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나라' 조선에 복음 전하러 떠난 美 청년 선교사 3인
인간 삶을 결정하는 두 개의 기둥은 '역사와 종교'다. 하나는 사실의 과거에 기반하고, 하나는 신념의 과거를 토대 삼는다. 현대(現代)란 저 '두 기둥' 위에 세워진 확신이다.
한국 종교의 중대한 축을 이루는 개신교사도 그렇다. 척박한 땅에 이국의 종교가 우리 삶에 뿌리내린 지 140년이 지났다. 미국 동부 지역 소교회에서 숭고한 생에 목숨을 걸었던 젊은 선교사들이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열두 제자들과 살과 피를 나누듯' 복음을 전하려 이국땅 조선에 파송됐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 선교 140주년'을 맞아 언더우드, 아펜젤러, 전킨 등 초기 내한 선교사들이 파송 전 걸었던 신앙의 발자취를 따라가봤다. 육로 이동 거리 860㎞(약 534마일), 공항을 오간 움직임까지 합치면 편도 1000㎞를 넘는 짧지 않은 거리의 순례였다.
조선의 부름, 신(神)의 부름
뉴저지 노스버건의 평온한 마을엔 하얀색 오각뿔 첨탑 위 십자가가 유난히 빛이 나는 아담한 예배당 하나가 눈에 띈다. 교회 이름은 그로브개혁교회. 한국엔 덜 알려졌어도 한국 개신교사를 말해주는 역사적인 장소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1859~1916)가 소년 시절 예수의 무릎 아래 복종하며 신앙을 다짐했던 착점이기 때문이다. '은둔의 나라' 조선의 복음화는 바로 이 교회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훗날 '조선의 마게도냐인(人)'으로 일컬어진 한학자 이수정의 요청으로 한국행을 결심한 건 유명한 사실이다. 성경을 조선어로 번역한 이수정은 사도행전 16장에 등장하는 한 마게도냐인이 바울에게 선교를 요청했던 것처럼 언더우드에게 조선행을 부탁했다. 바울이 심장에 복음을 품고 길을 떠났듯, 언더우드는 조선을 택했다.
그로브개혁교회 본당에서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만난 스티븐 그로모손 담임목사는 "젊은 언더우드 선교사의 정신은 현재의 교인들에게도 귀감이 된다. 언더우드 역시 잉글랜드 이민자 출신인데, 그가 다시 조선행을 결심한 건 신의 예비된 계획이었을 것"이라며 언더우드를 기억했다.
교회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엔 언더우드의 가족묘가 5m 남짓의 정사각형으로 배치돼 있다. 이들의 유골은 현재 합정역 인근 양화진으로 1999년 옮겨졌지만, 이전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언더우드가 구체적 꿈을 키웠던 또 하나의 명소가 있으니, 뉴저지 뉴브런즈윅신학교다. 언더우드가 형 토머스에게 보낸 편지 원본이 보관된 곳이다. 언더우드가(家)의 토머스 역시 한국 개신교사의 은인인데, 그는 당시 신형 타자기를 발명해 200만대를 팔아 '떼돈'을 번 당대의 스티브 잡스였다. 토머스는 이를 고스란히 한국에 보냈고 이는 오늘날 연세대의 신촌캠퍼스 토지 구입 종잣돈으로 사용됐다.
뉴브런즈윅신학교 중앙도서관인 세이지 도서관엔 언더우드의 백색 동상이 그의 염결한 생을 증명하듯 서 있다. 이 대학에 재직하며 언더우드의 발걸음을 평생 연구해온 김진홍 석좌교수는 "언더우드 집안은 세계 선교가 꿈이었고 그 귀한 목적지가 조선이었다"고 설명했다.
언더우드 동상 아래엔 '조선의 부름(The Call of KOREA)' 1908년 초판이 가만히 놓여 있다. 언더우드의 첫 문장은 이렇다. '하나님의 섭리로, 은둔 국가로 가는 최초의 선교사가 되는 특권을 누렸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식으로 이 작은 나라를 그분의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켜 오셨다.'
가묘 하나 남긴 비통한 생
언더우드가 한국 선교를 계획하던 그 시기, 또 한 명의 잊을 수 없는 위대한 선교사의 꿈이 차분히 실현 중이었으니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1858~1902)다.
아펜젤러가 누구인가. 그는 1885년 긴 여정 끝에 인천 제물포항을 통해 조선 땅을 밟은 인물이다. 개신교 최초의 한국어 세례식, 개신교 최초의 한국 여성 세례식, 최초의 한국어 설교가 모두 아펜젤러 사역 중 달성된 귀중한 열매였다. 하지만 복음을 전파하던 아펜젤러의 숨 가쁜 여정은 그가 탑승한 배가 1902년 6월 깊은 밤 일본 상선과 쓸리듯 충돌하면서 종결된다. 승객 46명 중 18명이 실종됐는데, 아펜젤러도 실종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청년' 아펜젤러가 신학을 공부했던 뉴저지 드루신학교에서 만난 증손녀 쉴라 플랫 여사는 지난달 28일 증조부에 관한 기억을 낱낱이 털어놨다. 그는 "실제로 뵙진 못했어도, 유년 시절부터 증조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가족에게 들으며 성장했다. 당시 환경을 생각하면 그 고통은 상상을 넘어서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증조할아버지가 한국을 사랑했던 증거일 것"이라고 말했다.
불의의 사고로 비통하게 떠난 고인의 시신은 해상에서 수습되지 못했으므로, 그의 고향 펜실베이니아 수더튼 잔디 바른 언덕에 우뚝 선 묘석(순직비)은 이를테면 '가묘(假墓)'다.
아펜젤러의 '고향교회'로 일컬어지는 임마누엘 레이디스교회에 세워진 묘석이다. 한국인들이 2021년 십시일반 모금해 이 비석 하나를 건립했다. 묘석 뒷면엔 '한국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는 복음을 전해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는 데 앞장섰다'는 글이 음각돼 있었다.
이날 묘비 앞에서 만난 존 니더하우스 임마누엘 레이디스교회 담임목사는 "아펜젤러 선교의 유산을 물려받아 우리 교회도 선교에 힘쓰고 있다"며 아펜젤러를 추모했다. 이 교회의 한 벽면에 소개된 레이디스교회 선교사 파송지는 현재 프랑스, 도쿄, 루마니아, 태국 등이다.
조선, 다시 걷는 골고다 언덕
비통한 죽음의 경중과 무게를 비교할 순 없겠지만, 조선 선교의 와중에 참척(慘慽·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떠남)의 슬픔을 무려 세 번이나 경험한 선교사도 있다. 바로 윌리엄 매클리어리 전킨(1865~1908)이다. 그는 '전북 선교의 아버지'로 한국 교인에게 추앙받는 위인이다.
사실 교계는 140년 전 초기 내한 선교사를 삼분위한다. 수도권·영남을 중심으로 활동한 언더우드(미국 북장로회), 수도권·강원·충청을 거점 삼은 아펜젤러(미국 북감리회). 둘에 비해 미국 남장로회 출신으로 호남·충청 전도에 앞장선 전킨, 레이놀즈, 유진 벨 선교사의 이름은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다. 이 가운데 전킨은 '세 자녀의 소천'이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비극을 조선 땅에서 경험하고도 선교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1892년 남장로회 출신 '7인의 선교사'가 조선에 입국한다. 한국어 습득, 선교지 파악 등의 이유로 수도권에 머물던 전킨이 전북 군산에 발을 내디딘 건 1895년이었다.
전킨은 군산에서 48㎞ 거리인 충청도 강경 지역부터 약 50곳의 유·무인도가 군집한 고군산군도를 뱃길로 순회하며 선교의 씨앗을 뿌렸다. 그러나 비극은 이미 시작된 뒤였다. 1894년 이제 갓 돌을 넘긴 장남 조지가 19개월 두 살배기 때 사망했고, 1899년 둘째 시드니는 생후 두 달 만에, 1903년 셋째 프란시스는 생후 20일 만에 숨을 거뒀다. 사인은 콜레라와 폐렴이었다.
전킨 자신도 1908년 장티푸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런 점에서 전킨이 자신과 자녀의 생명까지 위협받았던 조선 땅에서의 고통은, 2000년 전 예수가 걸었던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위 고통과 다름없었다.
전킨 선교사의 조선 선교를 증명하는 상징적인 기록물은 필라델피아 장로교역사협회(PHS) 사료관의 지하 1층에 있다. 이곳엔 전킨과 동료 선교사들의 행적이 기록된 조선 한반도 대형 선교지도가 액자에 걸려 있었다. 백두산 인근에 붉은 십자가와 '죠션(조선의 당시 표기)'을 자수실로 새겨 넣은 '비단 지도'의 첫 행엔 전킨의 영문 이름이 선명했다. 전부 실로 새겨넣은 소중한 이름들이다.
샤를린 피콕 PHS 사료관의 수석기록보관역은 "전킨을 비롯해 100년 넘는 장로교 선교의 역사가 모두 이곳에 보관됐다. 당시 선교사들은 선대 선교사가 남긴 글 한 줄에서 도착 지역의 생활상과 토착신앙을 파악한 후 먼 길을 떠났다. 그 자료를 모두 보관한 곳"이라고 강조했다. PHS 사료관 지하 1층의 가로 길이는 대략 100m. 선교사 리포트, 고서(古書), 친필자료는 수만 개의 박스에 담겨 시대를 증거 중이었다.
'선교의 길' 취재에 동행한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그분들을 키워주시고, 예비하시고,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과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그분들의 사랑, 눈물, 희생이 오늘날 한국 교회에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된다"고 말했다.
[뉴저지·필라델피아·리치먼드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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