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삼매경 정진의 참맛[시인의 서재]

2024. 11. 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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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기 무섭게 옥상에 올라가 이 흙 저 흙을 뚫고 몸을 세워서는 이 방향 저 방향으로 가지를 휘어대는 장미를 보는 일, 제 하루의 시작이라면 무릇 그렇습니다.

삶에 있어 유연히 휠 줄 아는 '자세'와 그것이 무엇이든 흘러가게 두고 볼 줄 아는 '태도', 하고 많은 것 가운데 일단 '흙'을 한 줌 쥐고 서두를 여는 건 남은 제 한 손에 그를 빼닮은 책이 하나 들려 있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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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서재

해가 뜨기 무섭게 옥상에 올라가 이 흙 저 흙을 뚫고 몸을 세워서는 이 방향 저 방향으로 가지를 휘어대는 장미를 보는 일, 제 하루의 시작이라면 무릇 그렇습니다. 자연은 아침저녁으로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로 하지 않고 일상 속 사소한 일에” 저를 녹여 내게 참회니 깨달음이니 하는 골치 아픈 단어들을 냄새로 알게 하고 바람으로 흘리게 합니다. 삶에 있어 유연히 휠 줄 아는 ‘자세’와 그것이 무엇이든 흘러가게 두고 볼 줄 아는 ‘태도’, 하고 많은 것 가운데 일단 ‘흙’을 한 줌 쥐고 서두를 여는 건 남은 제 한 손에 그를 빼닮은 책이 하나 들려 있어서입니다.

‘흙을 먹는 나날’이라는 제목입니다. 전후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미즈카미 쓰토무의 작품으로 1982년 책으로 처음 출간됐으나 1978년 1월부터 12월까지 잡지에 연재된 것을 묶었다 하니 근 46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타이틀 가운데 ‘먹는’에서 힌트를 얻으셨을 테고, 열두 달 연재물이라는 부연에서 실마리를 끄집어내셨을 것으로 압니다. 네네, 쉽게는 작가가 아홉 살에 시작한 승려 생활로, 부엌에서 사찰요리를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매달 펼쳐 보인 제철 음식 관련 책이라 하겠습니다. 네네, 어렵게는 “부엌일을 하는 사람이 돼서 요리 삼매에 빠지면 거기에 문자도, 수행도 열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경지’의 지경을 보이는 책이라 하겠습니다.

이쯤 해서 저는 이 책의 부제인 ‘나의 정진 열두 달’에 주목합니다. 힘써 나아간다는 ‘정진’, 요리에 있어서의 정진은 그 근본인 재료부터 따끔하게 따져 묻는 일일 것입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밭과 의논해서 채소와 상의해서 정하는 것이라고요. 토란을 통곡하게 할 만큼 칼로 껍질을 싹 다 벗겨버리는 일이 아니라고요. 볼품없는 무를 비웃을 자격이 우리에게는 없다고요. 나무도 사람과 비슷해서 심히 일한 다음에는 자고 싶어질 것이니 올해 흉작이어도 내년에는 열매 많이 맺게 해달라고 두 손 모아 합장할 수밖에 없다고요. 그러믄요, 정진의 본질은 계절을 먹는 데 있기에 흙을 먹는다는 건 제철 재료를 먹는다는 얘기일 겁니다. 묘하죠. 알맞은 시절에 나는 진정한 참맛의 현현을 우리는 왜 평소에는 마주하지 않다가 몸에 병이 들어 곧 흙이 되지 않겠나 하는 경고를 듣는 그제야 허겁지겁 마주 보곤 하는 걸까요.

다분히 흙과 악수하는 책이 되어주기에 다 읽기도 전에 친하게 지내는 두 명의 요리사에게 각각 주문해 보냈습니다. 어떤 목적이 있었다면 다 읽고 난 뒤에 가늠이란 잣대를 대보았겠으나 그렇게 지체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책이었습니다. “그저 입을 다물고 묵묵히 만들면 된다.” 내가 요리에 대해 뭘 안다고 건방을 떠나 전전긍긍이었는데 박찬일 요리사의 추천사를 보니 심히 안도였습니다. “이론과 문자가 요리를 해주지 않는다.” 참, 저를 위해서는 ‘맛의 달인’ 33권을 주문했습니다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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