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투증권, 고려아연 지분 전량 매각…'최윤범 우군' 이탈 본격화
윤관 대표도 고려아연 지분 대부분 매각...우정보다 실리 택해
최 회장 우호세력에 균열 조짐...경영권 방어 더욱 어려워져
한국투자증권이 고려아연 지분 0.8%(15만8861주) 전량을 모두 매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영권 분쟁으로 주가가 이상 급등한 상황에 차익을 거둘 기회를 포기했다가 자칫 배임 우려가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자신의 우군이라고 주장해온 백기사 군단에 이탈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배임 우려에 결국 등 돌린 한투
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보유 중이던 고려아연 지분 전량을 처분했다. 일부는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주당 89만원)에 응해 정리했고, 나머지는 공개매수가 끝난 뒤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치솟을 때 매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투자증권은 그간 최 회장 측의 백기사로 분류됐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 최 회장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2022년 11월 고려아연이 ㈜한화와 LG화학 등과 자사주를 교환할 때 재무적투자자(FI)로서 고려아연 자사주를 사들여 보유해왔다. 매입가격은 주당 65만7807원, 총 1045억원을 투입했다. 정확한 평균 매도단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90만원 안팎에 팔았다고 가정하면 400억원 안팎의 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경영권 분쟁이 진행되는 동안 고려아연과 한국투자증권 사이에는 이미 미묘한 관계 변화가 감지됐다. 한국투자증권은 분쟁 초기 최 회장 측의 백기사로 등장해 재무적 지원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이번 분쟁에서 최 회장과 적잖은 거리를 뒀다. 최 회장 측이 진행한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와 영풍정밀 공개매수 주관사도 한국투자증권이 아닌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 하나증권이 맡았다.
한국투자증권은 2000억원 규모의 고려아연 기업어음(CP) 발행을 돕고, 고려아연과 함께 공개매수에 나선 베인캐피탈에 약 4000억원 규모의 브릿지론을 제공하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이번 분쟁에 개입하진 않았다.
업계에선 한국투자증권이 배임 우려로 인해 고려아연 지분을 정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상장사인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자기자본으로 고려아연 지분을 산 한국투자증권이 오너 일가의 개인적 친분 때문에 수익을 거둘 기회를 포기하고, 향후 경영권 분쟁이 끝난 뒤 주가가 급락해 손해를 본다면 자칫 배임 이슈가 불거질 수 있다.
초등학교 동창 윤관 대표도 이탈 조짐
한국투자증권 외에도 최 회장 측이 자신의 우군이라고 주장하던 백기사 군단에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의 남편이자 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맏사위인 윤관 블루런벤처스(BRV) 대표도 투자전문회사인 에이알티코퍼레이션을 통해 보유 중이던 고려아연 주식 4만1044주(약 0.21%) 대부분을 매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표와 최 회장은 경기초등학교 동기로 깊은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윤 대표는 백기사로 최 회장 측에 힘을 실어주는 대신 지분을 매각해 시세 차익을 내는 쪽을 택했다.
여의도에선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도 고려아연 지분을 일부 정리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고려아연 지분 0.7%를 보유하고 있었다. 앞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자회사 한국프리시전웍스는 고려아연 주식 1만주를 장내에서 사고 팔아 나흘 만에 약 8억원의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과 최 회장은 절친한 관계로 알려졌지만 주가가 이상 급등해 있는 만큼 실리를 챙긴 게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계열사인 HMG글로벌을 통해 고려아연 지분 5.0%(공개매수 전 기준)를 보유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미 최 회장 측과 거리를 두고 있다. 고려아연의 기타비상무이사인 김우주 현대자동차 기획조정1실장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를 의결한 이사회와 2조5000억원 규모의 기습 유상증자를 결의한 이사회에 모두 불참했다.
최 회장 측이 자신의 우군이라고 주장하는 백기사 중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건 한화그룹뿐이다. 고려아연 지분 7.8%를 보유 중인 한화그룹은 지난 6일 고려아연 지분을 계속 보유하며 사업협력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히며 최 회장 측의 백기사임을 우회적으로 선언했다.
최 회장 측이 자충수에 가까운 2조5000억원 규모의 기습 유상증자에 나선 것도 백기사의 균열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백기사가 모두 규합해도 의결권 기준 지분이 40.4%에 불과한 최 회장 측은 MBK파트너스·영풍 연합(43.9%)에 약 3.5%포인트 뒤지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백기사마저 빠져나가면 국민연금의 지지를 받더라도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질 가능성이 커진다. 유상증자를 통해 우리사주조합에 발행 신주 중 20%를 배정하면 최 회장 측은 약 3.4%의 우호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최 회장 입장에선 대규모 유상증자와 우리사주조합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최 회장 측도 주주명부 떼보면 '진짜' 우군이 누구인지 명확히 확인이 됐을 것"이라며 "우군 이탈 정도가 예상보다 크다면 경영권 방어가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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