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45] ‘발리에서 생긴 일’은 결코 로맨틱하지 않았다

신양란 여행작가 2024. 11. 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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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두굴 지역에는 브라딴 호수가 있으며, 호수에 접한 곳에 물의 여신에게 봉헌된 울룬 다누 브라탄 사원이 있다. 사원의 형태는 발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양식이지만, 물과 어울린 정경이 특히 인상적이다. /신양란 작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2015년 1월 하순에 열흘 남짓 인도네시아 발리를 여행한 것은 순전히 에어아시아 프로모션으로 값싼 항공권을 구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런 파격가 항공권을 내놓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정말로 싼 항공권을 득템했다. 물론 프로모션 시작 전부터 비장한 각오로 컴퓨터 앞을 지킨 덕분이기는 했지만 일본행 항공권 살 돈으로 득템했으니 여간한 행운이 아니었다.

발리 여행 출발은 산뜻했다. 옵션 타운(추가 요금을 내고 비즈니스 클래스로 좌석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사이트)에 좌석 업그레이드를 신청했는데, 운 좋게도 저렴한 비용으로 편하게 갈 수 있는 기회도 잡았다. 이래저래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발리 여행이 사전 준비 미흡으로 삐걱댈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해 겨울 방학은 이렇게 발리에서 낭만적인 휴식을 취하다 올 생각으로 열흘 가까운 일정을 잡아놓았지만, 그 직전에 스페인부터 다녀와야만 했다. 초고 작업을 마친 <가고 싶다, 그라나다> 사진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힘들여 작업한 원고를 묵히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여행책은 사진이 생명인데 사진이 허술한 채로 책을 낼 수는 없는 일이라 부랴부랴 그라나다 여행에 우선 마음을 쏟았다.

발리 덴파사르 공항에 ‘영원한 캡틴 박지성’이라는 한글과 박지성의 얼굴 사진이 실린 에어 아시아 비행기가 세워져 있었다. 아마도 그즈음이 박지성 선수의 전성기였나 보다. /신양란 작가

일이 그렇게 되고 보니 상대적으로 발리 여행에는 신경을 쓸 수 없었다. 항공권은 구해놓았다지만, 여행이 어디 비행기표만 있다고 저절로 굴러가는가. 호텔도 예약해야 하고, 발리에서 어디어디를 다닐지도 구상해야 하고, 발리 여행시 알아둬야 할 여행 팁도 챙겨보는 등 신경 쓸 일이 많다.

그렇대도 발리로 출발할 때만 해도 뭔가 사달이 날 줄은 몰랐는데, 덴파사르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바로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애초에 은행에서 스페인 여행을 위한 유로화와 발리에서 쓸 달러를 한꺼번에 환전했다. “유로화는 가급적 작은 돈으로 주세요.”라고 말한 게 말썽이었다. 은행 직원이 유로화뿐만 아니라 달러까지도 작은 돈, 즉 20달러짜리로 환전해줬다. 나는 금액이 맞는지만 확인했을 뿐, 그것이 발리에서 문제가 될 거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발리에 도착해 환전소를 찾았다. 달러를 인도네시아 화폐인 루피아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환전소에 내걸린 안내문을 보니, 100달러와 50달러 적용 환율이 달랐다. 심지어 내가 가진 20달러짜리는 5달러짜리와 같은 가장 낮은 환율 적용 대상이었다. 똑같은 돈인데도 단위가 작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걸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내가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발리에 대해 미리 알아봤다면 피할 수 있는 손해를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가이드 경비를 중간에 정산하기 위해 달러를 건네니 가이드가 난색을 표했다. 환율이 낮은 20달러짜리인 것도 문제인데다가 새 돈이 아니기 때문에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발리에서는 새 돈이 아니면 제대로 환전하기 어렵다며 가이드는 한숨을 쉬었다.

사원에 공물을 바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여인들에게서 그들의 경건한 신앙심이 엿보였다. /신양란 작가

그게 나로서는 참 이해가 안 갔다. 내가 지닌 달러를 살펴보니 살짝 사용감은 있지만, 헌 돈 취급받을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도대체 납득하기 어려운 발리의 현실이었다.

준비해간 돈이 일단 발리에서는 무용하니 참으로 황당하고 난감했다. 할 수 없이 현금 입출금기에서 루피아를 인출하고, 물건을 살 때는 신용카드로 결제해 환율 손해가 막심했다.

남들은 발리에서 로맨틱한 추억을 쌓고 온다는데, 나는 그렇게 제 대접 못 받는 불운한 달러를 손에 쥐고 애만 태우다 돌아오고 말았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루왁 커피는 사향 고양이 배설물에서 얻은 커피 원두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발리 우붓 지역에 루왁 커피를 생산하는 곳이 있어 들렀다. /신양란 작가
우붓은 가장 발리다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 아닌가 싶다. 우붓의 네카 아트 뮤지엄 (Neka Art Museum)에는 발리를 느낄 수 있는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신양란 작가
벼가 자라는 논 가운데 인도네시아 전통 요리를 내놓는 식당이 있다. 발리에서 먹은 음식들은 대부분 입에 잘 맞았다./신양란 작가
바다에 접한 절벽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울루와트 사원은 11세기에 창건된 힌두교 사원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아름답다./신양란 작가
‘마더 템플(어미니 사원)’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버사끼 사원은 발리에서 가장 큰 힌두교 사원이다. 공물을 바치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는 사람들을 보면 이곳이 가장 크고 중요한 사원임을 짐작할 수 있다./신양란 작가
사원에 바친 공물에 지폐도 섞여 있다. 자신들의 돈은 이렇게 조심성 없이 사용하면서, 달러는 무조건 새 것이어야 한다고 우기는 게 기이했다./신양란 작가
발리에서는 벼농사를 짓는 논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계단식 논은 유명하여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관광 명소이다./신양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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