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도발 ‘정보 공개’ 인색한 합참, 왜 갑자기 친절해졌을까

권혁철 기자 2024. 11. 8. 09: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권혁철의 안 보이는 안보
북쪽 미사일총국이 지난 10월31일 시험발사한 미사일은 “최신형 ‘화성포-19형’”이며 “최종완결판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지난 1일 노동신문이 1~3면에 펼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답변이 제한됩니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국방부 당국자이나 합동참모본부(합참) 군인들한테 궁금한 것을 물으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특히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난 뒤 구체적 기종과 성능을 질문하면 자동응답기처럼 “답변이 제한된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합참은 북한 미사일의 비행거리만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공개하고 고도, 속도는 보안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와 달리 일본 방위성은 북한 미사일의 비행거리, 고도, 속도를 공개한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북한 미사일 정보를 일본 방위성 발표를 근거로 보도하면, 나라 자존심도 떨어지고 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떨어진다”며 추가 설명을 요청하지만, 합참은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면 대북 정보수집 능력이 노출된다”며 응하지 않는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북한이 지난달 31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지난해 12월18일 고체연료 아이시비엠 화성-18형을 발사한 지 약 10개월 만이다. 당시 기준으로 닷새 앞둔 미국 대선과 북한군 러시아 파병 등이 얽혀 민감한 시기였다. 합참은 이날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 미사일의 고도와 비행 시간 등은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오후 2시 합참 작전부장 안찬명 육군소장이 방송 카메라 앞에서 대북 경고 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북한 아이시비엠에 대한 구체적 정보 분석 결과를 설명하는 백브리핑을 합참에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백브리핑은 공개 브리핑과 달리 방송 카메라가 없는 상태에서 합참 당국자가 실명을 밝히지 않고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을 말한다.

북한이 경의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한 지점(도로표지판 위 도로 끊어진 흙 바닥)에 전차의 기동을 막는 콘크리트 구덩이를 파고 흙으로 방벽을 세웠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지난주까지 보안을 앞세워 국민 알 권리에 뻣뻣했던 합참이 이번 주 들어 갑자기 친절해졌다. 합참은 지난 4일 오후 북한이 경의선·동해선 남북연결도로에 대전차구(전차의 기동을 차단하기 위해 판 구덩이)를 파고 흙을 쌓아 언덕 형태의 성토지(방벽)을 만들었다고 밝히고 관련 사진 3장을 제공했다. 당시 기자들이 관련 설명을 요청하지 않았는데 합참 관계자는 이날 오후 스스로 기자실로 찾아와 설명을 자청했다. 이날 오전 11시까지는 사전 예고가 없던 ‘번개 설명’이었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은 작업이 끝난 지난 1일 동해선 성토지 위에 북한 국기인 인공기를 걸어두고 사진을 찍은 다음 그날 인공기를 철수했다”며 “이곳이 자기 땅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쇼’라고 보고 있다”고 밝히며 인공기 게양 장면 사진도 기자들에게 제공했다. 합참 관계자는 대전차구, 성토지 공사가 군사적 쓰임새보다는 북한이 주장하는 ‘남북 연결 완전 차단’ 조처를 완료했다는 것을 알리는 “보여주기식 공사”라고 설명했다.

이례적인 합참의 자발적 설명에 대해 한 국방부 출입기자는 “합참이 북한의 움직임이 군사적 위협보다는 보여주기식 공사라고 평가했는데, ‘보여주기’란 북한 의도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합참은 안 보기(무시하기)로 대응하는 게 맞지 않느냐”며 “합참이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사진까지 공개해 북한이 노린 ‘보여주기’ 효과를 키운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이 북한의 단거리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 보도를 지켜보고 있다. 군은 이날 오전 7시 30분께 북한 황해북도 사리원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단거리탄도미사일 수발을 포착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오전 북한이 5일 단거리탄도미사일 여러 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북한 단거리 미사일은 아이시비엠과 같은 전략무기가 아닌 데다 북한이 비교적 자주 발사한다. 이 때문에 북한이 단거리미사일을 쏘면 합참은 출입기자들에게 주요 사실관계를 문자로 알리는 데 그쳤다.

합참은 지난 5일 오전 이례적으로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입장문을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발표하고 오후에는 기자단 백브리핑을 자청했다. 합참은 남기수(해병대 대령) 합참 공보부실장 명의의 입장문에서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이후의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다시 한 번 경고한다”고 밝혔다.

합참 관계자는 최근 계속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러시아 파병이 드러난 상황에서 파병에 대한 관심을 희석시키고 국면 전환을 노리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합참 관계자는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준비가 진척됐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도 (발사 준비가)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평소 “정보사항”이라며 언급을 꺼리던 북한군의 움직임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파괴력이 센 전략무기인 아이시비엠 발사 때는 기자들이 요청한 백브리핑을 거절했던 합참이 북한의 재래식 무기인 단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백브리핑을 자청한 이유가 뭘까. 합참 관계자는 “북한이 러시아 파병을 하고 미 대선이 임박했다. 북한이 남북연결 도로 폭파에 이은 대전차구, 성토지 공사를 했고, 아이시비엠에 이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바로 쏜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제 상황이 엄중하고 북한의 연속도발이 합참이 갑자기 친절해진 이유란 것이다.

그러자 한 출입기자가 물었다. “합참이 북한의 잇단 도발 의도를 ‘국면전환’이라고 설명하는데, 남북이 모두 국면전환에 애쓰는 느낌이 든다.” ‘김건희 여사 논란’이나 ‘명태균씨 관련 의혹’ 등에 쏠린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고 그동안 ‘제한된다’며 꺼리던 북한 군사정보을 제한 없이 공개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합참 관계자는 “군인은 정무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