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45] ‘발리에서 생긴 일’은 결코 로맨틱하지 않았다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2015년 1월 하순에 열흘 남짓 인도네시아 발리를 여행한 것은 순전히 에어아시아 프로모션으로 값싼 항공권을 구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런 파격가 항공권을 내놓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정말로 싼 항공권을 득템했다. 물론 프로모션 시작 전부터 비장한 각오로 컴퓨터 앞을 지킨 덕분이기는 했지만 일본행 항공권 살 돈으로 득템했으니 여간한 행운이 아니었다.
발리 여행 출발은 산뜻했다. 옵션 타운(추가 요금을 내고 비즈니스 클래스로 좌석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사이트)에 좌석 업그레이드를 신청했는데, 운 좋게도 저렴한 비용으로 편하게 갈 수 있는 기회도 잡았다. 이래저래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발리 여행이 사전 준비 미흡으로 삐걱댈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해 겨울 방학은 이렇게 발리에서 낭만적인 휴식을 취하다 올 생각으로 열흘 가까운 일정을 잡아놓았지만, 그 직전에 스페인부터 다녀와야만 했다. 초고 작업을 마친 <가고 싶다, 그라나다> 사진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힘들여 작업한 원고를 묵히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여행책은 사진이 생명인데 사진이 허술한 채로 책을 낼 수는 없는 일이라 부랴부랴 그라나다 여행에 우선 마음을 쏟았다.
일이 그렇게 되고 보니 상대적으로 발리 여행에는 신경을 쓸 수 없었다. 항공권은 구해놓았다지만, 여행이 어디 비행기표만 있다고 저절로 굴러가는가. 호텔도 예약해야 하고, 발리에서 어디어디를 다닐지도 구상해야 하고, 발리 여행시 알아둬야 할 여행 팁도 챙겨보는 등 신경 쓸 일이 많다.
그렇대도 발리로 출발할 때만 해도 뭔가 사달이 날 줄은 몰랐는데, 덴파사르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바로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애초에 은행에서 스페인 여행을 위한 유로화와 발리에서 쓸 달러를 한꺼번에 환전했다. “유로화는 가급적 작은 돈으로 주세요.”라고 말한 게 말썽이었다. 은행 직원이 유로화뿐만 아니라 달러까지도 작은 돈, 즉 20달러짜리로 환전해줬다. 나는 금액이 맞는지만 확인했을 뿐, 그것이 발리에서 문제가 될 거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발리에 도착해 환전소를 찾았다. 달러를 인도네시아 화폐인 루피아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환전소에 내걸린 안내문을 보니, 100달러와 50달러 적용 환율이 달랐다. 심지어 내가 가진 20달러짜리는 5달러짜리와 같은 가장 낮은 환율 적용 대상이었다. 똑같은 돈인데도 단위가 작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걸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내가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발리에 대해 미리 알아봤다면 피할 수 있는 손해를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가이드 경비를 중간에 정산하기 위해 달러를 건네니 가이드가 난색을 표했다. 환율이 낮은 20달러짜리인 것도 문제인데다가 새 돈이 아니기 때문에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발리에서는 새 돈이 아니면 제대로 환전하기 어렵다며 가이드는 한숨을 쉬었다.
그게 나로서는 참 이해가 안 갔다. 내가 지닌 달러를 살펴보니 살짝 사용감은 있지만, 헌 돈 취급받을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도대체 납득하기 어려운 발리의 현실이었다.
준비해간 돈이 일단 발리에서는 무용하니 참으로 황당하고 난감했다. 할 수 없이 현금 입출금기에서 루피아를 인출하고, 물건을 살 때는 신용카드로 결제해 환율 손해가 막심했다.
남들은 발리에서 로맨틱한 추억을 쌓고 온다는데, 나는 그렇게 제 대접 못 받는 불운한 달러를 손에 쥐고 애만 태우다 돌아오고 말았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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