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해 부치는 피자’색도 인종마다 다를까 [말록 홈즈]

2024. 11. 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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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렉스 에티몰로지’란 ‘자랑용(flex) 어원풀이(etymology)’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들의 본래 뜻을 찾아, 독자를 ‘지식인싸’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작은 단서들로 큰 사건을 풀어 나가는 셜록 홈즈처럼, 말록 홈즈는 어원 하나하나의 뜻에서 생활 속 궁금증을 해결해 드립니다. 우리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곤 합니다. 고학력과 스마트 기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문해력 감소’라는 ‘글 읽는 까막눈 현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단어는 사물과 현상의 특성을 가장 핵심적으로 축약한 기초개념입니다. 우리는 단어의 뜻을 찾아가면서, 지식의 본질과 핵심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학교를 떠난 이들의 지식 인싸력도 레벨업됩니다.

[말록 홈즈 41화]

한국인, 아일랜드인, 미국인 청년이 나란히 앉아 쾡한 눈으로 피자를 바라보는 모습을 빙으로 그려보았다.
어느덧 11월입니다. 이제 곧 송년회 시즌이 시작됩니다. 송년회 자리에 술이 결석하는 경우는 드물고, 연말 회사에는 엇비슷한 풍경이 펼쳐지겠죠. 책상 위엔 헛개수나 컨디션, 모닝케어 같은 숙취해소 드래곤볼들이 놓여 있고, 밤새 전사했던 사무전사들은 시들어버린 제정신에 시동을 걸려고 눈을 부릅뜹니다. 언제부터인가 환약과 젤리도 인기입니다. 고윤정, 박재범이 모델인 상쾌환과 컨디션 환이 고맙고, 한의사 이경제 원장님이 만든 술타민도 종종 은혜를 베풉니다. 그래도 최고의 숙취해소제는 절제입니다. 아무리 숙취해소식품이 좋아도 무리하면 약효도 반감하니까요. 특히 토할 때까지 마신 다음날에는 신물의 홍수에 제산제까지 먹어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다행스럽게 코로나 암흑기를 지나고 MZ세대의 합리적인 음주문화도 확산되며, 송년회도 줄고 음주시간도 가벼워졌습니다. 덕분에 지갑과 체력이 메마르지 않아 부담이 덜하지만, 한편으로는 송년회 핑계로 오랜만에 함께 들이붓던 벗들 생각에 섭섭함도 느낍니다.

예나 지금이나, 술을 참 좋아합니다. 대학생 시절엔 술자리가 매일을 마치는 일과였습니다. 토할 때까지 마시는 날도 많았습니다. 2000년 여름, 이러다가 큰 병 나겠다는 위기감이 엄습했습니다. 술을 끊고 동네 헬스클럽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돈 내고 하는 운동이라 정성을 다했습니다. 학교엔 안 가도 헬스장엔 등교하니, 한 달 만에 근육이 꽤 붙고 혈색도 좋아졌습니다.

“Hey man. Do you have a lighter?” (아저씨, 라이터 있어요?)

“오브 코우즈!” (그럼요!)

한 달이 지날 무렵 같은 헬스클럽에 다니던 그레이슨(Grayson)과 처음 만났습니다. 180cm가 넘는 큰 키에 미끈하게 잘생긴 미국 청년 그레이슨은,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제 첫 흑인 친구였는데, 엄밀히 말하면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유전자의 영향으로 탄력 있는 갈색 피부에 입체적인 이목구비를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의 매일 함께 운동하고, 귀갓길에 담배를 물었습니다.

“헤이, 렛츠 고 투 드링크!” (한잔하자!)

푹푹 찌던 8월 어느 저녁, 헬스클럽 에어컨이 고장나 운동하다가 몸이 퍼질 지경이었습니다. 두 달 가까이 외면했던 생맥주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Sounds sweet! I hate sweat!” (좋은 생각. 나는 땀이 싫어!)

그레이슨이 친구를 한 명 부르겠답니다. 그렇게 아일랜드에서 온 백인청년 가웨인(Gawain)을 만났습니다. 이 친구는 특이하게도 영어로 미술을 가르쳤습니다. 한국에 온 지 몇 해 지나서, 우리말을 제법 잘했습니다. 20대 중반 삼색 젊은이들이 싸구려 호프집으로 향했습니다. 검은 태양이 내리쬐는 밤, 눈송이같이 차가운 맥주가 폭포수처럼 식도에서 몸을 던집니다. 안주로 시킨 치킨엔 눈길도 가지 않을 만큼 시원하고 짜릿합니다.

“Koreans love only white people too much. They even like me because I look like Brad Pitt!” (한국인들은 백인만 너무 좋아해. 심지어 나까지 좋아해. 브래드 피트 닮았다고!)

술이 적당히 오르자 그레이슨이 푸념을 시작합니다. 그레이슨은 흑인이 말이 참 많다는 속설을 떠올리게 해준 소중한 친구입니다.

“No, You do not look like Brad Pitt. You are the clone of Tom Cruise!” (브래드 피트 안 닮았어! 넌 탐 크루즈 복제인간이야!)

가웨인이 맞받아칩니다. 이 친구도 평범한 녀석은 아닌 듯 보입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깡 좋고 술 세다는 말만 믿고, 소주를 시킨 게 화근이었을까요? 몰아 마신 술에 다들 떡이 돼 가고 있습니다.

“가웨인, 그레이슨이 뭐라는 거야?”

“지가 브래드 피트 닮았대. 그래서 톰 크루즈나 하라고 했어.”

“푸히힛, 컥컥!”

웃다가 갑자기 사래가 들려 기침을 했더니, 술이 얹힙니다. 급하게 양쪽 아래턱과 혀 밑에 침이 흥건하게 괴기 시작합니다. 구토의 사인입니다. 잽싸게 밖으로 튀어나옵니다.

“우욱, 웩!”

“괜찮아, 말록? 급하게 마시니 그렇지. 오바이트해도 더 마실 거지?”

등을 두드려 주는 가웨인. 말도 정신세계도 거의 한국인 같습니다.

“아우, 시큼한 냄새 나! 나도 토할래! 쿠웨엑~!”

아이구 머리야! 아일랜드산 가웨인이 구운 피자는, 내가 부친 김치전보다 색깔이 밝았습니다.

“대두, 한국사람들 토하면 왜 다 레드야? 내 건 브라운인데. 이유가 뭘까?”

“와, 추리력! 이 아일랜드산 셜록홈즈 같은 지니어스 휴먼비잉!”

“말록도 천재 같아 보여, 머리 커서. 그나저나 그레이슨은 토하면 무슨 색깔일까?”

호기심에 버무려진 눈동자 네 개가 씨익 웃으며 마주칩니다. 우리는 그레이슨에게 ‘천재 미남 브래드 크루즈’라고 찬사를 보내며 맥주를 먹입니다. 그레이슨이 토하러 튀어나가기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후다닥 따라갔습니다.

“가웨인, 레드야. 인종이랑 피자색깔이랑 관계 없나봐?”

“그런가? Hey, 브래드 크루즈. What did you eat for dinner?” (저녁 뭐 먹었냐?)

“I ate 김치볶음밥, 투 그릇, 우욱.”

그레이슨의 2차 분출을 지켜보며 깨닫습니다. 중요한 건 그릇의 모양이 아니라, 담긴 내용이라는 걸요.

[사진 출처] the greek foodie
피자(pizza)는 고대 로마인들의 ‘피체아(picea)’가 뿌리입니다. 피체아는 그들이 먹던 빵 ‘플라첸타(placenta)’의 그을린 아랫부분이나 빵 자체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이 ‘picea’가 ‘piza’를 거쳐 ‘pizza’가 됐다고 합니다. 한편으론 비잔틴 제국의 납작빵 피타(pitta)에서 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I said if you‘re thinkin’ of being my brother (난 말했지, 네가 내 형제가 되고 싶다면)

It don‘t matter if you’re black or white (상관없어, 네가 검든 희든)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사진 출처] cartoon brew
*감수: 안희돈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건국대 다언어다문화연구소 소장. 전 한국언어학회 회장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3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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