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뒤집어질 지경인데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십니까” [쓴소리 곧은 소리]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2024. 11. 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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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떠오른 중국 당나라 때 덕종 황제 이야기
“아내 문제 국정농단 아니고 침소봉대·악마화돼”…사과했지만 공허하게 들려

(시사저널=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윤석열 대통령은 변화의 기미는 보였으나 그뿐이었다. 허리를 굽혀 사과했고 제2부속실장을 임명하겠다고 했으며 국익에 필수라고 판단되는 경우 이외의 영부인 대외활동은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임기 반환점을 나흘 앞둔 11월7일 기자회견에서 그랬다. "지난 2년 반 동안 일년 365일 하루 24시간 몸이 부서져라 늘 행복한 마음으로 보람 있게 일하면서 진심은 늘 국민에게 있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보다 더한 복합위기 상황에 처하여 밤잠을 설치며 최선을 다했다"라고도 했다. "그 결과 경제가 기지개를 펴게 되었고 사상 최대의 수출을 달성했으며 성장률도 잠재성장률인 2%를 넘는 실적을 올리게 되었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이런 셀프 찬사 때문에 "제 불찰과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모두발언은 묻혀버렸다. 읽어내려간 담화문 때문에 사과의 메아리도 없었고 여운도 없었다. "어찌 됐건 간에 국민 걱정을 끼친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는 말미의 또 한번 사과도 창백하고 공허하게 들렸다.

사과의 진정성에 공감이 가지 못했던 이유는 특검에 대한 유난히 법률가적인 반대 입장 때문이다. 의회가 특검을 결정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헌법 원칙에 위배되며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미 수백 명을 수사했지만 나온 것이 없으니 정치 선동이라서 찬성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문제는 다수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60%가 넘는 국민이 특검에 찬성하면서 일부 여당 의원도 동조한다면 위헌이나 일사부재리에도 대통령다운 정치적 리더십으로 수용하는 게 정도다. 그랬다면 사과의 진정성이나 용기가 한층 돋보였을 것이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본다면 대통령의 특검 거부는 위헌이라서가 아니라 부인의 일이기에 반대한다는 인상을 떨치기 어렵다.

11월7일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기자회견을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국면 전환'보다 '민심 전환용' 인사 개편 필요

한 기자가 '어떤 부분에 대해 사과한 것인가, 너무 두루뭉술한 사과가 아니냐'고 물었을 때 대통령은 "어느 부분이 두루뭉술하냐"고 되물었다. "팩트를 꼭 찍어서 지적해 주면 꼼꼼하게 사과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다 맞다고, 다 잘못했다고 사과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구체적으로 사과하시는 부분이 무엇이냐'고 또다시 묻자 그때서야 "우리 부부의 처신이 잘못되었고 소통 프로토콜이 잘못되었고 국민을 속상하게 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대답했다. "제대로 사과하시라"고 당부했다는 영부인이 어떻게 평가했을지 궁금하다.

사과의 진정성을 느끼기 어려웠던 또 다른 이유는 명태균과의 관계를 깔끔하고 납득할 만큼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움을 준 사람의 축하전화여서 매정하게 거절하지 못했고 여론조사를 부탁한 적이 없으며 조작을 할 이유도 없었고 부적절한 일은 없었다"고 말했지만 국민은 쉽사리 수긍하기 힘들었다. 대통령은 어떤 일로 명태균과의 관계가 끊어졌다고 했는데 그 일이 무엇 때문인지 말하지 않았다. 공천 개입 문제도 미리 절차가 정해져 있어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했다. 부드럽게 회의 절차를 진행하라는 영부인의 조언은 국정농단이 아니라고 하면서 침소봉대가 있었고 악마화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영부인이 날밤을 새우면서 대통령 전화문자에 대신 답장을 보낸 적은 있는데 취임 후 휴대폰을 바꾸지 못한 잘못은 본인에게 있다고 책임을 인정했다.

행정부든 대통령실이든 인적 쇄신에 대해서도 시급성을 느끼지 못하면서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국면 전환용 개각이나 인사 교체는 없다는 기존 입장의 재탕이었다. 예산국회가 끝나고 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구성되어 가는 것을 봐가며 천천히, 필요하면 하겠다고 했다. 요약하자면 진전된 사과 자세가 없지 않았지만 국민이 납득할 만한 제대로 된 사과 및 해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중국 고사가 떠올랐다. 안록산의 난(755~763) 이후 쓰러져가는 당나라를 계승한 덕종 황제는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육지(754~805)의 간언을 듣고 개원의 치(713~742)에 버금가는 정원의 치적(785~805)을 이루었다. 덕종이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이냐'고 묻자 육지는 국민 정서, 즉 여론을 살피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신의 생각에 당장 가장 급한 과제는 국민 정서를 깊이 살피는 것입니다. 만약 국민이 깊이 바라는 것이 있으면 폐하께서 먼저 실행에 옮기십시오. 국민이 심히 싫어하는 것이 있으면 서둘러 제거하십시오. 세상이 다 싫어하는 것을 같이 싫어했는데도 천하가 따라주지 않은 적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대개 난을 다스리는 근본은 인심을 따르는 것에 있습니다." 육지는 다시 상소를 올려 "배는 군주요 물은 민심"이라고 했다.

"국민이 심히 싫어하는 것은 제거해야"

"물길을 따라가면 배는 뜨지만 거스르면 가라앉습니다. 군주가 민심을 얻으면 단단해지지만 민심을 잃으면 위태롭습니다." 국민이 무조건 옳고 무조건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했으면 위헌 요소가 있더라도, 일사부재리라도 이를 무릅쓰고 결단을 내렸어야 한다.

다음으로 육지는 신하의 잘못을 지적했다. 육지는 모든 혼란의 근본 원인을 군신들의 죄악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측근 신하들이 또렷한 이목을 가지고 간쟁을 펼쳐야 함에도 위태로움을 보면서도 충성심을 다하지 않고 전란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바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신하들이 올바른 이치로 다스리면 하늘이 전란을 일으키게 하는 법이 없으며 신하들이 어지럽게 정치를 하는데도 하늘이 평안함을 내린 적 역시 없다고 상소했다. 국정이 이렇게 어려우면 제일 먼저 인사를 혁신했어야 한다. 나가라고 안 해도 스스로 물러났어야 옳다. 국면 전환이 아니라 민심 전환을 위한 개각이 있었어야 했다.

끝으로 육지는 모든 잘못의 궁극적 책임은 덕종 본인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폐하께서는 높은 자리에 거하시면서 성지를 내리지도 물으시지도 않았습니다. 시신을 대하시고 또 별도로 재상들을 만나시지만 형식적인 말뿐입니다. 이미 실행된 것이면 실행했으므로 다시 따지지 못하게 하십니다. 점점 꺼리고 장애가 생기고 시기와 혐오가 생기니 이로부터 사람은 각자 정서를 숨기게 되고 말을 거리끼게 됩니다. 변란이 장차 일어나 억조가 걱정할 때쯤 되어도 유독 폐하만 전혀 모르고 천하가 잘 다스려지는 줄 생각합니다. 암혹한 군주는 온 나라에 원망과 저주가 가득한데도 귀로 들으려 하지 않고 깨달으려는 마음이 없어서 결국 세상이 뒤집어지는 지경이 되기까지 무엇이 잘못인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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