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포 세대에게 위로를”…실패학회가 열린 이유는?
살다 보면 결과 발표를 기다려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절대 작지 않지만) 작게는 공모전, 어린이집 입학부터 대학 입시나 회사 입사처럼 내 인생의 방향을 좌우할 중요한 발표까지요.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결과 확인'을 눌렀는데 "지원자가 많아 모든 분에게 기회를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쓰인 첫 문장을 읽게 됐을 때의 심정이란..
누군가에게 이렇게 거절 당해본 경험을 나누는 이색학회가 카이스트에서 열렸습니다. 이른바 '실패학회'인데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입니다. 학생들에게 실패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전환하고 도전과 혁신을 장려하고자 추진됐습니다.
■'We regret to inform you(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카이스트 창의학습관 1층 로비에서는 오는 20일까지 전시가 열립니다. 전시 제목이 'We regret to inform you(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입니다. 전시에는 '실패 포토 보이스: 거절 수거함' 캠페인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수집한 실패의 순간들이 공유되고 있었습니다. 하룻밤 새 1500mg의 카페인을 들이부었지만, 오늘 중 세 개의 과제를 마쳐야 하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자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살기 위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나 다리가 짧은 아기 거위가 계단 오르기에 실패한 후 다시 시도하는 장면을 보며 깨달음을 얻게 된 순간 등입니다.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인 '챗GPT'도 실수를 하고, 실수를 지적하면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점도 공유되고 있었습니다.
실패학회에서는 실패를 뇌과학과 자연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실패의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하는 강연도 열리고요. 오는 13일에는 '망한 과제 자랑 대회'가 부스 박람회 형태로 열릴 예정입니다. 망한 과제 자랑대회는 지난해에 개인 발표 형식으로 운영됐었는데요. 큰 호응에 힘입어 올해는 참여 학생들이 팀을 이뤄 실패와 관련된 아이템,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부스를 꾸미고 사례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성공적으로(?) 망한 팀에는 상도 줍니다. 공감과 동정심을 유발한 팀에게는 '치명상', 가장 흥미롭게 실패를 풀어낸 팀에게는 '상상 그 이상', 실패했지만 성공을 응원하고 싶은 팀에게는 '화려한 비상' 등을 주기로 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이런 것도 실패라고 하나?"
지난해에 첫 실패학회를 열었을 때 학회에 참석한 일부 교수들의 반응은 '요즘 학생들은 이런 것도 실패라고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에서 국민 천5백 명을 대상으로 도전과 실패에 대한 대국민 인식 조사를 해봤는데요(온라인조사, 표본오차 ±2.5%p 신뢰수준 95%).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모든 세대에서 '노력과 성실성'을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인식했지만, 기성세대는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노력, 자기조절, 도전정신 같은 요소를 중시한 반면, 청년 세대는 타고난 재능, 가족 배경, 운과 기회 같은 외적 요소의 영향력을 중요하게 평가했습니다. 실패에 대한 생각에서도 표면적으로는 실패를 성공의 밑거름으로 인식하면서도 젊은 세대일수록 타인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크며 실패 경험 공유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세대 간 인식에 격차를 보인 요인을 살펴보면, 베이비부머 세대는 발전과 성장을 직접 경험한 세대로 노력 중심의 성공관과 상대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덜 갖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도전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죠. 반면 청년 세대들은 저성장·양극화 시대를 경험하며 외부 요인을 중시하는 성공관과 미래에 대한 높은 불안감을 갖게 됐습니다. 그에 따라 도전을 기피하고 실패에 대한 더 큰 두려움을 갖게 된 것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카이스트 실패연구소는 조사 결과에 대해 "한국 사회의 도전과 혁신을 저해하는 요인이 단순히 인식 부족이나 제도적 미비가 아닌 경쟁 문화와 경제적 불안정성이라는 구조적이고 문화적 차원에 깊이 뿌리박혀 있음을 시사"한다며, "동일한 사회를 살아가는 세대 간의 인식차가 크게 나타난다는 점은 각 세대가 경험해 온 사회적 현실과 압박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서는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문화적 경직성과 청년층의 높은 불안감에 대한 세밀한 이해와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문합니다.
■'3포'· '5포'로도 부족하다… 'N포'세대
10여 년 전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며 청년세대를 '3포'세대라고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집 마련에 인간관계까지 포기했다며 '5포' 세대라고 하더니, 그 이후에는 꿈과 희망까지 포기했다며 '7포'세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제는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다 셀 수 없다는 뜻인지 'N포'세대라고 합니다.
실패학회 전시에서 만난 한 학생은 다른 학생들의 실패 경험을 보며 많이 공감할 수 있었고,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하는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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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경 기자 (ygl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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