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참으려고 카메라 켰다"…아나운서 정재희가 시련 이겨낸 방법[인터뷰]
유튜브 채널 '재리'도 운영…친근한 모습 인기
디자인 전공, 대학 시절 우연히 아나운서 시작
사회 초년생 시절 끔찍한 차량 전복 사고 겪어
"피해 갈까봐 괜찮은 척…울수 없어 영상 촬영"
"사고로 힘들었지만 성장할 수 있는 기회 됐다"
[서울=뉴시스] 허나우 리포터 = 과거엔 아나운서가 자신의 실제 모습이나 개성을 표출하는 일이 드물었다. '방송국의 얼굴'이기에 차분하고 반듯한 이미지를 유지하는게 필수 덕목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방송 환경이 변하면서 아나운서도 점차 다층적인 매력을 가진 직업군이 되고 있다. 자신의 끼나 인간적인 면모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대중과 소통하는게 오히려 아나운서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정재희(25)는 방송 뿐만 아니라 온라인 상에서도 부지런히 활동하며 요즘 말로 '갓생'을 살고 있는 4년차 아나운서다. KBS 부산방송총국 아나운서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5월부터 부산의 930 뉴스 얼굴이 됐다. KBS 제1라디오 정오 뉴스 진행, KBS 부산 '생생투데이'와 '아침마당'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처음부터 아나운서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한양대학교 응용미술교육과'를 졸업한 후 미술 선생이 되기를 꿈꿨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 '대학 아나운서'를 처음 접하며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이 직업을 '천성'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바쁜 일상 속에서 개인 유튜브 채널 '재리'도 운영하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도 구독자·팔로워 수가 11만 명에 이를 정도로 유명 인사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준비하며 시작했던 유튜브는 지금도 영상 촬영·편집을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해낸다. 촬영과 촬영 사이 남는 시간이나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동안에 편집한다.
본업과 유튜버 활동을 병행하며 쉴 틈 없이 살아가고 있는 배경에는 한 가지 사연이 있다. 정재희는 사실 3년 전 사회 초년생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큰 시련을 겪었다. 촬영 중 당한 '차량 전복 사고'로 왼쪽 팔을 거의 쓸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피부는 완전히 손상됐으며, 이식 수술을 위해 뒷머리 피부까지 떼어내야 했다.
힘든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영상 촬영'이었다. 카메라를 억지로 켜서라도 눈물을 참고 견뎠다. 수술과 치료 과정을 담은 영상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의 병동 생활 영상은 조회수 133만 회 이상을 기록했으며 1000여 개가 넘는 응원과 위로의 댓글이 달렸다.
약 1년 넘게 수술과 치료를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음에도 일터로 돌아와 밝고 명랑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궁금했다. 튜브가이드는 KBS 부산방송총국 아나운서이자 유튜브 크리에이터 '재리'로 활동하고 있는 정재희를 지난 1일 서울 중구 뉴시스 본사에서 만났다. 실제로 만나본 그는 다정하면서도 '내면의 단단함'을 갖춘 사람이었다.
이젠 많은 사람들의 '워너비' '롤모델'이 되어가는 정재희는 자신이 받는 사랑이 과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에 보답하기 위해 '플로깅' 행사를 직접 주최하고 모집해 팬미팅과 봉사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또 자신의 유튜브 채널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아나운서 '정재희'와 크리에이터 '재리'…"친근함이 내 무기"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KBS 부산 총국 아나운서 정재희입니다. 유튜브 '재리'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어요.
-아나운서 준비하실 때부터 유튜브를 시작하셨어요. 정확한 시기와 계기는요?
"4년 전 아나운서 학원 등록한 후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어요."
"저는 빈 시간을 못 즐기는 편이에요. 아나운서 학원 등록 후 카메라에 익숙해 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고, 당시 방학을 해서 시간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무작정 시작해 봤습니다."
-유튜브 채널에 아나운서 준비 시절 영상을 지웠어요. 이유가 있을까요?
"영상을 보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어요. 구독자도 조회수도 이전보다 훨씬 늘어났거든요.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가는 길이 정답이 아닌데도 그걸 정답처럼 따라 하시는 분이 많았어요. 예를 들면 저는 아나운서 준비 시절 같은 준비생들끼리 하는 '스터디'에 참여하지 않았어요. 근데 보시는 분들이 '그럼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 버리는 경우도 많았어요."
"영상적인 측면에서는 제가 전라도 광주 출신이라 사투리를 많이 사용했어요. 이제는 사투리 사용이 줄었지만, 제 직업이 아나운서다 보니 사투리가 영상에 보이면 안 좋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또 과거 영상에는 준비생이라 맞춤법 실수도 잦고 자막이 틀리게 나가는 경우도 많았어요. 지적 댓글도 받았고, 괜히 회사에 피해가 갈까 생각이 들어서 과거 영상은 내렸습니다."
-아나운서 준비생들이 영상을 많이 보시나 봐요. 영상 시청자의 연령층이나 성별 비율은요?
"20대 초·중반, 여성분들이 많으세요. 처음 유튜브 시작 당시에 타깃층이 명확했거든요. 근데 요즘은 어머님, 아버님들도 찾아와서 영상을 봐주세요. 제가 프로그램 '6시 내고향' '생생투데이' '아침마당'에 들어가면서 시청자 층이 다양해진 것 같아요. 제가 출연한 방송을 보시고 '방송 보고 (유튜브) 찾아서 왔다' '귀여워서 왔다' 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30~40대분들도 '우리 아들·딸 이렇게 키우고 싶다'는 댓글도 많이 달려요. 저는 유튜브 처음 시작하면서 타켓층이 너무 한정적인 게 아쉬웠어요. '어떻게 하면 다양한 연령층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자연스레 해결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유튜브 영상 편집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사실상 유튜브는 '부업'인데, 영상 편집은 얼마나 걸리시는지?
"영상 편집 시간을 평균적으로 내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어요(웃음). 제가 날짜나 시간을 정해두고 편집하는 건 아니거든요. 틈날 때마다 영상을 편집하고 있습니다. 오전 뉴스 끝나고 오후 라디오 뉴스 전 약 한 시간 반 정도 시간이 비어요. 보통 다른 아나운서분들은 다음 방송 준비나 신문을 읽으시는데 전 그때 편집을 합니다. 혹은 퇴근하거나 주말에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엔 아나운서는 교양 있고 차분한 방송 진행자라는 스테레오 타입 같은게 있잖아요. 유튜브 활동으로 다른 이미지가 생기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요?
"저는 아나운서가 되기 전부터 유튜브를 시작했으니 지금껏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제 경쟁력이 '친근함'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아나운서들도 '자기 PR' 시대니깐요. 아나운서들이 예능에도 많이 출연하는 것을 보면 교양적인 측면에서도 좀 바뀌는 것 같아요."
"보통 프로그램에서 아나운서를 못 쓰는 이유는 아나운서들이 가지고 있는 끼가 티가 안 나기 때문이거든요. 아나운서는 뉴스를 하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 외 다른 모습을 상상하기가 힘든 거죠. 그런 모습을 스스로 탈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가 '6시 내고향'에 섭외됐을 때, 당시 PD분께서 제 유튜브를 참고하시고 친근한 이미지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유튜브가 하나의 '참고 자료'로 쓰일 수 있는 거죠."
-아나운서 활동을 하면서 '이 직업을 택하길 잘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나요?
"전 사람이 많은 현장에서 중계·소개할 때 많은 도파민을 느껴요. 그곳의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지 않아도요. 올해 초, '2024 부산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가 있었어요. 정말 크게 열렸는데 운 좋게 구석에서 현장 중계를 했어요. 제가 현장감을 몸소 느끼면서 뉴스 시청자분들께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는 게 짜릿한 거예요. 큰 공간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것 같아요. 꼭 아나운서를 하면서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의 현장 중계를 해보고 싶어요."
가수가 되고 싶었던 미대생…우연히 천직 만났다
-'한양대학교 응용미술교육과'를 전공하셨어요. 아나운서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원래는 아나운서에 대한 꿈이 없었어요. 저는 가수가 되고 싶었거든요(웃음). 도저히 춤과 노래가 안 돼서 가수는 포기했어요."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 전공을 한 후 막연하게 대학교에 진학했어요. 진학 후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해 깊이 알게 됐어요. 당시 학교 아나운서를 했었거든요. '그럼 아나운서를 본업으로 삼아보면 어떨까' 생각해서 시작했고, 지금은 적성에 너무 잘 맞아요. "
-만약 아나운서를 하지 않았더라면 무엇을 했을 것 같나요?
"미술 선생님 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제 브랜드를 꼭 만들고 싶긴 해요. 아직 명확하진 않지만, 나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브랜드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막연하게 하고 있어요. 어떤 분야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빠른 나이에 사회 생활을 하셨어요.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힘들진 않았나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힘든 시간이었어요. 일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게 생각보다 힘든 일이더라고요. 당시 직장이 '광주'에 있었어요. 서울에서 학교 수업 듣고 광주까지 출근하러 가는 길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대학교 과제와 시험도 있었으니깐요. 그래도 기차에서 공부하면서 치열하게 지냈던 것 같아요. 제가 워낙 하고 싶었던 일이었으니, 그때는 힘듦을 못 느꼈어요."
"꿈이 확고해졌으니깐 최대한 빨리 아나운서라는 직종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어린 나이에 경력을 쌓는 게 메리트가 있지 않겠느냔 생각도 있었고요. 또 '내가 미술 길로 나아가지 않을 거다'는 확신이 있었으니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 활동을 빨리 시작하는 것, 추천하시나요 추천하지 않으시나요?
"'일찍 시작하는 거 어떻냐' '20대 중반, 늦지 않았냐'하는 질문도 저에게 많이 와요.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추천하지도, 비추천하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본인이 가장 잘 알 거예요. 자기 생각이 확고한데, '젊었을 때 즐기라'고 시작하지 않는 것은 현명하지 않을 수 있어요. 무작정 나이 들기 전에 시작하는 것도 오히려 시간을 헛되게 쓸 수 있거든요. 분명히 본인이 잘 안다고 생각해요. 각자마다 인생을 살아온 방식이 다르니, 제가 함부로 말씀드리면 안 되는 일이에요. 스스로 현명한 선택을 내리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차량 전복 사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인생의 양분 됐다"
-유튜브에 '차량 전복 사고'에 관한 영상을 올리셨어요. 언제 겪은 일인가요?
"정확히 '2021년 6월 30일'이었어요. 아직도 생생해서 잊을 수가 없어요. 아나운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로 기억합니다."
-어떻게 사고가 나게 됐나요?
"촬영하다가 다쳤어요. 당시 운전면허는 있었지만, 운전을 직접 해본 적은 없었거든요. 직접 '버기카'를 몰며 촬영해야 하는 상황인데 당시 운전면허 있는 리포터가 저밖에 없었어요. 하필이면 그날 소나기가 거세게 내렸어요. 흙길 위에서 버기카를 운전해야 했어요. 땅이 질퍽질퍽해져서 촬영이 중단될 정도였어요."
"잠깐 비가 그쳤을 때 촬영하게 됐어요. 사실은 겁이 많이 났죠. 너무 무서웠는데 당시 채용된 지 한 달이 되던 시기여서, 결정할 수 있었던 권한도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이면 못 하겠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너무 어렸어요. 우려했던 일이 발생한 겁니다. 차가 뒤집히면서 큰 사고로 이어졌어요. 너무 크게 다쳤어요. 팔이 완전히 꺾여서 이음새가 없었거든요. 저는 당시 사회 초년생이었고 일한 지 한 달 됐으니까, 제 몸보다 오늘 촬영을 더 걱정했어요. 응급실에서도 '오늘 촬영 못 끝내서 어떡하냐'고 말했으니깐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에 너무 괜찮은 척했던 것 같아요. 피해가 갈까 봐…"
-사고 후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얼마나 걸리셨나요?
"사실 얼마 안 됐어요. 퇴원한다고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더라고요. 심지어 대학병원에서 3개월 동안 입원해 있었고 퇴원 후 3개월 더 입원해야 했어요. 그 후엔 매일 통원 치료를 받았어요. 반년을 병원에 있고, 후유증도 오래갔어요. 당시엔 팔이 아예 안 움직였어요. 손가락도요. 로봇 팔처럼 생활했던 기간은 약 1년인 것 같습니다."
"근데 오히려 사고가 저에게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애증의 사건이지만요. 다쳤을 때 일한 지 얼마 안 됐고, 아나운서는 아무래도 보이는 직업이잖아요.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한 15㎝ 흉터가 2개 남을 거래요. 흉터 자체도 힘들었는데, 피부가 괴사 돼서 이식해야하는 것도 힘들었죠."
-두피 부근 피부 이식을 받기 위해 머리도 미셨어요. 당시엔 어떠셨나요?
"병원에서 말씀하시길, 머리에서 피부를 떼면 모근 같은게 손상이 돼, 머리가 다시 안 날 수도 있다고 했어요. 당시 머리를 미는 건 다시 자라는 머리카락의 개념이 아니었어요. 꿈을 접어야 할 수도 있는 거니깐요. 머리의 한 부분이 비어 있는 건 짧은 머리랑은 다른 개념이잖아요. 내 자의로 머리를 짧게 하는 것과 타의로 일부 대머리로 살아가야 하는 게 충격적인 상황이었어요."
"그래도 사고를 겪으면서, 힘든 시간이 결국 나에게 양분이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인간적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제는 힘든 일을 겪어도 잘 극복할 수 있게되었어요. '그래 언젠가는 이 시간이 고마워지겠지' 생각하며 버틸 수 있게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고가 고맙기도 해요."
-사고 후 병동에서 생활하며 긍정적인 모습을 잃지 않으셨어요. 비결이 있으셨나요?
"솔직히 말하면, 그냥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참았어요. 사고 당시 코로나 시기라서 보호자가 병실에 상주해 있었어요. 어머니가 곁에서 너무 힘들어하시니깐 저는 꾹꾹 참은 것 같아요. 일부러 그때 영상을 찍은 것도 어머니께 직접 '나 괜찮아'라고 하면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일까 봐 간접적으로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또 가만히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일부러 카메라에 대고 말한 것도 있었어요. 촬영하면 밝은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깐요. 일부러 더 유튜브 촬영을 했어요. 슬퍼할 겨를이 없도록요."
-만약 당시 회복하고 있는 자신에게 돌아간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슬프면 슬퍼하고, 힘들면 힘들어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당시에 나보다 다른 것을 우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너무 힘든데 어머니도 힘들어할까 봐, 혹은 아나운서 일이 틀어질까 봐 눈치도 많이 봤었어요. 물론 3년밖에 안 된 일이지만 23살이란 나이에 벅찼던 것 같아서 짐을 덜어주고 싶어요."
'흘러가는 대로 살되 안주하지 않는 아나운서'가 목표
-플로깅 봉사를 직접 주최하고 계세요. 개최 계기는 무엇인가요?
"문득 유튜브를 하면서 내가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익 창출을 하는 거잖아요. 근데 나라는 사람을 실제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주신다는 게 너무 감사드렸어요. 팬미팅을 해달란 요구가 꽤 많았거든요. 근데 제가 뭐라고 팬미팅을 해요(웃음). 그래서 팬미팅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하고, 팬분들과 만남을 가지되 '나를 위한 만남'이 아닌, '모두를 위한 만남'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봉사활동을 결정했습니다."
"유기견 봉사를 생각했었는데, 제가 팔을 다쳐서 위험할 수 있고 강아지 알레르기가 있으신 분, 무서워하시는 분들도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대안으로 '플로깅' 봉사였습니다."
-현재 부산에서 일하고 계세요. 부산의 자랑을 꼽자면요?
"매주 광안리에서 '드론쇼'가 열려요. '광안리 M 드론라이트쇼'인데 상설공연 드론 수는 약 700대, 특별 공연일 땐 2000 대가 동원돼요. 드론쇼 자체의 퀄리티도 좋아요. 광안리 접근성도 좋고요. 두 번째는 맛집이 진짜 많아요. 생각보다 부산 음식이 너무 맛있더라고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자'였어요. 요즘은 좋은 가정 꾸려서 사는 게 제 삶의 목표에요.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가는 거요. 욕심부리지 않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살 수 있는 게 제 삶이 방향성인 것 같고,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발전할 수 있는 아나운서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 영상을 봐주시는 구독자분들 중에, 힘든 시기에 제가 힘이 됐다고 말씀하시거든요. 앞으로도 제 채널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힘이 되어드릴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항상 무한한 사랑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튜브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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