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 ‘박근혜의 길’ 가려 하나…끝내 나오지 않은 국정 쇄신 [유창선의 시시비비]
(시사저널=유창선 시사평론가)
돌아선 민심을 되돌릴 획기적인 국정 쇄신책은 나오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월7일 대국민담화를 하면서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고 제 부덕의 소치"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이어진 기자회견은 이전과는 달리 시간제한 없이 자유로운 문답이 오갔다. 명태균씨와의 관계, 공천 개입 논란, 김건희 여사 문제 등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질문과 설명이 있었다. 이제까지 윤 대통령이 비판받았던 '불통'의 모습을 생각하면 진일보한 모습인 것은 사실이다. 윤 대통령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은 충분히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까지 했으면서도 정작 국정 쇄신이라는 핵심적인 과제에 대한 의지나 구상은 듣기 어려웠다. 이날 했던 윤 대통령의 말들이 돌아선 민심을 회복시키기는 역부족이다. 뒤늦게 국민과의 소통에 나선 모습이지만, 윤 대통령이 처한 위기 상황은 여전히 심각해 보인다.
레임덕 수준으로 추락한 10%대 지지율
11월10일은 윤 대통령의 5년 임기가 반환점을 도는 날이다. 그런데 이를 앞두고 윤 대통령 지지율이 '마의 구간'인 10%대로 하락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10월29∼31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19%, 부정평가는 72%로 각각 집계됐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갤럽 조사 기준으로 윤 대통령 지지율이 20% 아래로 내려간 것은 처음이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대국민 사과를 할 때 대통령 지지율이 17%였으니 그에 근접한 셈이다. 시점상으로 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박 대통령보다 훨씬 빠르게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10%대까지 추락한다는 것은 전통적 지지층까지 등을 돌린다는 얘기이고, 자연스럽게 임기 후반의 레임덕 현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보수신문인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10%대 국정 지지율은 탄핵 국면이나 IMF 사태 같은 극단적인 상황 때나 나오는 수치다. 이제 막 임기 반환점을 도는 정권에선 좀처럼 나타날 수 없는 지지율"이라며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했을 정도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10월28일부터 11월1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1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같은 조사 기준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22.4%였다. 이 또한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이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 여론조사들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제는 이같이 등 돌린 민심을 되돌릴 만한 기미를 윤 대통령이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기자회견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특히 정국에 느닷없이 명태균이라는 정치 브로커의 이름이 등장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 시절의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윤 대통령은 명씨와의 관계가 후보 경선 이후부터는 별것 아니었다는 식의 해명을 했다. 그리고 명씨가 최순실씨만큼 국정에 실제로 관여한 흔적도 아직 나타난 것이 없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가 책임질 수도 신뢰할 수도 없는 비선 인물과 정치를 함께 했다는 의심은 '최순실 트라우마'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윤 대통령이 명씨와 공천 얘기를 나눈 것이 민간인인 당선인 신분 때 일이라 하더라도, 위법 여부를 떠나 정치 브로커와 함께 대선을 치르고 공천 얘기를 했다는 정황들이 그러하다. 더구나 근래 들어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와 있었던 일들에 대해 무차별적인 폭로를 하는 광경을 보면, 대체 윤 대통령이나 김 여사의 사람 보는 눈이 어떻길래 번번이 이런 폭로를 당하는가를 묻게 된다.
지금은 임기 반환점을 도는 윤석열 정부의 일대 위기다. 민심을 제대로 읽고 수습해야 할 여권 세력은 윤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 사이의 대립과 갈등으로 분열이 계속되고 있다. 흉흉한 민심에도 윤 대통령의 가시적인 쇄신 노력이 따르지 않자 한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사과와 김 여사의 대외활동 전면 중단, 대통령실의 인적 개편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국민의 실망은 정부·여당에 큰 위기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솔직하고 과감해져야 한다"며 사실상 윤 대통령의 책임 있는 쇄신 조치를 촉구했다.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이 했던 말대로라면 사과도 했고, 김 여사는 국익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활동을 중단한 셈이다. 물론 대통령실의 인적 개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세 가지 요구 가운데 두 가지는 받아들인 것으로 윤 대통령은 생각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의 쇄신 의지가 부재한 것으로 여론이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윤 대통령 본인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윤 대통령에게서 민심이 떠나간 상황에서 명씨의 등장은 윤석열 정부를 휘청거리게 만든 악재가 됐다. 민심은 한층 흉흉해졌고 전통적 보수층마저도 윤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리는 현상이 여러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이 또한 박근혜 정부 말기에 나타났던 현상과 닮은꼴이다.
박근혜 정부 말기와 비슷한 尹 정부 향한 여론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겨냥한 다각적 방법을 저울질하는 모습이다. 민주당에서는 국민의 탄핵 피로증을 감안해 아직 윤 대통령 탄핵을 당 차원에서 공론화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 등을 통해 '스모킹건'이 발견될 경우 탄핵소추에 발동을 걸 가능성이 크다. 야권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 임기 2년 단축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을 주장하는 '임기단축 개헌 국회의원 연대' 준비모임이 출범했다. 앞으로 여당 내 친한계의 움직임에 따라서는 '김건희 여사 특검'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 등도 어떤 길로 들어설지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용산의 모습이야말로 진짜 위기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에서 근본적인 국정 쇄신책을 내놓지 않은 윤 대통령의 모습은 민심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고 안이하게 느껴진다.
이대로 간다면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도 더 일찍 레임덕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의 길을 자신도 따라갈 것인지, 이제라도 근본적인 국정 쇄신에 나설 것인지, 윤 대통령 스스로 선택해야 할 기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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