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없었던 기자회견…서로 달랐던 ‘윤석열의 눈높이’와 ‘국민의 눈높이’
‘김건희 여사·명태균 논란’에 “부적절한 일 없었다” 조목조목 반박
“동문서답” 野 맹폭 속…與 지도부 일각 “金 여사 특검 이탈표 발생 우려”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걱정입니다. 국민들께서 뭐라 생각하실지…."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담화·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던 11월7일 낮 12시경, 국민의힘 한 핵심 관계자에게 총평을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그가 한숨을 쉬고 있는 사이 윤 대통령은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논란에 "국정을 원만하게 하길 바라는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하면 국어사전 정의를 다시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이러면 안 된다"며 거듭 한숨을 쉰 뒤, "대통령의 모든 답이, 그리고 태도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진행된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기자회견'이 되레 불난 집에 끼얹은 기름이 된 모양새다. 국민 앞에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담화를 시작한 윤 대통령이 이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는 일련의 논란들을 부인하고 반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면서다. 특히 "무조건 잘못했다"던 윤 대통령이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에는 "무엇이 잘못이냐"는 취지로 방어한 게 도마에 올랐다. 기자회견 후 발표될 민심 추이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대통령 지지율 추가 급락이 이어질 경우 여권 내 분란은 한층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11월7일 오전 10시부터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 선 것은 8월29일 기자회견 이후 70일 만이다. 연보라색 넥타이를 매고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선 윤 대통령은 담화를 진행하기에 앞서 "대통령이란 것은 변명하는 자리가 아니다.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부덕의 소치"라며 단상 위에 마련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윤 대통령은 구체적인 사과의 이유를 밝히진 않았다. 다만 최근 자신과 김 여사를 둘러싸고 '공천 개입' 논란 등이 빚어지고, 이후 정부·여당 지지율이 침체된 것에 유감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됐다.
자리에 앉은 윤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지난 2년 반 동안 국민께서 맡기신 일을 어떻게든 잘해 보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왔다. 국민들 보시기엔 부족함이 많았을 것이지만 제 진심은 늘 국민 옆에 있었다"며 "민생을 위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시작한 일들이 국민 여러분께 불편을 드리기도 했고 또 제 주변의 일로 국민 여러분께 염려를 드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챙기고 또 살펴서 국민 여러분께 불편과 걱정을 드리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동훈 요구 '김건희 라인 정리' 등은 거부
약 15분간 담화를 읽은 윤 대통령은 곧바로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의 녹취 공개, 그리고 이와 관련한 2022년 6월 재보궐선거 국민의힘 공천 개입 의혹, 김 여사 대외활동 중단 요구에 대한 입장,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 등에 관한 질문이 쏟아졌다. 담화에서는 허리 숙여 사과했던 윤 대통령이지만,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는 '제기된 의혹과 팩트(fact·사실)가 다르다'며 해명에 더 집중했다. 자신과 아내 탓에 잡음이 빚어진 것은 유감이지만, 야권의 '정치 선동' 탓에 불거진 오해라고 반박하는 식이었다.
윤 대통령은 '대선 이후에도 명태균씨와 소통을 이어갔는지' 묻는 말에 "제가 명태균씨와 관련해서 부적절한 일을 한 것도 없고, 또 감출 것도 없다"며 "저는 명태균씨한테 무슨 여론조사를 해달라는 얘기를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김 여사와 명씨의 통화 등에 대해서는 "몇 차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제가 제 아내 휴대폰을 보자고 할 수는 없는 거라 그냥 물어봤다"며 "한 몇 차례 정도 문자나 이런 걸 했다고는 얘기를 하는데, 이 자리에서 공개하기는 그런데 좀 일상적인 것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의 대외활동 자제 요구' 목소리와 관련해선 '민심'과 '국익'이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의 대외활동은) 결국 국민들이 좋아하시면 하고 국민들이 싫다고 하면 안 해야 한다. 지금의 여론을 충분히 감안해 외교 관례와 국익상 반드시 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중단해 왔고,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며 "대외활동 자제가 아니라, 저와 핵심 참모 판단에 국익과 관련해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닌 활동은 사실상 중단해 왔고 앞으로도 중단할 것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김 여사가 사과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내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놓고) 의도적인 악마화나 가짜뉴스, 침소봉대로 억울함도 본인은 갖고 있을 것이지만 그보다는 국민에게 걱정 끼쳐드리고 속상해하시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김 여사가 이날 담화·회견에서 국민에게 '제대로 사과하라'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회견 소식이 발표된 지난 4일 밤 집에 가니까 아내가 그 기사를 봤는지 '사과를 제대로 해라. 괜히 임기 반환점이라 해서 그동안의 국정 성과만 얘기하지 말고 사과를 많이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 답변을 하며 "이것도 국정 관여고 국정농단은 아니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이 추진하는 '김건희 특검법'에는 "사법 작용이 아닌 정치 선동"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 문제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변호 차원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며 "특검은 사법이란 이름을 쓰고 정치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특검을 하니 마니를 국회가 결정해서 국회가 사실상 특검을 임명하고 방대한 수사팀을 꾸리는 나라는 없다. 명백히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삼권분립 체계에 위반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한동훈 대표가 요구한 '특별감찰관 임명 절차 추진'에 대해서는 "국회의 일이니까 왈가왈부하는 게 맞지 않다고 처음부터 말했다"며 "국회에서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이 오면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을 수 없고 당연히 임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또 한 대표와의 갈등설에는 "이렇게 얘기하면 지지율이 더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언론에서도 갈등을 부추기는 거 아니냐"며 "국민을 위해서 유능한 정부와 당이 되기 위해서 일을 열심히 같이 하다 보면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김건희 특검법은 사법 작용 아닌 정치 선동"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이 끝난 뒤 여야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등 야권은 윤 대통령이 반성하지 않는다며 '탄핵'까지 언급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거짓말과 변명으로 일관한 담화로 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다"며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할 능력과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국민께서는 윤 대통령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김건희 특검은 위헌이라고 하는 등 윤 대통령은 사실 인정도, 진솔한 반성도 하지 않고 되레 국민을 꾸짖었다"며 "대통령 자리에 더 앉아있을 자격이 없다.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권은 '소탈한 기자회견'이었다며 윤 대통령을 옹호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여러 국정 현안에 대해 진솔하고 소탈하게 말씀하셨다고 생각한다"며 "국민께 걱정 끼쳐드린 데 대해 모든 게 본인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라며 겸허히 사과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를 향해 "대통령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을 계기로 우리 국회도 정쟁을 중단하고, 시급한 민생을 보살피고 외교·안보 현안을 챙기는 본연의 일에 집중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선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여당 지도부 한 관계자는 "사과는 짧고, 분명할수록 좋다. 해명이 장황하면 사과의 의미는 퇴색되기 마련"이라며 "반성문을 썼는데 말미에 '죄송하지만 사실 잘못한 건 없습니다'라고 사족을 단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반문했다. 앞서 윤 대통령에게 '국민 눈높이와 맞는 담화'를 주문했던 한동훈 대표는 이날 회견과 관련한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고 침묵했다.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두고 여당 내 평가가 갈리면서, 향후 '김건희 특검법 단일대오'에 금이 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야권은 11월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세 번째 '김건희 특검법'을 처리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11월28일 국회에서 재표결을 진행하겠다는 구상이다. 여당에서 8표 이상 이탈할 경우 특검법은 법률로서 확정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진솔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대국민 사과와 특감 수용 등 한동훈 대표의 요구도 상당수 들어줬다"면서도 "국정운영 기조 변화를 확실히 보여주지 못했기에 국민 눈높이에 부합했는지는 의문이다. 여당 분란의 화근도 여전히 살아있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尹 대통령 "우크라 무기 지원 배제 안 해"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치 현안뿐 아니라 외교·안보와 관련한 의견도 밝혔다. 특히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북한군의 관여 정도에 따라 무기 지원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인도주의, 평화주의 관점의 지원에서 이제는 북한군의 관여 정도에 따라 단계별로 우리가 지원 방식을 좀 바꿔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어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과 이날 통화한 사실을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당선인이) 북핵에 대한 얘기보다 북한에 대한 관심을 좀 갖고 계신지 먼저 얘기를 했다"며 북한의 대남 쓰레기 풍선과 GPS 교란, 그리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발사 등을 거론한 뒤 "여기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가까운 시일 내 만나 많은 정보와 방안에 대해 얘기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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