을 신중히 지켜보고 있는 민심보다 두세 발 앞서가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하나, 170석을 가진 제1야당이 국회 밖으로 나선 것 역시 그 자체로 집회의 설득력을 떨어트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개 광장은 '약자들의 전장'이자 소수 정당이 택하는 '최후의 수단'이지, 강력한 입법권력을 가진 거야의 투쟁 수단으로선 적절치 못하단 것이다. 한 국민의힘 인사는 "방송통신위원장도 탄핵시키고, 단독 법안 통과에 검사 탄핵까지 추진할 수 있는데도 국회 안에서 어찌하지 못해 밖으로 나왔다는 건, 자신들에게 주어진 힘을 제대로 쓰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비슷한 비판이 잇따르자 민주당은 "원외 투쟁을 병행하려는 것이지, 원내 역할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 않냐"고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집회 불붙일 '마른 장작' 나올까…與 협조 난제
물론 현재 민주당의 투쟁이 가진 이 모든 한계를 뛰어넘을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나올 경우, 분위기는 삽시간에 달라질 거란 관측도 나온다.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태블릿PC'의 존재가 처음 보도된 날부터 광화문 집회에 100만 개의 촛불이 켜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주였다.
민주당은 현재 '명태균'의 존재를 유력한 스모킹건으로 보고 있다. 윤 대통령 부부와 관련된 추가 녹취를 확보했으며 제보도 계속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법적 논쟁 여지가 없는 대통령 취임 이후 윤 대통령 부부의 문제적 육성이 추가 공개될 경우, 민심의 집회 참여를 폭발적으로 늘릴 '마른 장작' 역할을 할 거란 기대도 갖고 있다.
다만 광장이 정권의 퇴진 분위기를 키울 순 있지만 결국 이를 현실화하는 건 국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당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임기 단축 개헌이든 탄핵이든 국회 통과가 '첫 관문'인데, 모두 여당의 동의 없인 불가능하다. 본회의 재적 의원 3분의 2(200석)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한 차례 기나긴 '탄핵의 강'을 건너본 여당이 또 한번 동조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 보인다. 퇴진 열차의 핸들을 지금처럼 이재명 대표 그리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쥐고 가는 한, 야당이 노리는 '박근혜 시즌2'는 더더욱 요원할 거란 관측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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