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계속 ‘질문’을 한다[꼬다리]
“(해당 언론은)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야 정의를 세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회사 입장을 반영해주지 않았습니다.”
“(언론이) 약자 입장을 보도하는 것이 훨씬 자극적이고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어서 회사 입장을 보도해주지 않았다는 취지인가요?”
“네. 그런 취지입니다.”
SPC그룹의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 탈퇴 종용’ 재판의 한 장면이다. SPC그룹 홍보담당 전무가 증인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SPC 측 변호인단 질의에도 수긍했다. 수많은 진술 중 유난히 이 대목에 생각이 머문 까닭은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어서다.
‘약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소수자’의 목소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왜 소수자의 목소리에 주목할까? 내 생각은 이렇다. 소수자들도 목소리가 있음을 공론장으로 가져와 알리는 ‘스피커 역할’이 곧 언론의 책무여서다. 다수의 목소리는 다양한 창구로 곧잘 전달된다. 자본을 업은 기업이라면 더 그렇다. 회사 견해를 담은 입장문부터 언론 인터뷰 등까지 다양하다. 공식 채널로 나온 사측의 입장을 언론이 무시하기란 어렵다. 소수자에 대한 보도는 언론으로선 더 검증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당위성이 있어도 그걸 보도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인 셈이다. 정의를 세운다고 생각해서라거나 자극적이어서 약자,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보도한다는 논리는 그래서 참으로 빈약하다.
SPC 재판에선 사측이 언론 대응을 위해 어떻게 나섰는지가 낱낱이 드러났다. 복수 노조를 이용해 사측의 입장을 마치 노조의 입장인 것처럼 알리는 식이다. SPC 측은 이러한 행위가 “보도 균형을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특정 사안에 관한 내용을 언급했지만 최근 들어 ‘내편 네편’을 가르는 말로 ‘가짜뉴스’가 오염돼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불순한’ 목적으로 허위보도가 이뤄졌다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의심에서 그치지 않고 수사가 이뤄지고 재판으로까지 이어지는 건 꽤 생경한 장면이다. 이런 틈을 비집고 사건 관련자들의 말은 계속 뒤바뀌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마구 퍼진다.
믿고 싶은 것만 보는 틀 안에는 참과 거짓, 사실과 의견, 진실이 한 데 뒤섞여 있는 듯 보인다. 언론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 자문해 본다. 영화 <트루스>(Truth·2015)는 미국 방송국 CBS 뉴스프로그램팀이 미국 부시 대통령의 군 복무 비리 의혹 사건을 다루면서 오보 논란 등에 휩싸이고, 이를 해명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들이 ‘우리가 잘 가고 있는 걸까’ 의심하며 흔들릴 때 선배 언론인 댄(로버트 레드포드 분)이 말한다. “질문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야. 어떤 이들은 쓸데없는 일이라 하고, 어떤 쪽에서는 늘 우리더러 편파적이라고 하겠지만, 우리가 질문을 멈추는 순간 패배하는 것이네.”
이 지점에서 나는 언젠가 세월호 유가족이 말한 “관심이 곧 진실입니다”를 대비해 본다. 그리고 스피커가 닿아야 하는 지점에 관심을 기울여 질문하고, 기록하는 걸 멈추지 말아야겠노라 다짐한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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