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미사이언스, 지분 보유 재단에 기부금 지급 멈춰…"의결권 매표 행위 논란"

박미주 기자 2024. 11. 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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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 8.02% 보유한 두 재단에 의결권 관련 적절한 확약 요구하며 기부금 지급 보류
가현문화재단은 한미사이언스 4만주 매도해 약 15억원 마련
한미약품그룹 오너일가/그래픽=이지혜

모녀 측과 경영권 분쟁 중인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가 자사 지분을 보유한 공익재단에 의결권 관련 적절한 확약 등을 요구하며 기부금 지급을 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임 대표는 재단에 공문을 보내고 중립을 지켜야 하며 적절한 확약이 이뤄질 때까지 운영비 지원을 보류하겠다고 알렸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의결권과 기부금을 거래 대상으로 본 의결권 매표 행위로, 주주의 권리 행사 관련 재산상의 이익을 공여할 수 없다고 적시한 '상법' 위반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임 대표 측은 재단이 모녀 측에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매표 행위라고 주장한다.

8일 법조계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임 대표는 지난 9월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재단에 공문을 보내 "적절한 확약 등이 이루어질 때까지 당사 및 당사의 주요 자회사들은 귀 재단에 대한 운영비 지원을 보류할 것임을 알려드린다"고 했다.

임 대표는 "귀 재단은 당사 주주총회에서 당사 주식에 관한 의결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법령상 요구되는 선관주의의무에 따라 의사결정을 해야 하며, 귀 재단이 당사 주식을 취득하게 된 경위를 고려한다면 현재 주요주주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대립될 수 있는 안건에 대하여는 중립을 지키는(혹은 출연비율에 따라 의결권을 불통일 행사하는) 것이 신의칙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귀 재단이 당사와 주요 자회사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운영비용의 재원을 마련하고 있음에도 당사의 기존 이사진과 경영진을 공격하는 사안에 관해 공격자 측을 위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조리에 맞지 않다"며 "이에 대한 귀 재단의 입장을 밝혀 주실 것을 요청드린다"고 했다.

이날 기준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재단은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각각 4.95%, 3.07%를 보유하고 있다. 두 재단의 보유 지분만 8.02%에 이른다. 경영권 분쟁 중 한 표가 아쉬운 상황에서 재단의 표가 '캐스팅보트'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앞서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두 재단은 모녀 측에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에 표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임 대표가 양 재단에 의결권 행사 시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하며, 확약서 제출 시까지 기부금 지급을 보류하겠다고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실제 한미사이언스와 주요 자회사들은 분기마다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재단에 보내던 기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가현문화재단은 최근 10년간 매각하지 않던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매도해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가현문화재단은 지난달 25·28·29일과 이달 1·4일 한미사이언스 주식 총 4만6000주를 장내 매도했다. 당일 종가 기준 매도금액은 약 17억원이다.

법조계에서는 두 재단이 임 대표의 요구에 응할 경우 상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익명의 변호사는 "재단들이 확약서를 작성해주고 기부금을 받는다면 회사는 누구에게든지 주주의 권리행사와 관련해 재산상의 이익을 공여할 수 없다는 내용의 상법 조항 위반이 될 수 있고, 상법에 따라 공여자와 수수자 모두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한미사이언스 대표가 본인을 포함한 특정 주주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자금을 사용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어 '배임'에 해당될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임성기재단 측은 본지에 "재단은 지속 가능하고 목적사업을 영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법과 정관에 따른 원칙과 절차에 따라 하겠다"고 밝혔다.

형제 측 한미사이언스 관계자는 "재단은 공익적 목적으로 운영돼야 하는데 특정 개인의 사익을 위해 운영돼 본래 목적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기능 상실을 우려해 중립을 지키라고 공문을 발송한 것"이라며 "중립을 지키겠다는 회신만 있으면 바로 기부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문 발송 관련 매표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선 "재단이 그쪽(모녀 측)에 붙는 것을 매표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고 답했다.

임 대표는 전날 기자간담회에서도 "가현문화재단, 임성기재단이 공정하고 중립적인 의결권 행사를 해야 한다"며 "만일 재단들이 편파적인 판단을 한다면 한미그룹을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재단 본래의 설립 취지와 목적에 맞게 운영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임종훈 대표 등 형제 측과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등 모녀 포함 3자연합 측은 오는 28일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벌인다. 임 대표 측 지분이 25.6%, 3자 연합 측 지분은 33.78%,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재단 지분은 8.02%, 친인척 지분은 3.10%, 국민연금이 5.89%다.

박미주 기자 beyo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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