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영화, 일본-홍콩의 전철을 밟아가나?[IZE 진단]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어느덧 2024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올해도 문화계는 다사다난했다. 숱한 화제작이 탄생하고, 스타가 명멸했다. 현재도 K-팝 시장에서는 걸그룹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가 '제2의 강남스타일'이라는 수식어와 더불어 글로벌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고, '오징어 게임2'의 공식 개봉 날짜를 확정한 넷플릭스를 필두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이 영상 시장의 주도권을 꽉 쥔 모양새다. 그렇다면 영화계는 어떤가? 팬데믹을 거치며 직격탄을 맞은 극장가는 엔데믹 전환 후 살짝 반등의 기미를 보였으나 이제는 침체기가 장기화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한 때 아시아 영화 시장의 맹주로 글로벌 시장을 호령했으나 이제는 과거의 추억을 곱씹는 홍콩 영화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섬뜩한 전망도 가볍게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올해 극장가 박스오피스를 보자.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흥행 톱10 중 5편이 한국 영화였다. 게다가 부익부 빈익빈이 심각하다. '파묘'(1191만)와 '범죄도시4'(1150만)는 1000만 대열에 합류했고, '베테랑2'(752만)이 그 뒤를 이었다. 배우 조정석의 코미디 연기가 돋보인 '파일럿'(471만)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탈주'가 256만 명을 모았으나, 거기까지였다.
이상적인 흥행 분포도는 당연히 항아리형이다. 1000만 영화와 100만 미만 영화는 극소수고, '허리'가 탄탄하면 그 산업은 산다. 하지만 현재 충무로는 피라미드형은 고사하고, 압정에 가깝다. 대부분 영화들이 바닥을 깔고 있다는 의미다.
통상 700만∼800만 명 이상을 모으면 대박, 300만∼600만 명은 중박으로 본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5편을 제외하고 2024년 개봉된 모든 한국 영화들은 100만 명대 미만이다.
'핸섬가이즈'(177만), '시민덕희'(171만), '외계+인 2부'(143만), '그녀가 죽었다'(123만), '사랑의 하츄핑'(122만)까지만 100만 명 이상 모았다. 이 역시 5편 뿐이다. 나머지는 100만 고지도 밟지 못했다. 쟁쟁한 배우들이 참여한 '댓글부대'(97만), '대도시의 사랑법'(84만), '행복의 나라'(71만), '원더랜드'(62만), '보통의 가족'(62만) 도 통 힘을 못 썼다.
마땅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절망적이다. 사실상 특정 배우의 티켓 파워는 유명무실해졌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보자. 연초에는 '파묘'가 1000만 관객을 모은 김고은의 주연작인 '대도시의 사랑법'은 100만 고지가 요원하다. 조정석은 471만 관객을 동원한 '파일럿'과 71만 명에 그친 '행복의 나라' 사이에서 희비쌍곡선을 그렸다.
향후에는 중소형 영화 제작이 더 활발해질 것이란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오고 있다.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만든 '핸섬가이즈', '시민덕희', '그녀가 죽었다' 정도만 손익분기점을 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통상 제작비 40억 원이 투입된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100만 명 정도 선이다. 200억 원 규모 영화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500만 명을 동원해야 한다는 의미다. 올해 기준으로는 '흥행 톱3'에 들어야 가능한 수치다.
하지만 제작비 100억 원 미만 영화만 만들어선 산업이 커질 수 없고, 장르도 다변화될 수 없다. 이는 일본 영화 시장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 영화계에서 소위 '블록버스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보다는 이야기 자체에 초점을 맞춘 현실적인 내러티브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일본식 멜로'가 여전히 주목받지만, 시장 다양성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일본 영화 시장은 오래 전부터 정체돼 있다.
홍콩은 어땠을까? 1980년대를 기점으로 '영웅시대', '첩혈쌍웅' 등 홍콩 누아르와 '동방불패', '천녀유혼' 등 판타지 무협이 아시아 시장을 석권했다. 당시 영국령이었던 홍콩은 중국에 비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았고, 가정용 비디오의 활성화는 홍콩 영화의 활황을 부추겼다. 하지만 범죄조직인 삼합회의 영화 이권 개입,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으로 인한 소재 제약과 자본 투자 감소 등이 홍콩 영화 시장의 하락세를 가속화시켰다.
물론 한국의 상황은 홍콩, 일본과는 다르다.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사회의 확산, OTT 시대의 도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산업이 하향 곡선을 그리며 투자가 위축되고 콘텐츠 질적 하락으로 관객이 외면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건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답은 다시금 콘텐츠다. 충무로가 정점을 찍던 지난 2019년, 극장가에는 돈이 넘쳤다. 그렇다 보니 완성도 낮은 시나리오가 범람했다. 비싼 관람료를 지불하고 극장을 찾은 대중의 실망감이 커졌다. 여기에 팬데믹 상황이 벌어졌고, 상대적으로 값싼 구독료로 즐기는 OTT 준수한 콘텐츠가 넘치니 대중은 더 이상 극장을 찾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묘', '범죄도시4' 등 볼 영화는 본다. 아주 간단한 이치다. 재미있으면 본다. 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발굴해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또 다시 투자가 필요하다. 결국 극장가의 부활을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자본 유치와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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