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숙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생각을 여는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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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시집 한 권을 읽고 단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닿으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걔 됐더라 참하니 / 지 욕심 안 부리고 / 애가 마음이 딱 됐어 / 얼굴도 그만하면 됐지 연금 나오지 / 일단 애가 나대지를 않잖아"라는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에 관한 썩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가 오가는 식사 시간.
뼈를 발라내고 살을 뜯어내는 과정을 거쳐야만 먹을 수 있는 백숙은 그 번거로움으로 인해 어색한 순간에는 오히려 '구원자'가 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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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 권을 읽고 단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닿으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흔하지 않지만 드물지도 않은 그 기분 좋은 성공을 나누려 씁니다. '생각을 여는 글귀'에서는 문학 기자의 마음을 울린 글귀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은행잎은 뼈만 남고 / 우리는 일제히 백숙을 물어뜯는다 // 백숙은 우리의 구원자 / 할 말이 없어지면 할 말이 부끄러워지면 / 젓가락으로 백숙을 뒤적일 수 있도록 / 백숙은 제 몸을 산산이 펼쳐 놓는다.”
따뜻하고 맑은 국물 요리가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주변 사람들과 한 식탁에 옹기종기 앉아 김이 피어오르는 뜨끈뜨끈한 국물을 나눠 먹는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마음에도 온기가 번지는 것 같죠. 그러나 최재원 시인의 시집('백합의 지옥')에 실린 시 '세상의 죄를 사하러 온 백숙'에서의 식탁은 그런 따스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걔 됐더라 참하니 / 지 욕심 안 부리고 / 애가 마음이 딱 됐어 / 얼굴도 그만하면 됐지 연금 나오지 / 일단 애가 나대지를 않잖아"라는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에 관한 썩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가 오가는 식사 시간.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어지는 때에는 백숙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뒤적거려 봅니다. 뼈를 발라내고 살을 뜯어내는 과정을 거쳐야만 먹을 수 있는 백숙은 그 번거로움으로 인해 어색한 순간에는 오히려 '구원자'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 시는 2021년 첫 시집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로 제40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백합의 지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시집은 두께부터 내용까지 평범함을 거부합니다. 웬만한 장편소설 부럽지 않은 '벽돌책' 수준의 432쪽 분량의 80여 편에 시에는 정작 제목에 등장하는 백합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대신 목련과 장미, 벌레, 우주, 바다, 그리고 백숙까지 다채로운 '지옥'으로 독자를 이끌죠. 다만 그곳은 "읽으면 읽을수록 읽는 사람을 흡입하는 날것의 미학"(김혜순 시인)이 존재하는 지옥일 겁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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