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손쉬운 라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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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카메라는 라이카다. 그것도 최상위 모델인 Q 시리즈. 기자가 되기 전 사진에 관심이 생겨 친한 사진가의 스튜디오를 기웃거렸다. 그 당시 나는 라이언 맥긴리, 렌 항, 유르겐 텔러 같은 작가들의 사진을 좋아했다. 그들의 사진은 자유로웠고, 그러한 분방함을 동경했다. 나의 취향을 들은 사진가는 한번 찍어보라며 라이카 카메라를 건넸다. 처음에는 니콘, 캐논도 아니고 스튜디오에서 무슨 라이카인가 싶었다. 하지만 카메라 박스 속 곱게 들어 있던 블랙 컬러의 날렵한 보디와 빨갛고 동그란 심벌, 가죽 카메라 가방까지 라이카의 첫인상은 보자마자 군침이 돌 정도로 탐스러웠다.
두근거림과 동시에 부담도 느껴졌다. 최근 출시된 Q3의 가격이 1114만원, 내가 사용했던 Q1 모델은 단종됐지만 당시 중고 거래가가 600만원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가장 친한 친구 시은의 집으로 찾아가 그녀의 얼굴을 담았다. 제목은 ‘My A’. 사과를 좋아하는 시은의 별명이 ‘Apple’이었고 나의 첫 번째 모델이기에 그렇게 지었다. 이를 시작으로 여러 모델과 서울의 길거리를 많이 돌아다녔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기자가 된 후로는 카메라를 잡을 일이 없어졌다. 직접 카메라를 들기보다는 사진가의 시선을 빌려 표현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점차 카메라와 멀어져갈 때 뒤늦게 라이카의 새로운 모델 소식을 알게 됐다. 촬영을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라이카의 라인업은 크게 M, SL, Q, D-Lux 시리즈로 나뉜다. 디룩스 시리즈는 엔트리급 카메라로 콤팩트한 사이즈지만 라이카 고유의 디자인 감성과 더불어 높은 사양을 갖췄다. 디룩스 8은 6년 만에 출시된 시리즈의 신작 모델이다. 우선 외관상 변화가 많다. 실버 프레임을 과감히 버리고 전체 보디를 블랙 컬러로 완성했다. Q를 떠오르게 하는 모던한 디자인이다.
기존 M 모델에만 장착할 수 있던, 셔터에 결합해 사용하는 소프트 릴리즈 버튼도 부착 가능해졌다. 디룩스 시리즈는 보급형 모델의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 제품을 통해 이미지를 쇄신하고 꽤 라이카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후면부 디자인 역시 깔끔하다. 다이얼 바로 아래 두 개의 버튼은 각각 플래시 모드와 사진·비디오 전환 버튼이다. 각 버튼을 길게 누르면 다른 모드로 설정할 수 있다. 필요한 기능만 탑재한 구조다.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 역시 라이카 Q에서 영감받은 ‘사용자 맞춤 인터페이스’를 적용해 더욱 편리하게 개선했다.
시리즈 최초로 DNG 포맷을 지원해 어도비 포토샵이나 캡쳐원 등 사진 편집 프로그램과 호환성도 좋다. 렌즈는 단렌즈가 아닌 24-75mm 줌렌즈로, 전원을 켜면 24mm부터 시작된다. 보디에 비해 길게 나오는 렌즈가 균형을 깨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기 자체도 얇고 평평하기에 잡는 느낌이 아쉬웠지만 작고 가벼운 데서 오는 사소한 문제라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정말로 아쉬운 지점은 전작인 디룩스 7과 스펙상의 차이가 미미하다는 점이다. MOS 센서에서 CMOS 센서로의 업그레이드, 124만에서 184만 화소 정도의 차이일 뿐 유의미한 변화가 없다. 더욱이 6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나온 모델인 만큼 서운했다.
아쉬운 마음은 뒤로한 채 디룩스 8을 들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무얼 찍으면 좋을까 고민하다 친구 지영을 불러냈다. 가을날 지영의 맑은 얼굴을 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야외에서 촬영하는 라이카는 여전히 빠르고 가볍고 편리했다. 무엇보다 라이카는 밝은 야외에서 찍어야 그 감성을 온전히 드러낸다. 청명한 하늘 아래 덕수궁과 서촌을 거닐며 사진을 찍었다. 사람은 많았고 태양은 뜨거웠다. 태양빛이 거세게 내리쫴 LCD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 OLED로 업그레이드된 뷰파인더가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전자식 뷰파인더를 통해 보는 피사체는 조금 어둡고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덕수궁 석조전 앞 분수를 중심으로 푸른 잔디와 나무, 뒤로 펼쳐진 건조한 건물을 찍었다. 암부의 음영이 짙게 잡혔다. Q만큼의 그윽한 깊이는 없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시작이었다. 주말인 탓에 다양한 행사와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평소라면 많은 인파에 지쳤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라이카와 함께하고 있으니까. 보디에 붙은 빨간 딱지는 괜한 자부심을 갖게 만든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주는 ‘나 라이카 쓴다’ 하는 이미지가 라이카를 선택하는 이유 중 7할은 넘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덕수궁에서 서촌으로 이동해 작은 소품 숍과 카페에서 촬영을 계속했다. 화창한 날씨에 동네를 거닐며 사진을 찍고 있으니 잊고 있던 사진에 대한 열정이 고개를 들었다. 친구를 이리저리 앉혀놓고 사진을 찍은 후 결과를 확인해보니 인물보다는 전경 사진에 적합하고, 실내보다는 야외 촬영이 결과가 더 좋았다. 명과 암이 확실할수록 좋았다. 색감 표현은 단조로웠다. 나의 첫 라이카가 Q였던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라이카다운 깊이 있는 색 표현력은 부족하게 느껴졌다.
디지털로 특유의 아날로그 색감을 온전히 담아낸 것이 라이카의 매력 아니던가. 풍부한 발색을 통해 느껴지는 공간감을 ‘라이카 룩’이라 한다면 디룩스 8은 색 표현력이 부족하다 보니 다소 밋밋하고 깊이가 약해 보였다. 청운동을 거닐다 문득, 일본 주택을 닮은 하얀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나무의 그림자가 눈길을 끌어 카메라에 담았다. 집에 돌아와 결과물을 확인해보니 나무의 푸른빛이 온전히 표현되지 않았다.
흰 건물 외벽과 나무의 그림자만을 담았더라면 더욱 좋은 사진이 됐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덕수궁 중화전이었다. 이 사진은 마음에 들었다. 왜일까 사진을 들여다보니 슴슴한 색채와 부드러운 질감으로 풍경과 건물이 한데 어우러져 되려 매력적으로 보였다. 마치 평양냉면 같달까. 화려한 피사체나 작품을 표현하는 일보다는 일상 풍경을 담을 때 적합해 보였다. 이런저런 단점에도 디룩스 8을 선택할 이유는 있다. 사진은 모두 보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원본인데, 별도의 보정을 하지 않아도 깔끔한 밸런스를 지키며 촬영된다.
프로 사진가의 수준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느 상황에서도 크게 손을 타지 않을 것 같다. 구성에 포함된 플래시를 써보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어쩌면 적당한 노이즈와 팡 터트린 조명이 내가 찾던 감성을 가득 담은 맛깔스러운 사진을 내놓았을지도 모른다. 디룩스 8은 라이카의 짙은 감성을 생각하고 구매한다면 아쉬움이 남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간 라인업인 CL 모델이 단종되었고 다음 기종이 Q인 것을 생각하면 라이카 입문으로 디룩스 8은 적당한 선택지, ‘취미 생활을 라이카로 즐기는 나’에게 취하고 싶다면 완벽한 선택지다.
Editor : 유지원 | Photographer : 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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