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문하는 자’만이 알아채는 ‘첨밀밀’의 비밀
1996년 개봉한 영화 ‘첨밀밀(甜蜜蜜)’은 수호전을 인용하면서 사랑과 인연의 불가해를 말하지만, 감독 진가신은 그 이상을 원했다. ‘첨밀밀’의 영어 원제는 ‘Comrades: Almost a Love Story(동지들: 거의 사랑 이야기에 가까운)’이며 여기에 영화의 비밀이 있다. 이 작품은 ‘거의 사랑 이야기’에 가깝지만 몇 스푼의 정치적 알레고리가 숨겨진 ‘무서운’ 영화다.
소설가이자 역사가 즬 미슐레(Jules Michelet)는 프랑스 역사를 다룬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국 프랑스를 심리적으로, 더 나아가 신체적으로도 공감하려 했던 애국자의 이 비문법적 문장은 철학자 롤랑 바르트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1977년 바르트는 '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사랑의 단상)'을 출간하면서 한 챕터의 제목을 'J'ai mal à l'autre(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라고 정한다.
우리는 "누구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라는 문장을 자주 쓴다. 이 한국어 문장과 미슐레를 경유한 바르트의 문장은 얼핏 보면 비슷한 의미처럼 보이지만 다르다. 앞의 문장에서 '누구'는 고통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누구'는 사랑하는 대상일 수도 있고 증오의 대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J'ai mal à l'autre(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의 '그/타자'는 고통이 아닌 완벽한 공감과 연민의 대상이다. 물론 바르트는 제목과 달리, 그러한 쇼펜하우어적 연민은 웬만한 사랑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역설한다. 그러므로 'J'ai mal à l'autre(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는 사랑의 정신병리학적 맹목성을 설명한 표현이며 일상에서 흔하게 목격되는 세속적 애정사와는 다른 차원의 사랑을 상징한다. 영화라는 예술은 태생적으로 이런 다시없을 사랑에 목을 매왔다.
소군(여명·리밍)은 홍콩에서 자리를 잡으면 고향 톈진에 있는 애인 소정(양공여·양궁루)을 데려와 결혼할 생각이다. 우연히 소군과 알게 된 눈치 빠른 이교(장만옥·장만위)는 그를 꼬드겨 이득을 취하려 한다. 그러다가 둘은 시나브로 사랑에 빠져든다. 이타적이면서 도덕적인 소군은 고향의 애인을 배신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식어버린 첫사랑에게 애써 거짓말을 하면서 이중생활을 한다. 더는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예감한 이교는 안마방에서 알게 된 흑사회 두목 표형(증지위·쩡즈웨이)에게 의탁하려 한다. 그런 와중에도 둘은 가끔 만나 사랑을 나눈다. 이 불안한 관계는 이교의 각성으로 마침내 끝을 맺는다.
이교 : 만약 소정이 간혹 남자를 만나고 잠도 자면서 그냥 친구라고 하면 넌 어떨 것 같아?
소군: 기분 나쁠 것 같아.
이교 : 여소군 동지! 내가 홍콩에 온 목적은 네가 아냐. 네가 홍콩에 온 목적도 내가 아니고.
이 대사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돌아선다. 표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이교에게 다가간다. 용 문신 사이에 새겨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미키마우스를 통해 이교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는 우유부단한 소군과는 달리 성숙한 사랑의 표본을 보여준다. 표형은 이교를 얽매지 않기 위해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갖지도 않는다. 키는 작지만 마음이 하해처럼 넓은 이 남자는 오래전부터 이교가 집착하는 사랑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작은 거인은 질투하지 않고 유머와 위트로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 한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소군은 결국 소정과 결혼했지만 그녀와의 일상은 무덤덤하기 그지없다. 그러던 중 유일한 혈육인 고모에게서 연락이 온다. 죽음을 예감한 그녀는 조카에게 자신의 끝 사랑인 할리우드 배우 윌리엄 홀든과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그녀의 이야기가 몽상인지 진짜 추억인지 관객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고모는 진정 "J'ai mal à l'autre(그 사람이 아프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정말 아픈'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고모의 가게에서 일하던 태국 여인 개란이 에이즈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하게 되자, 본토인을 등쳐먹던 개란의 서양인 애인 제레미는 그녀의 남은 생애를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태국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제레미와 개란은 에이즈보다 'J'ai mal à l'autre(그 사람이 더 아픈)' 사람들이다. 미키마우스 때문에 결코 표형을 떠나지 못한 이교는 지명수배령이 내려진 그와 동행하며 머나먼 타국을 떠돈다. 온갖 풍파를 다 이겨낸 표형은 이제 한곳에 머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유랑 생활이 운명인 그가 정착하려는 순간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사자(死者)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시체 안치소를 찾은 이교는 직원들에게 부탁해 표형의 등을 돌리게 한다. 그러자 미키마우스가 거대한 용 문신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다. 표형 역시 미키마우스를 통해 "J'ai mal à l'autre(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라고 죽음으로써 말하는 것이다.
거짓 사랑으로 결혼을 유지할 수 없었던 소군은 아내에게 진실을 털어놓은 후,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자신의 요리사 사부를 찾아 뉴욕으로 떠난다. 표형이 죽고 나서 비자 만료로 추방을 앞둔 순간, 이교는 운명처럼 자전거로 음식 배달 중인 소군을 발견한다. 하지만 작가와 감독은 그들의 만남을 일부러 지연시킨다. 소군을 따라잡기 위해 의도치 않게 이민국 관리들을 따돌리게 된 이교는 불법 이민자로 살다가 정식으로 그린카드를 발급받아 홍콩으로 돌아가려 한다. 1995년 5월 어느 날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첨밀밀'을 부른 등려군(덩리쥔)이 사망한다. 이 소식은 뉴욕의 차이나타운을 가득 메운다. 꼬였던 실타래가 모두 풀리면서 그들은 운명처럼 해후한다. 이교와 소군은 3년 가까이 근처에 살면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렇지만 등려군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하나가 된 그들을 보며 우리는 안도하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有緣千里來相會(유연천리래상회), 無緣對面不相逢(무연대면불상봉)
: 인연이 있다면 천리에 떨어져 있어도 만나겠지만, 인연이 없다면 얼굴을 마주하고 살지라도 만나지 못한다.
고모는 40년 동안 한 사람을 너무나 사랑해 자신의 영혼에 그를 각인하고 산다. 표형은 미키마우스로 상징된 이교를 몸 안에 문신으로 새긴다. 이교와 소군은 오랫동안 허공을 맴돌다가 이국의 하늘 아래에서 등려군의 죽음으로 비로소 하나가 된다. 바르트 역시 이런 사랑은 없다고 말했다. 물론 즬 미슐레를 인용하며 "J'ai mal à l'autre(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라고 에둘렀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들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 흔한 사랑은 진실이지만 영화와 관객이 외면하고, 이런 지독한 사랑은 판타지에 불과하지만 예술이 기억한다. 그리고 관객은 예술의 기억을 자기 것인 양 가슴속에 새긴다. 이 무한반복 속에 예술은 영생한다. 이것이 영화가 아름답지만 위험한 이유이기도 하다.
보통화와 등려군 노래에 얽힌 비밀
항저우와 우시 속 정치적 알레고리
소군의 내레이션 : 요즘 항저우는 더워서 죽은 사람도 있다던데, 우시는 어때? / 올겨울은 사상 유례없이 춥다고 하더라. 옷 두껍게 입어 / 대륙 사람들은 모두 홍콩으로 오길 바라고 홍콩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길 원해.
내레이션이 끝나면 '1990년 겨울'이라는 자막이 뜬다. 위 대사는 소군이 애인에게 보낸 편지를 내레이션으로 바꾼 후에 몽타주 시퀀스 형식으로 편집한 것이다. 자막으로 유추해 보면, 이야기의 전개 시간은 1989년 여름부터 그해 겨울까지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항저우와 우시라는 도시다. 항저우는 저장성의 성도이며 우시는 장쑤성의 지급시다. 이 두 지명은 톈진 출신인 소군과 그의 애인인 소정과는 하등 관련 없는 지명이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극의 진행과 어울리지 않는 내레이션을 덧붙였을까. 여기에는 사실 고도의 정치가 들어 있다.
이 영화가 1996년 홍콩과 이듬해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 소군의 내레이션에 등장하는 항저우와 우시는 원래 베이징과 톈진이었다. 이렇게 도시들이 자리바꿈하게 된 이유는 '첨밀밀'이 20년 동안 중국 본토에서 개봉하지 못한 이유로 이어진다. 오리지널 버전은 다음과 같다.
"베이징은 더워서 죽는 사람도 있다던데(베이징 천안문 사태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데), 톈진은 어때(베이징 인근에 있는 톈진에서도 많은 사람이 죽었어?)."
중국 고위 관리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첫 번째 이유는 공산당 제1의 금기인 천안문 사태를 '첨밀밀'이 암유(暗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사 "대륙 사람들은 홍콩으로 가길 원하고 홍콩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길 원해"는 1980년대 후반,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둔 당시의 풍경을 솔직하게 그린 대사였다. 한편으로 이 문장은 중국인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줬고, '첨밀밀' 상영 금지의 두 번째 이유가 됐다. 2015년 시행된 해금 이유 또한 작품 속에 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뉴욕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들은 1989년 소군이 소정을 상대로 발화했던 내레이션과 정반대로 말한다.
관광객1 : 가이드 아가씨, 광저우 사람이라며?
이교 : 네. 온 지 5년 정도 됐어요. 이제 다음 달에 돌아가요.
관광객2 : 그래 그래! 예전 사람들은 모두 외지로 나갔는데 이제는 다들 돌아가지. 홍콩 사람들도 이제 본토에 와서 일한다우.
2015년, 영화 '첨밀밀'이 세상에 나온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사이 중국은 올림픽을 치렀고 미국과 자웅을 겨룰 만큼의 국력 신장을 이뤘다. 이런 성취에서 온 자신감이 '첨밀밀'과 같은 불온한(?) 작품을 본토에 허락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기는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베이징과 톈진이라는 오리지널 버전에 등장하는 지명을 항저우와 우시로 바꾸는 작업을 거쳐야만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첨밀밀'은 모두 중국 정부의 검열 버전인 셈이다.
동양적 오음계로 구성된 노래 '첨밀밀'은 중화권이 아닌 인도네시아가 고향이다. 보통화를 쓰는 대만 가수 등려군이 번안해서 맛깔스럽게 '첨밀밀'을 불렀고, 그녀의 사망 직후 감독 진가신과 시나리오 작가 안서는 의기투합해 동명의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의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중에게 선보인 '첨밀밀'은 완벽한 3막 구조, 적절한 에피소드 배분, 조연들의 열연, 정치·사회적 이슈를 적절한 수사법으로 알레고리화한 예술적 전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첨밀밀'은 장만옥 일생의 최고 연기라 칭송받는, 미키마우스 문신을 바라보는 그렁그렁한 눈빛, 자전거 위에서 '첨밀밀'을 부르는 두 사람 등 빛나는 장면이 수놓인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판타지로 덧칠된 흔한 드라마가 아니다. 여기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알레고리가 숨겨져 있다. 알레고리는 텍스트의 저편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 혹은 끊임없이 탐문하는 자에게만 열리는 비밀스러운 세계다. 그 점이 가끔 우리를 기쁘게도 좌절하게도 만든다. 하지만 이것이 예술인 것을 어쩌겠는가.
●1990년 출생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졸업
●부산대 대학원 박사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등단
●現 부산대 영화연구소 연구원 및 강사
김채희 영화평론가 lumiere@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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