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남자가 문을 두드리자 왕은 그를 '미치광이' 취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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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는 '눈먼 자들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미지의 섬이라니? 모든 섬이 지도에 있지 않느냐?" 그러자 남자는 답한다.
'미치광이는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 여긴 왕은 범선 한 척을 남자에게 준다.
시간이 흐르고, 남자의 범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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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는 '눈먼 자들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모든 사람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실명(失明)하자 '지옥'이 펼쳐진다. 유일하게 앞을 보는 주인공은 지옥의 목격자가 된다.
이 소설은 단지 치명적 바이러스에 관한 소설만은 아니다. 이 책은 '인식과 무지(無知)에 관한 한 편의 우화'로도 널리 해석된다. 소설 속 '눈멂'은 인식의 단절을 은유하는데, 인식이 결여된 세상은 무지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대작가의 놀라운 솜씨다.
사라마구는 우화를 통해 세상을 재해석하는 작법에 탁월했다. 정점에 선 사라마구식 짧은 우화가 또 있다. 철학동화 '미지의 섬'이다. 한국에선 절판돼 읽기가 쉽지 않지만 그 깊이가 경이롭다.
한 남자가 '청원의 문'이라 불리는 왕궁의 문을 두드리며 말한다.
"왕이시여, 배 한 척을 주시오." 왕은 웃음을 참으며 남자에게 이유를 묻는다. 남자는 '미지의 섬'을 찾아가겠노라 대답한다. 왕이 보기에 자신을 찾아온 저 남자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미지의 섬이라니? 모든 섬이 지도에 있지 않느냐?" 그러자 남자는 답한다. "알려진 섬만 지도에 있을 뿐입니다."
'미치광이는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 여긴 왕은 범선 한 척을 남자에게 준다. 남자는 미지의 섬을 함께 찾아나설 선원이 필요했지만 항해에 나서려는 이는 전무했다. 우여곡절 끝에 남자와 선원들은 섬에 도착한다. 그러나 섬엔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선원들은 더는 항해를 할 수 없다며 하선해버린다. 남자만이 섬에 내리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남자의 범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어느 날, 갑판을 청소하던 남자는 불현듯 뭔가를 깨달은 듯 배에 이름을 붙인다. 남자가 명명한 배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미지의 섬'.
사라마구의 이 우화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지도에 없는 것을 찾아가려는 인간의 초월성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도에 의지하며 삶이라는 항해를 시작하지만, 진정한 목적지란 지도에는 없다.
책 읽기도 그렇지 않은가. 책은 지도다. 그러나 진정한 앎은 그 책에서 조금 비껴날 때 발견된다. 철학동화 '미지의 섬'은 그러므로 '독서 우화'가 된다.
1998년 노벨위원회는 사라마구에게 메달을 안기면서 "상상력과 연민, 아이러니로 뒷받침되는 우화를 통해 이해하기 힘든 현실을 이해하도록 끊임없이 도운 작가"라고 평했다. 우화는 현실의 바깥을 소묘한 그림처럼 느껴지지만, 우화처럼 현실을 움켜쥐며 인간을 기록하는 장르도 없다. '미지의 섬' 최고의 문장은 이를 증명한다.
"당신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당신이 누구인지 절대 알 수 없을 거요." 미지의 섬은 실상 우리 내면에 있다. 책은 내면을 거울처럼 비추고 확대경처럼 내보인다. 책은 우리 심장 속 미지의 섬으로 가는 지도다. 동시에 '지도 바깥'을 보게 하는 또 다른 지도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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