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뜨고 가라앉는 마음’ 겪는 환자에게 “의지 부족 탓하면 역효과” [건강한겨레]
‘마음의 양극단 오가는’ 조울증(양극성 장애) 이겨내기
하루 안에서도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을 보고 ‘조울증(양극성 장애)이 아니냐’고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하지만 조울증이라고 불리는 양극성 장애로 진단 내리기 위해서는 ‘조증·경조증 삽화’와 ‘우울 삽화’의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기분이 들뜨는 조증과 가라앉는 우울증의 양극단에서 왔다 갔다 하므로 양극성 장애라고 불린다. 이때 삽화란 ‘증상이 계속 지속되지 않고 일정 기간 나타나고 호전되기를 반복하는 패턴’을 가리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최신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3만8천여 명이 양극성 장애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고, 1만여 명이 입원 치료를 받았다.
지난해 3만8천여 명 양극성 장애 진료
양극성 장애는 조증 삽화가 있으면 1형, 조증 삽화 없이 우울 삽화와 경조증 삽화가 있으면 2형으로 구분해 진단한다. 조증 삽화는 비정상적으로 들뜨거나 의기양양하거나 과민한 기분인 상태로, 목표지향적 활동과 에너지가 증가해 있으면서 아래와 같은 증상 중 3~4가지가 1주일 동안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에 지속되는 기간이 분명하거나, 입원이 필요하거나 정신병적 증상이 있는 경우일 때를 일컫는다.
경조증 삽화는 이런 증상이 일주일 중 4일 이상 지속되지만 상대적으로 덜 심해서 현저한 기능 손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종종 개인의 성격으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연구에 따르면 질병 여부가 애매할 경우 다음과 같은 특징적인 우울 증상이 있는 경우 양극성 장애의 가능성을 고려해보라고 돼 있다. 식욕·수면 증가, 정신병적 증상, 산후 또는 어릴 때 발병한 우울증, 양극성 장애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 우울 삽화가 빈번하게 재발하는 경우 등이다. 간혹 우울 삽화가 주된 상태로 나타나면 주요우울장애(조증·경조증 삽화 없이 우울 삽화만 있는 기분장애)만 생각하기도 하는데, 본래 양극성장애도 조증·경조증 삽화보다 우울 삽화가 나타나는 기간이 길고 빈번한 경우가 많다.
유전·환경·심리 등 복합요인으로 발생
양극성 장애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며, 유전적, 생물학적, 환경적, 심리적 요인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발생한다고 추정된다. 주요우울장애와 비교했을 때 유전을 포함해 생물학적 요인의 영향이 더 크다고 알려져 있다. 부모 1명이 양극성 장애일 경우 자녀에게 양극성 장애가 유전될 가능성은 연구 결과에 따라서 10~20% 정도로 나타난다. 한편, 스트레스와 같은 환경적 요인도 잠재된 양극성 장애 성향을 촉발한다고 보고됐지만, 꼭 스트레스 상황에서만 우울 또는 조증·경조증 삽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양극성 장애 치료에서 약물치료는 필요하며, 정신치료도 도움이 된다. 주로 기분조절제 또는 항정신병제를 사용한다. 항정신병제 약물은 정신병적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필요하지만, 정신병적 증상이 없어도 치료를 위해 쓰는 경우가 많다. 우울 삽화가 있으면 항우울제가 추가되기도 하는데, 항우울제 단독 요법은 조증·경조증을 유발할 수 있어 권유되지 않는다. 정신치료는 정신분석적 치료, 인지행동치료 등이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치료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서는 기분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가족들이 공감·경청으로 다가가면 치료에 도움
이뿐만 아니라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유지해야 하며, 감정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음주는 자제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수면 습관이다. 수면 습관을 일정하고 건강하게 하는 것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거나 만드는 데 도움이 되며, 안정적인 사람의 수면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재발하는 경우도 많다.
한편, 양극성 장애 치료에서는 가족의 역할도 중요하다. 먼저 환자가 전문가 처방에 따라 약물을 잘 복용하고 병원에 지속적으로 내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양극성 장애 환자는 조증·경조증 삽화와 우울 삽화 기간에 감정 기복으로 인해, 증상이 호전된 기간에는 스스로 나아졌다는 생각으로 인해 치료 순응도가 떨어질 수 있다. 이처럼 치료 순응도가 떨어지면 양극성 장애가 재발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약물을 잘 복용하는지 챙겨주는 것이 좋다.
그러나 지나친 가족의 간섭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양극성 장애 환자는 조증·경조증 및 우울 삽화 기간에 기분, 의지, 흥미 등이 계속 변하고 수면과 식욕도 달라질 수 있다. 뇌 안에서 신경전달물질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뜻대로 실천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종종 이런 증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지 부족을 탓하거나 정신을 차리라며 나무라는 가족이 많다. 환자의 증상이 가볍다면 조언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중등도 이상일 때는 오히려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양극성 장애 환자는 같은 상황이라도 기분 상태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 이처럼 일관적이지 못한 기분 때문에 가족 구성원은 혼란을 느끼거나 대처에 어려움을 겪기 쉽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환자가 마음의 문을 열거나 감정을 표출하는 순간 최소한의 공감과 함께 ‘직접 겪지 않은 일이라 조심스럽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힘들 것 같다’고 말하며 경청해준다면 환자가 나아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상진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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