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고무줄 회계’ 제동, 보험료 인상 압박 커진다

이학준 기자 2024. 11. 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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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S17 가이드라인, 연말 결산부터 적용
해지율 가정 변경되면 무·저해지 보험료 인상
실제 보험료 인상 폭은 크지 않을 수도
손해보험사 사옥 전경.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삼성화재, KB손해보험, 현대해상, 흥국화재. /각 사 제공

금융 당국이 보험사에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을 조정하라고 요구하면서 보험료 인상 압박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해지율이 낮아지면 손해율이 오르면서 보험료 인상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보험사가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마진을 포기하면서 현재 보험료를 유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어, 실제 인상 폭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무·저해지 상품은 표준형 상품보다 보험료가 저렴한 대신, 보험료 완납 전 계약을 해지하면 해지환급금을 아예 지급하지 않거나 일부만 지급하는 상품이다. 계약을 해지하는 고객이 많아질수록 보험사의 이익이 늘어나는 구조다. 금융 당국은 보험사들이 자의적으로 해지율이 클 것이라고 가정해 상품의 수익성을 부풀렸다고 의심하고 있다.

8일 금융 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보험사들이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을 높게 가정해 이익을 부풀렸다고 보고 보험료 납입 완료 시점에 다가갈수록 해지율이 0%에 수렴하는 새로운 회계제도(IFRS17) 원칙을 마련해 전날 발표했다.

금융 당국이 제시한 원칙모형(로그·선형모형)의 해지율은 가입 초반에 가파르게 낮아지고, 보험료 완납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완만해진다. 보험료를 많이 낼수록 계약 해지에 따른 손해도 커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계약을 해지하는 고객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반면 일부 보험사가 적용한 모형의 해지율은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완만하게 하락한다.

금융 당국이 제시한 원칙에 따라 해지율을 현재보다 낮게 가정하면, 상품의 손해율이 늘어나 마진이 줄어든다. 보험사는 줄어든 마진만큼 보험료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 올해 1분기 전체 장기보험 매출 중 무·저해지 비중이 절반을 돌파한 상황이라, 보험료 인상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 당국도 이번 가이드라인이 보험료 인상 요인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일부 보험사는 마진을 포기하고서라도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가격 경쟁력을 높여 매출 외형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금융 당국도 이런 보험사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보험사가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보험사도 보험료 인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실질적인 보험료 인상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보험업계도 비현실적인 선택지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일부 보험사가 금융 당국이 원칙으로 삼은 로그·선형모형이 아닌 예외모형(선형·로그모형)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예외모형은 원칙모형보다 해지율을 높게 가정하기 때문에 보험료 인상 압박이 덜하다. 예외모형을 선택하면 보험사는 감사보고서·경영공시에 원칙모형과 예외모형의 차이점 등을 상세히 공시해야 한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차 보험개혁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단기납 종신보험의 해지율을 최소 30% 이상으로 설정하라는 금융 당국의 권고안은 보험료에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5~7년 동안 보험료를 내고, 10년째 계약을 해지하면 낸 보험료의 120~130%를 해지환급금으로 지급하는 상품이다. 무·저해지 상품과 달리 해지율이 높아지면 지급해야 할 해지환급금이 증가해 보험사의 유동성과 당기순이익에 악영향을 미친다.

다만 생명보험업계는 많은 보험사들이 적용한 해지율 가정이 금융 당국 제시안과 큰 차이가 없어 당기순이익이 줄더라도 감내할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보험개혁회의에서도 생명보험업계는 별다른 반대 의견을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이 낮아지면 위험요율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보험료가 인상된다”라면서도 “실제 얼마나 오를 것인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는 데다 가격경쟁력 차원에서 보험료를 올리지 않을 수 있어 실제 가이드라인 적용 시점이 돼야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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