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보다 방송이 더 심각”…‘소음 전쟁’에 절규하는 접경지역

이준희 기자 2024. 11. 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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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몇년은 (북한이) 저렇게 떠들지 않고 조용했는데 지금은 저러니까 또 전쟁이나 일어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지. 걱정 때문에 잠도 못 자겠어."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강화화문석테마마을에서 6일 오전 10시께 만난 문정분(83)씨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대남방송에는 워낙 익숙해 문씨 같은 이들은 북한 노래를 절로 외울 정도지만, 약 다섯달 전부터 시작된 북한의 새로운 '소음 방송'에는 이곳 주민들도 속수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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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리 이장 안효철(67)씨가 4일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에서 북한 확성기가 설치된 장소 쪽을 가리키고 있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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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몇년은 (북한이) 저렇게 떠들지 않고 조용했는데 지금은 저러니까 또 전쟁이나 일어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지. 걱정 때문에 잠도 못 자겠어.”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강화화문석테마마을에서 6일 오전 10시께 만난 문정분(83)씨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밤새 당산리 전역에 울려퍼지던 북한의 대남방송이 잠시 멈췄을 때였다. 비닐하우스에서 바람을 피하며 커피를 마시던 문씨와 주민들은 기자를 보자 ‘여기서 혼자서 주무셨어? 무서워서 혼났겠어’라며 한참을 웃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문씨가 말했다. “전쟁은 안 되지. 절대 안 되지.”

이곳 당산리는 북한과 직선거리로 약 2㎞ 떨어져 있는 곳이다. 6월1일 기준 147가구, 355명(남성 181명, 여성 174명)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 대를 이어 사는 토박이다. 대남방송에는 워낙 익숙해 문씨 같은 이들은 북한 노래를 절로 외울 정도지만, 약 다섯달 전부터 시작된 북한의 새로운 ‘소음 방송’에는 이곳 주민들도 속수무책이다. “라디오도 노래도 아니고 이상한 소리를 막 틀어대는” 상황 때문이다.

문정분(오른쪽)씨와 마을 주민들이 6일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강화화문석테마마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준희 기자

실제 한겨레는 4∼6일 이곳 당산리에서 주민들이 겪는 대남방송을 직접 들어봤다. 마을 사람들은 “최근 확성기가 고장 났는지 소리가 작아진 편”이라고 했지만, 소음은 숙소의 이중창도 뚫고 들어와 밤새 사람들을 괴롭혔다. 주민들은 이 소리를 기계 소리, 쇳소리, 짐승 소리, 귀신 소리 등으로 표현했는데, 그 말대로 무슨 소리인지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기괴한 소음이었다. 한겨레가 동일한 장소(고려천도공원)에서 각각 데시벨을 측정해보니, 방송이 꺼졌을 때 36에 불과하던 데시벨은 방송이 켜지면 소방차 사이렌 수준인 최대 95까지 올라갔다.

주민들은 절규했다. 당산리 이장 안효철(67)씨는 “70년대에는 여기에 북한군 총알이 날아들고 했는데 그때보다 지금이 더 심각하다”며 “주민들이 밤에는 수면제를 먹고 자고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아픈 이들도 여럿”이라고 했다. 검은색 안경을 쓴 안씨는 “내가 원래 시력이 2.0씩 나왔는데 지난달 2일부터 갑자기 눈이 흐릿하고 안 보인다”며 “병원에서는 뇌에서 눈으로 가는 4번 신경이 스트레스 때문에 문제를 일으켰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안씨는 “집에서 키우던 7살 보더콜리도 며칠 전 죽었다”며 “개는 청각이 더 예민하다던데 동물들도 견디기 힘든 모양”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입을 모아 “남과 북이 모두 방송, 전단, 오물풍선 등 적대적인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했다. 특히 이 사태가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북한의 오물풍선 살포→대북방송 재개→북한의 소음방송 재개 순으로 이어진 만큼 정부가 대북방송을 멈추고 대북전단 살포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했다.

다만 이들은 정부의 의지에 의구심을 품었다. 이만호(64) 당산리 새마을지도자는 “솔직히 대통령이 대북방송 하지 말라고 말만 하면 바로 안 할 것이고 그러면 북한도 멈추지 않겠느냐”며 “본인 지지율이 최악으로 떨어지고 당내 갈등도 심하다 보니 이 문제를 방치하면서 이슈화시키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5일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강화화문석테마마을 사무실 책상 위에 대남·대북방송에 반대하는 문구가 적힌 쪽지와 접경지역 지원 특별법 개정안 관련 서명지가 놓여 있다. 이준희 기자

기자가 마을을 떠나려는 찰나에 유재온(84)씨가 ‘집에서 차라도 한잔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유씨는 “예전에는 북한 방송에서 노래도 나오고 그걸 듣다 보면 우리 노래랑 비슷하기도 해서 한 핏줄이라는 게 느껴졌는데 요즘은 정말 서로 전쟁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만 든다”며 “정말이지 민족의 비극이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내가 10살 때 6·25전쟁을 겪었고 군인들이 우리 부모한테 총부리를 겨누고 사람들을 쏘아대던 모습을 다 기억한다”고 했다.

“금방 통일이 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70년이 지났어.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고 믿어왔는데 저 귀신 소리를 들으면 그런 건 이제 없는 것처럼 느껴져. 그래도 최소한 전쟁은 없어야 해. 전쟁이라는 건 절대 없어야 해.”

글·사진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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