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건강한 관계 맺기와 커리어 설계 배워야” 진미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의 저출생 해법

윤혜진 객원기자 2024. 11. 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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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출산이 선택의 영역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더 나은 삶을 위한다면 어떤 부분을 고민해야 할까. 가족 전문가이자 모든 과정을 경험해본 인생 선배이기도 한 진미정 교수로부터 결혼과 출산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결혼과 출산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그런데 국가의 앞날이 결혼과 출산에 달린 시대가 됐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를 외치던 1970년대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은 0.72명. 심지어 결혼도 꺼린다. 이대로 가다간 인구가 소멸할 것이란 극단적 전망까지 나오지만, 아예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기준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오는 2072년 세계 인구가 25.2% 증가할 때 한국 인구는 30.8% 줄어든다.

저출생과 고령화 같은 인구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촘촘한 정책과 함께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진미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서울시 인구변화대응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청년들에게 결혼과 가족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결혼과 출산에 대해 무턱대고 겁을 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적잖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생활과학대학에서 만난 진미정 교수는 "국가가 선택을 강요할 순 없지만 환경이 갖춰지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국가가 어떤 정책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건 필요하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출생의 우울한 나비효과, 황혼이혼과 독거노인

우리 사회가 출산을 선택의 영역으로 보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부턴가요.
정확하게 언제부터라고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시각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들어서라고 볼 수 있어요. 좀 더 본격적으로는 2010년 지나서 우리나라에 경제적인 위기가 또 한 번 왔을 즈음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변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주변이나 학생들을 보면 "우리는 결혼하더라도 아이는 안 가질 거예요" 했다가 나중에 출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걸 보면 결혼 전과 후 출산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는 거죠.

우리나라 저출생 문제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요.
전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낮아지는 추세이긴 해도 이 정도로 낮은 나라는 별로 없어요. 한국, 대만, 싱가포르 정도예요. 심지어 우리보다 먼저 저출생, 고령화를 겪은 일본도 합계출산율이 1은 넘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시스템을 바꾸거나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출산율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거예요. 출산율이 어디까지 떨어질 것인지 예측하기가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자꾸 낮아지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도 한국이 저출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어떤 정책이 효과가 있을지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52년 1인 가구가 전체의 41.2%를 차지하고, 부부 가구(22.8%)에서 60대 이상이 80%를 넘는다고 합니다. 지금의 저출산 문제로 인해 촉발된 결과인가요.
관련이 있죠. 예전에 자녀를 3명, 4명 낳았을 때는 첫째가 독립해도 둘째, 셋째가 남아 있으니 부부가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길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자녀가 1명 또는 2명이니까 아이들이 독립한 후에는 부부만 같이 사는 시간이 길어요. 게다가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우리 부모님 세대보다 훨씬 더 부부가 같이 사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이런 부분은 저출생은 물론 고령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부부끼리만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 황혼이혼도 많아지겠는데요.
사실 예전 세대에서 황혼이혼이 적었던 이유에는 부부 관계의 질이 높아서라기보단 평균수명이 짧고 남성이 일찍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같이 사는 시간이 길지 않았던 면도 반영되어 있어요. 반면 지금은 30대 초반에 결혼한다면 아이 독립시키고 나서도 거의 20년, 30년을 같이 살아요. 요즘은 남녀 평균 수명 차이도 별로 안 나거든요. 그러니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새로운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많아질 수 있죠.

이래저래 1인 가구의 형태가 다양해지겠군요. 여러 형태의 1인 가구 증가로 생각해볼 문제가 있을까요.
흔히 1인 가구라 하면 청년층 1인 가구를 많이 생각하는데요. 청년층 1인 가구는 학업이나 취업 등의 이유로 혼자 사는 것이고, 과도기적 성격을 지닌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중장년 이후의 1인 가구는 얼마나 더 오래 혼자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어요. 자녀를 많이 낳았을 때는 같이 사는 자녀가 있거나 번갈아가면서 부모를 모시기도 할 텐데 자녀 수가 줄면 그런 가능성도 낮아지잖아요. 70대, 80대 독거노인일수록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 사회적으로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또 통계에는 1인 가구로 잡히지만 동거, 특히 중장년 이후의 동거도 많은 편이에요. 법적으로 형식화되지 않은 파트너와 같이 사는 관계는 아직은 연구가 많이 안 돼 있어요.

결혼 안 하고 혼자 살고 싶은 진짜 이유 들어봐야

연애에 관심이 없거나 포기하는 청년들이 많은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요.
우리가 사실 청년들이 연애도 포기하고 결혼도 꺼린다는 얘기를 오래전부터 해왔잖아요. 그 목소리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나는 누군가와 같이 사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인지, "기존 결혼 제도를 원하지 않는다"인지, 아니면 "관계의 친밀성은 원하지만 출산을 원하지 않는다"는 건지 부정적인 목소리 안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이 중 기존 결혼 제도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젊은이가 많은 거라면 전통적인 제도나 가부장적 규범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거죠. 또 결혼은 원하지만 직업이 불안정하고 둥지를 마련할 자신도 없어 꺼리는 거라면 이에 맞는 대응책이 필요할 거고요. 그런데 그냥 대인관계도 필요 없고 나는 혼자였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은 좀 우려가 됩니다. 본인이 원하는 거라면 그런 삶이 틀린 건 아니지만, 사회가 좀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들 기회를 일찍부터 제공하고 연습하게 해줄 필요성은 있단 생각이 들어요.

‘초식남’ '건어물녀’ '혼술’ 등의 트렌드가 떠오르는 대목이네요.
맞아요. 이런 분위기가 더 확산되고 심각해지면 은둔형 외톨이가 더욱 증가할 수 있어요. 물론 혼자 사는 삶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저도 결혼 전 혼자 살았을 때 굉장히 좋았어요(웃음). 단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혼자 있는 시간이 자꾸 길어지고 그로 인해 사회적 관계망들이 닫히게 된다면 이 부분은 사회적으로 다 같이 걱정하고 대응해야 할 현상 같아요.

요즘 결혼을 하더라도 늦게 하는 경우가 참 많은데요. 늦은 초혼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결혼과 출산, 나의 커리어를 같이 설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래요. 출산만 아니라면 결혼을 어느 시점에서 하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죠. 그런데 우리가 내 입장에서만 생각을 하는데, 태어날 아이 입장에서도 생각을 해봐야 해요. 부모 나이가 너무 많거나 적어도 아이 발달에 긍정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우리 학생들도 언제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게 좋겠느냐 물어요. 이게 하나의 답은 없지만, 출산의 관점에서만 보면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아이를 갖고 낳는 게 바람직하긴 합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아질수록 난임 가능성이 높고, 초산이 늦어지면 둘째 아이를 원해도 낳기 힘든 경우가 많은 편이에요.

출산이 끝이 아니라 양육이 시작되잖아요. 맞벌이 가정에게 문제가 되는 시기는 아이 초등학교 입학 시기인데, 늘봄학교가 실효성이 있을까요.
영유아 보육이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까지 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저는 초등 돌봄도 몇 년 안에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초등 돌봄교실이나 방과후수업, 지역아동센터 등 여러 형태를 다 총괄해서 늘봄학교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자리 잡을 겁니다. 그리고 학부모 중에도 하교 후 시간을 늘봄학교만으로 다 커버하려는 분들은 많지 않을 거예요. 공교육과 사교육의 균형을 맞춰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모델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시점이라고 봐요. 국가에서도 초등 돌봄에서 공백이 나타나 여성 경력 단절이 많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고, 이 부분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여러 정책도 필요하겠지만, 기업에서도 적극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다른 나라에서 하는 정책을 봐도 더 이상 벤치마킹을 할 게 없을 정도로 많은 정책이 도입됐고 시행이 되고 있어요. 그럼에도 변화가 더딘 건 결국 직장, 사업장 이런 곳에서의 변화가 너무 느려서 같아요. 다만 기업에서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은 게, 출산율이 낮아지면 결국 인력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질 거거든요. 가족 친화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 회사들은 좋은 인력을 채용하기도 힘들고 유지하기도 힘들어요. 이 사실을 아는 대기업들은 이미 바뀌고 있는 중이고요.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정부에서 중소기업을 타기팅해서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으니 이제 좀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이를 너무 잘 키우려니 생기는 경제적·심적 부담

50대 중반인 진미정 교수에게는 스무 살 대학생 딸이 있다. 진 교수는 한국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후 결혼해 30대 중반에 아이를 낳았다. 지금 기준으로는 그리 늦은 편이 아니지만 1960년대생 기준으로 보면 결혼과 출산이 조금 늦은 편이다. 진 교수는 "지금 생각해보니 어차피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었다면 더 일찍 해도 됐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며 웃었다. 살다 보면 항상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특히 결혼과 출산은 선택에 따라 인생에 큰 변화가 생긴다. "가족이라는 렌즈로 개인과 사회 현상을 들여다보는 게 재미있어서" 아동가족학과를 선택한 그는 그래서 더 관찰 결과를 선택의 갈림길에 선 청년들과 나누려 한다. 나와 가족이 행복해야 좋은 사회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워킹 맘으로서 어떻게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췄나요.
일단 서울대 어린이집이 다 키워줬고요(웃음). 아이를 키우며 주변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남편, 친정 엄마, 친언니부터 조카, 아이 친구 엄마까지 제가 갑자기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여럿 확보해놓고 도움을 받았어요. 또 그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내가 도와주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사례를 할 수도 있고요. 저는 아이가 다양한 사람들과 어려서부터 어울려 지내는 게 아이한테도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육아가 힘들거나 내 삶을 희생한다고 느낀 적은 없었나요.
물론 아이가 어렸을 때는 제 시간이 없었죠. 일하는 시간과 가족을 위해 쓰는 시간 딱 2가지만 있었는데 저는 그걸 희생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쨌든 일을 하는 이유가 나를 위해서고 일에서 보람을 느꼈거든요. 아이가 커가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또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여유 시간이 생겨요. 하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기 어렵다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내가 없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죠. 그런데 장기적으로 보면 일과 가정 2가지를 다 붙잡고 가는 게 좋더라고요.

부모로서 아이를 너무 잘 키우려다 보니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담이 돼 아예 '낳지 말자’로 귀결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실제로 저는 약간 내려놨어요. 아이를 빈틈없이 잘 키워야 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하다가 둘 다 잘 못할 바에는 한 가지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저는 아이한테도 일할 때도 '웬만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기준을 낮춰 둘 다 해보자’ 이렇게요. 그래서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제일 늦게까지 있는 날에도 믿을 만한 선생님들과 있는 거고, 어쩌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제가 학교에서 하는 일이 100점은 아니더라도 80점이면 된다고 생각해 스트레스를 덜 받았던 것 같아요. 아이한테 잘하려고 하면 정말 끝도 없어요.

요즘은 외동아이가 많다 보니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죠.
우리가 경제적인 비용 때문에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 선을 긋고 여기까지만 아이에게 해줄 거라고 정해야 해요. 그리고 자기가 못 해주는 부분으로 인해 아이한테 좋은 부모가 아니란 생각도 하지 마세요. 그런 자책은 자기한테나 아이한테 좋을 게 없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부부가 아이 교육에 있어 합의가 되어야 하고, 아이한테도 어렸을 때부터 가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 얘기해줘야 해요. 우리 아이는 새 핸드폰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저는 딸에게 "엄마 아빠가 이런 건 너를 위해 해줄 수 있지만 이런 건 못 해주니 네가 참아야 해"라고 알려줬어요.

교수님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가족학을 연구하지만 가족이 사람들에게 갖는 의미는 고정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 결혼할 때와 아이를 키울 때, 다 키우고 나서의 의미가 계속 달라지고 있거든요. 지금 가족의 의미는 편안한 동반자들이에요. 제가 의지할 수 있고 가족들이 나한테 의지하기도 하고요.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아이를 낳고 한창 키울 때는 미션을 같이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이란 생각도 들었는데, 그 단계를 넘어서고 나니 편안해졌어요. 나이가 더 들면 또 의미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학자이자 인생 선배이기도 한 입장에서 결혼과 출산, 선택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행복한 삶에는 정답이 있지 않아요. 그런데 제가 교단에 서거나 연구하면서 만나보면 요즘 젊은 친구들이 답을 미리 정해놓는 경우가 꽤 많아요. 이건 하고 저건 안 하고 정해놓은 대로 하려고 하는데, 인생은 결코 그렇지 않거든요. 경험치에 따라 자꾸 생각이 달라져요. 그때그때 다양한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대신 내 인생을 쫙 펼쳐놓고 내가 중년일 때, 80대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생각해보면서 여러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결혼과 출산을 정해놓고 추진해야 할 프로젝트처럼 하지 말고 유연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그려봤으면 좋겠습니다.

#진미정 #저출생 #결혼 #여성동아

‌사진 이상윤 
‌사진출처 유튜브 캡처

윤혜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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