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으로 승부하라[요즘 어른의 관계 맺기](24)
‘처음’은 누구에게나 각별하다. 첫사랑, 첫인상, 첫 경험, 첫아이, 첫눈, 첫 만남, 첫 출근, 첫 키스, 첫 직장 등.
“나 처음 만났을 때 어땠어?” 아내는 틈날 때마다 이렇게 묻는다. 나는 짐짓 모른 체한다. 세련된 서울 말씨에 짧지도 길지도 않은 단발머리, 단정한 하얀 원피스 차림의 그 모습을 잊을 리 없다. 그야말로 어제 본 듯 또렷하다. 하지만 굳이 말하려 하지 않는다. 가슴속에 묻어둔 나만의 추억이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다.
‘첫’이라는 관형사가 붙으면 어떤 평범한 말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처음’, ‘첫’, ‘최초’라는 단어가 주는 마법 효과다. 우리에게 첫 번째라는 의미는 왜 중요할까. 첫 경험은 그것이 무엇이든 오래도록 남아 삶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처음은 새로움이고, 새로움은 늘 두근거리게 한다. 잘할 수 있을까 두렵고 잘할지도 몰라 설렌다. 두근거림은 두려움과 설렘이란 감정을 동반한다. 그리하여 처음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고, 미치는 영향도 클 수밖에 없다.
때로는 이러한 첫 경험이 쌓여 앞으로의 삶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첫사랑은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관계를 맺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첫 직장은 다른 직장이나 직업을 갖는 데 지표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 이유다.
첫 경험 가운데 가장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건 ‘첫인상’이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 만난 상대방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는지 궁금해한다.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경우라면 더욱더 그렇다. 첫인상은 말 그대로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처음 보고 갖게 되는 느낌을 말한다. 어떤 사람을 소개받거나 면접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첫인상이다.
첫인상을 결정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200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심리학과 잉그리드 올슨 교수팀이 저널 ‘Emotion(감정)’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0.013초 만에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매력을 평가하고 호감을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다.
진정성과 공감력 높을 땐 좋은 점수
우리가 면접을 볼 때나 물건을 고를 때도 첫인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찌 보면 처음 보는 순간 모든 것을 결정하고 그 시간 이후는 그렇게 결정한 이유와 근거를 찾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아내와 쇼핑을 하러 가면 피곤하다. 이 가게 저 가게를 마구 휘젓다 어느 순간 물건을 선택한다. 그 물건을 선택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그저 첫눈에 든 것이다. 물론 그 물건을 선택한 근거를 대기도 하지만, 나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게 첫눈에 든 것이다.
특히 첫인상은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첫 번째 만남에서의 인상은 이후 모든 상호작용에 영향을 주며, 부정적인 첫인상은 긍정적인 것보다 회복하기가 훨씬 어렵다. 무엇보다 첫인상은 누구도 두 번 가질 수 없다. 기회는 단 한 번이다. 되돌릴 수도 없다. 따라서 첫인상을 잘 관리하는 것이 관계를 긍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열쇠가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처음 만나서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낄까. 사람마다 상대에 대해 호감을 느끼는 포인트는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요소를 가진 사람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첫째, 진정성이다. 사람들은 겉치레 없이 진정성을 가지고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우리는 누구나 상대에게 속임 당하는 걸 싫어한다. 속지 않기 위해 면밀히 상대를 살핀다. 상대가 속이지 않고 나를 위하는 마음이 있는지, 아니면 자신을 위해 나를 속이며 이용하고 있는지 척 보면 안다.
둘째, 따뜻하고 친근한 태도다. 처음 만났을 때 밝은 미소와 따뜻한 눈맞춤으로 인사하는 사람은 높은 점수를 받게 마련이다.
셋째, 공감력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감정이나 형편을 이해하고 함께 느끼려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이런 사람은 따뜻한 인상을 주고, 상대방이 자신을 존중받는다고 느끼게 한다.
넷째, 경청이다.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사람은 첫인상이 좋을 확률이 높다. 특히 상대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등 대화에 몰입하는 모습은 좋은 인상을 남긴다.
다섯째, 밝고 긍정적인 태도다. 처음 만났을 때 긍정적인 말을 건네거나, 유머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사람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여섯째,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이다. 사람들은 상대에게서 나와 공통된 점을 발견하게 되면 친근감과 호감을 느끼게 된다. 이를 ‘유사성의 법칙(Similarity Attraction Effect)’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가치관, 성향,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편안해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새에 자신감 있는 태도를 가진 사람도 상대방이 매력을 느끼게 하고, 관계를 이어가고 싶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첫인상 나쁠수록 반전과 역전 기회 커져
첫인상으로 승부해야 한다. 첫인상에서 좋은 점수를 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첫인상으로 모든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 수는 없다. 노력한 만큼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면 만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도 몇 가지 전략이 있다.
첫째,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실수했거나 오해 살 일이 있었다면, 즉시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면 얼마든지 관계를 회복할 기회가 있다.
둘째, 긍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불편한 첫인상을 남겼다면, 이후 행동에서 꾸준히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 작은 일이라도 책임감을 느끼고 성실하게 임하면 상대방의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셋째, 두 번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첫 만남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면 두 번째 만남에서 승부수를 던져보자. 편안하고 성의 있는 태도로 상대에게 다가가고, 그의 의견을 경청하며 자연스럽게 대화하다 보면 처음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을 뿐더러 사람이 달라 보이기까지 한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모든 관계는 만남에서 출발한다. 첫 번째 만남, 첫인상을 준비하자. 이것에 전력을 다하자. 하지만 이것이 실패했다고 실망할 일도 아니다. 실패에는 반드시 뒤집기가 따른다. 과도하게 좋은 첫인상은 다음 만남에 큰 실망을 불러올 수도 있다. 반대로 첫인상이 나쁠수록 반전과 역전의 기회는 커진다.
아내와 만난 지 40년이 가깝다. 아내는 하루하루 새롭다. 첫인상에 이끌려 결혼까지 했지만,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아내를 만난다. 새초롬한 깍쟁이 서울 여자가 아닌, 수더분하고 마음씨 고운 사람을 아침마다 발견한다.
강원국 작가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대통령 “김건희 특검법은 정치선동”···이재명 대표 “흔쾌히 동의할 만한 내용 아냐”
- [IT 칼럼] AI 캐릭터 챗봇과 두 번째 죽음
- 명태균 검찰 출석···“부끄럽고 민망, 돈은 1원도 받은 적 없다”
- [가깝고도 먼 아세안] (40) 키가 경제다? 베트남에 부는 ‘키 크기’ 열풍
- [김우재의 플라이룸] (55)엔지니어 리더십, 동양사학 리더십
- [요즘 어른의 관계 맺기](24) 첫인상으로 승부하라
- [서중해의 경제망원경](37) 노벨상이 말하지 않은 한국 모델
- [꼬다리] 언론은 계속 ‘질문’을 한다
- [오늘을 생각한다] ‘북의 판’에 휘둘릴 우크라 참전단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48) 공과 사를 둘러싼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