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스트’ 트럼프···그가 추종하는 것은?[책과 삶]
미켈 볼트 라스무센 지음 | 김시원 옮김 | 한울아카데미 | 160쪽 | 2만2000원
도널드 트럼프가 돌아왔다. ‘트럼프 2.0’은 ‘트럼프 1.0’보다 더 독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등을 ‘내부의 적’으로 지목하고 보복하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7월에는 재선시 대통령 통제권을 대폭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제기되는 우려 중 하나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파시스트 정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측 인사들만의 우려가 아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존 켈리는 지난달 22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전직 대통령(트럼프)은 극우의 영역에 있고, 독재적이고, 독재자들을 존경한다”며 “그는 확실히 파시스트의 일반적 정의에 들어맞는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출간된 언론인 밥 우드워드의 저서 <War(전쟁)>에 따르면, 마크 밀리 전 합찹의장도 트럼프는 “철저한 파시스트”이고 “이 나라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파시스트냐 아니냐를 두고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이다. 미켈 볼트 라스무센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는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에서 트럼프는 파시스트라고 단언한다.
‘파시즘’이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는 제복을 입은 나치돌격대원들의 대규모 집회에서 연설을 하는 흑백 사진 속 히틀러의 모습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 청년들이 이에 비견할 만한 거대 군중 집회를 연 적은 없다. 파시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최악의 정치적 멸칭으로 사용되는 요즘에는 신나치주의자들조차도 자신을 파시스트라 칭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러나 오늘날 어떤 정치인이 파시스트냐 아니냐를 규정하기 위해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행보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따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저자는 “외국인을 배제함으로써 상상의 유기체적 공동체를 재건하려는 극단적인 내셔널리즘”에서 파시즘의 본질을 찾는다. 나치의 절멸수용소가 없더라도 이러한 파시즘의 본질을 추구하는 정치 세력이라면 파시스트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치 상징인 스와스티카와 지그 하일 경례는 MAGA 모자, 개구리 페페의 밈, 보트 퍼레이드, 또는 공립학교에서의 의무적인 돼지고기 배식으로 대체되었다. 우리에게는 나치의 절멸수용소가 없다. 그 대신 이주민수용소가 있고, 간수가 수감자를 죽이고 수감자의 굴욕적인 사진을 찍는 감옥이 있다.”
저자는 트럼프가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먼저 트럼프는 한물간 남성우월주의적 부와 성공을 약속하는 브랜드다. 미국 진보지식인 나오미 클라인에 따르면 “그(트럼프)의 브랜드는 궁극의 보스, 너무 부유해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언제든, 어떤 사람이든(어느 여자라도 몸의 어디라도) 손에 쥘 수 있는 자이다.”
소셜 미디어에 서식하며 몸집을 불린다는 것도 오늘날 파시즘의 특징이다. 히틀러는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을 통해 집권했지만, 지금 미국 공화당은 나치와 같은 파시스트 대중정당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파시즘은 굳이 파시스트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는 대중정당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1930년대 나치가 라디오와 영화를 파시즘 선전의 도구로 썼다면, 오늘날은 ‘좋아요’를 통해 “위계질서와 인물숭배를 조장하는” 소셜 미디어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는 “한때 본래 민주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정보의 더 평등한 공유의 길을 깔아주고 집중된 통제를 넘어서 함께 가는 새로운 길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여겨졌으나, 지금은 “파시즘을 위한 비옥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파시스트적 성향을 보이는 정치 세력의 부상은 미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헝가리에서는 극우 성향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2010년부터 권력을 쥐고 있고, 저자의 모국인 덴마크를 비롯해 유럽 곳곳에선 최근 몇 년 사이 극우정당이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파시즘이 등장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2008년 금융위기와 그 위기에 대한 잘못된 대처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당시 금융위기의 원인은 통제 받지 않은 미국 주택 시장의 거품이 터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1970년대 후반부터 도입된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는 비판과 함께 대대적인 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각국 정부는 “탈신자유주의적인 종류의 조정을 착수하는 대신, 공공부채를 늘리고 스스로 금융자본의 명령에 더욱 복종하면서 신자유주의가 사실상 더 철저해졌다.”
저자는 또 기존 정당이 이념적 지향과 관계없이 모두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면서 정당간 차이가 사라진 것도 파시즘의 토양이 됐다고 지적한다. 특히 많은 국가에서 진보파 정당이 “사회국가를 해체하고, 금융시장 규제를 풀고, 자본과 상품의 자유유통을 가능케 하고, 노동법을 해체”했다. 예컨대 덴마크 사회민주당 정부는 2014년 국영 에너지회사 지분을 골드만삭스에 팔았고, 프랑스에서도 사회당이 우파 정당도 해내지 못했던 민영화를 밀어붙였다. “사회민주당이 노동자에게 가장 가혹한 정당이라면 왜 그들에게 표를 주겠는가? 자신이 지역 노동계급을 보호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막고, ‘진짜’ 선거구민에게 권력을 돌려줄 거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왜 표를 주지 않겠는가?”
기사 수정(11월18일): 애초 기사에서 이 책에 사용된 ‘동공화(hollowing)’가 ‘공동화’의 오기라고 지적했으나, 오기가 아니라 텅 비어 있다는 뜻의 ‘동공(洞空)’이라고 출판사에서 알려왔습니다. 이에 해당 부분을 삭제했습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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