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조·이기정 등 ‘김 여사 라인’ 건재한데…‘8상시’ 존재 부정한 尹

박나영 기자 2024. 11. 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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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 운전’ 논란 행정관 尹 회견 전날 복귀…尹은 한동훈 ‘8상시’ 교체 건의 묵살
與 내부에선 “이중권력으로 국정 시스템 오작동”…尹 “부인이 도울 수 있지 않나”

(시사저널=박나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사과를 전한 11월7일에 하루 앞서,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었던 강기훈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이 대통령실로 복귀했다. 면허취소 수준을 넘는 음주량에 '정직 2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처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강 선임행정관은 이른바 '체리따봉' 사건에도 등장했던 인물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요구했던 대통령실 교체 대상 참모 중 한 명으로 전해진다. 한 대표가 10월21일 윤 대통령과의 회담 자리에 지참한 빨간 파일에 적힌 속칭 '8상시' 명단에 강 선임행정관도 포함됐다는 것이다. 

'십상시' '김건희 라인' '한남동 라인'…. '용산'에 두 개의 권력이 존재하고, '김건희 여사 비선 라인'이 득세한다는 얘기는 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김 여사의 '픽(pick)'으로 대통령실에 입성한 인물들로, 비서실장이나 수석 등보다 내부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는 '김 여사 라인'으로 알려진 8명의 실명을 윤 대통령에게 일일이 언급하며 교체를 요구했는데, 이들은 이기정 의전비서관, 김동조 국정기획비서관, 강훈 전 대통령실 정책홍보비서관, 최재혁 홍보기획비서관, 강기훈 국정기획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대표의 끈질긴 '김 여사 라인' 교체 요구에는, 이들이 건재하는 한 국정기조가 바뀔 수 없고 대통령실의 기강이 제대로 설 수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실무자가 자기 일이 아닌 엉뚱한 일을 하면 조사·조치하겠다"고 단언하면서도 '김 여사 라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실 인적 쇄신에 관해서도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가운데 강 선임행정관의 업무 복귀는 '김 여사 라인'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실의 '김 여사 라인'이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국정운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 당시 최순실씨는 존재를 감추고 직함 없이 움직인 비선이었지만, 현 대통령실의 비선 라인은 김 여사와 밀착해 상황 인식을 공유하고, 업무 범위를 넘어 인사, 정책 등에 입김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방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국민 찬성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김 여사가 마포대교 시찰 등 공개 행보에 나서거나 대통령실이 대국민 사과 타이밍을 놓친 것, 총선 참패 후 대통령실 비서실 개편과 관련해 양정철 비서실장-박영선 국무총리설 기사가 보도된 것 등이 비선 라인에 의해 국정 시스템이 오작동한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김건희 여사가 9월19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체코 공식 방문에 동행하며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여사 라인'이 尹 대통령 대국민 사과 반대"

"용산에 '십상시' 같은 몇 사람 있다." 소문으로만 증폭되던 김 여사 비선 라인 의혹은 대통령실 내부 목소리를 통해 구체적인 실체가 드러났다. 10월7일 한 매체가 공개한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의 녹취록에서 김 전 행정관은 "(김건희) 여사가 자기보다 어린 애들을 갖고 쥐었다 폈다 하며 시켜먹는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냥 다 얼굴마담"이라고 말했다. 그는 "40대고 옛날 박근혜 정부 때 있었던 애들이 여사하고 딱 네트워킹이 돼가지고 한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박근혜 때도 있었잖아. 이번에 당선된 조○○, 그다음에 강○○ 그런 애들"이라며 "여사와 가까운 몇 명, 황○○, 동해의 황 회장 아들이고 그다음에 송파에서 나왔던 김○○, 젊은 애들"이라고 언급했다. 녹취 시점은 지난 4월 총선 직후였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은 대체로 '김 여사 라인'이 측근들에게 주장해온 국정기조와 묘하게 일치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 핵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동조 국정기획비서관 등 김 여사 라인을 주축으로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반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비서관은 삼성증권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2013~14년 코바나컨텐츠 주최 행사에서 도슨트(전시물 설명 안내인)로 활동했다. 윤석열 대선 캠프에선 메시지 총괄을 담당한 바 있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김 여사 라인으로 알려진 참모들이 국정농단 사건을 비롯해 100건이 넘는 사례 분석을 통해 국민에게 사과할 경우 여론이 더 악화된다는 주장을 펼쳤고, 윤 대통령이 그 논리와 의견을 수용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정치권 인사는 "김 여사 라인으로 알려진 이들이 언론사 데스크들을 만나 윤 대통령 부부는 잘못이 없다는 주장을 피력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기정 의전비서관은 윤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만나서 산책을 할 때 윤 대통령 바로 곁에 계속 자리하면서 셋이 함께 사진이 찍혀 논란을 낳은 인물이다. 이 비서관은 비서실장과 정무·홍보수석의 공식 부인에도 개의치 않고 '박영선 총리-양정철 비서실장설'을 언론에 흘리며 김 여사 라인의 존재감을 드러낸 바 있다. 핵심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여사가 이 비서관에게 이 같은 의견을 지속적으로 전달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 내 두 세력 간 알력은 윤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있어왔다고 한다. 비서실장과 정무·홍보수석 등 공식 라인과 김 여사 라인 간 갈등인데, 명태균 문제 해결책부터 인사 문제, 당정 관계까지 서로 다른 상황 인식과 해결책으로 양측 간 갈등의 골도 깊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취임 일성으로 '비서, 정치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자, 대통령실의 '군기 잡기'가 시작됐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이후 김 여사 라인의 존재감이 더 커지면서 정치 경험이 풍부한 정 비서실장조차 이들에게 밀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엔 한 대표가 김 여사의 공개 행보 자제,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한 사실상 기소 요구에 이어 '김 여사 라인 경질'까지 꺼내들며 대통령실의 변화를 촉구하자, '용산'의 행정관 20여 명이 집단성명으로 항의 표시를 하려 했다가 무산된 일이 있었는데, 이것이 한 대표뿐 아니라 자신들을 감싸지 않는 '용산 지도부'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는 얘기도 돌았다. 

김동조 국정기획비서관, 이기정 의전비서관 ⓒ뉴시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연합뉴스

정진석 비서실장도 막지 못한 '김 여사 라인'

대통령실의 안이한 상황 인식과 느슨한 대처가 권력 누수를 더욱 촉진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11월1일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에서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관련한 의혹 제기에 "대통령은 명태균씨를 매몰차게 끊었지만 (다만) 배우자인 김 여사는 그렇게 못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을 바라보는 '용산' 참모들의 시각이 국민 눈높이와는 차이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윤 대통령 또한 기자회견에서 김 여사 활동 전면 중단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대통령 부인이 공직자는 아니지만 대통령과 함께 선거를 치르고 대통령을 도와야 하지 않나"라면서 "회의 때 (대통령이) 참모들 야단친다고 하는데 (분위기를) 좀 부드럽게 하는 것이 국정 관여는 아니지 않나. 대통령 면전에 (참모들이) 하기 어려운 걸 부인이 하는 면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이른바 '8상시' 교체 요구와 관련한 질의에는 "검찰총장 때부터 집사람을 타깃 삼아 악마화해 왔다"면서 "과거 육영수 여사께서도 청와대 야당 노릇 했는데, 대통령 부인의 조언 등을 국정농단화시키는 것은 우리 정치문화상 맞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을 넘는' 김 여사의 역할을 대통령 스스로 허용하고 있고, 김 여사 라인의 월권이나 공무 개입이 공적 시스템 통제 내에서 허용되고 있다는 뉘앙스로까지 읽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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