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과 제임스 킴이 말하는 트럼프 2기 '사용설명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제47대 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그가 다시 주도할 대외 경제, 외교, 국방 정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1기(2017~2021년) 집권 당시 그는 '미국 우선주의'와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해 경쟁자인 중국은 물론 한국과 유럽 등 동맹국들도 힘들게 했다.
IBM과 컴팩을 거쳐 공급망관리(SCM) 전문가로 자리잡은 팀 쿡이 1998년 애플에 합류하면서 PC 생산을 외주화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 애플의 회생의 발판이 되었지만, 미국 내 일자리를 중국으로 옮긴 셈이었기에 보호무역주의 정책 하에서 타겟이 될 위험이 높았다.
이에 팀 쿡은 트럼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가족 공략에 나섰다. 쿡 CEO는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딸 이방카 트럼프와 가까이 지내면서 트럼프 정부의 노동력정책자문위원회나 미국혁신국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두 조직 모두 이방카 부부가 이끄는 조직이다. 정부 출범초기 이들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초대해 바다가재 스프와 양고기, 파스타를 함께 먹으며 "새 행정부가 중요하게 보는 정책 목표와 방향성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 자리에서 쿡이 얻은 중요한 팁은 이방카가 전한 "아버지에게 직접 전화해서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면 좋아하신다"는 조언이었다.
이후 팀 쿡은 애플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직접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생산하는 애플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이 추진되었을 때 쿡은 트럼프에게 전화로 만나자고 한 후 백악관을 방문해 "중국산 애플 제품에 관세가 부과되면 (베트남에서 생산하는) 삼성과 경쟁할 수 없다"며 설득했고, 결국 관세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또한, 팀 쿡은 애플의 공급망이 미국 내 부품업체 및 조립기계 업체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음을 트럼프에게 강조하며, 애플이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부분을 부각시켰다. 실제로 '애플, 미국 공장 일자리에 수십억 달러 투자 약속' 같은 언론 보도가 이어졌는데, 이는 원래 예정된 애플의 투자 계획을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제조업 지원과 연계해 효과적으로 홍보한 사례였다.
2017년 5월 말 애플 커뮤니케이션팀은 CNBC '매드 머니' 진행자 짐 크레이머를 애플의 본사 인피니트 루프로 초대해 팀 쿡과의 인터뷰를 주선했다. 이 자리에서 쿡 CEO는 "미국 내 150만 명의 앱 개발자와 50만 명의 공급업체 직원 등 총 2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자랑했다. 사실 애플은 중국에서만도 450만 명의 공장 근로자와 개발자를 고용하고 있었지만 트럼프가 싫어할만한 이런 숫자는 굳이 드러내지는 않았다.
2018년 1월, 애플은 향후 5년간 3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2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미국 경제 기여 계획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이 약속의 80%는 원래부터 진행 중인 사업이었고, 트럼프의 세제 개편과 무관했으나, 애플은 이를 과장해 발표해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의 성과로 포장했다. 이 발표는 국정연설에서도 트럼프가 자랑스럽게 인용할 정도로 주효했다.
트럼프 1기 때도 핫한 이슈였던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문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미국이 비용을 들여가면서 한국에 군사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유럽에게도 마찬가지다. 과거 정부의 '동맹'이나 '혈맹'은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으며 오직 '자본'으로 관계를 설정하는 트럼프 스타일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브앤테이크'에 대한 인식이 강한 트럼프에게 한국이 주고 있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시키라는 게 제임스 킴 회장의 조언이다.
방위비 분담금만을 보더라도 그는 "한국이 매년 여기저기서 미국의 무기를 수입하는데 그 규모가 상당한데 이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국 무기수입 펀드라는 통일된 이름 아래 산재해 있는 것들을 모아 '10억 달러 펀드'를 만들었다"고 하면 트럼프가 크게 환영할 것이라고 했다. 이해하기 쉽고 단순한 메시지 전달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이런 아이디어를 지난 정부의 방미 때 제안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고 한다. 암참은 한국이 미국 방위산업에 기여하는 바를 통합된 용어와 상징적 메시지로 강조해야 한다고 제안했으나 이를 무시했고, 이후 방위비 인상 압박은 가중되었다. 제임스 킴 회장은 현 정부에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트럼프가 이해하기 쉬운 메시지를 심플하게 정리해 전달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등 미국 내 사업장을 가진 기업들은 미국에 기여하는 부분을 더 강력한 메시지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기존에 각인된 이미지를 쉽게 버리지 않는 인물인데, 이를 바꾸는 방법은 쉬운 메시지와 사적관계를 통한 설득이다. 이를 활용해 기업이나 나라가 자신에게 맞는 메시지를 제공할 때 쉽게 설득되는 경향이 있다. 팀 쿡과 제임스 킴의 사례는 기존의 것을 새롭게 포장하는 전략과, 단순하고 직관적인 메시지를 통해 트럼프에게 필요한 것을 각인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향후 4년간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트럼프가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언어'로 설득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파워가 더욱 강해진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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