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하게 날린 1300억원, 증권업계 빨간불 켜다
올해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유독 ‘사고 처리와 대책’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다. 티몬·위메프 사태부터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부당 대출 문제, NH농협은행 영업점의 잇따른 금융사고가 지적 사항으로 등장했다. 국정감사가 진행되던 중 또 다른 금융사고 소식이 전해졌다. 10월11일, 신한투자증권은 장내 선물매매 및 청산으로 인해 1300억원 넘는 손실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신한투자증권은 자기자본이 5조원이 넘는 업계 8위 증권사다. 이번 사고로 지난해 영업이익 3859억원의 33%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사고 규모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사고가 발생한 부서다.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 공급자(Liquidity Provider·LP) 역할을 하는 부서에서 장내 선물매매로 과대 손실이 발생했는데, 이를 숨겨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통상적인 자기자본 투자(프롭트레이딩) 과정이 아닌, ETF LP 부서의 손실 소식에 황당하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LP 업무 과정에서 이 정도 손실이 발생하는 것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ETF LP란 ETF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동성(호가)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의미한다. ETF는 시장에 상장된 펀드로 거래소에서 주식처럼 사고파는 게 가능하다. 코스피 지수를 추종하는 ETF, 금·원유 선물 ETF, 지수가 떨어지는 데 베팅하는 ‘인버스 ETF’ 등 다양한 ETF 상품이 시장에 출시되었고 거래 금액도 늘고 있다.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2014년 172개 종목에 불과했던 한국 ETF 시장은 2024년 9월 893개 종목으로 늘었다. 순자산가치 총액도 같은 기간 19조원에서 159조원으로 8배 넘게 늘었고, 하루 평균 거래대금도 6883억원에서 3조4590억원으로 다섯 배 이상 증가했다.
ETF 거래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동시에 존재해야 이뤄질 수 있다. 만약 사려는 사람만 있고 팔려는 사람이 없다면, 해당 ETF는 거래가 불가능하다. 만약 적정 거래량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ETF 가격에 왜곡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LP를 통해 일종의 거래 가능한 유동성을 공급하고 매수·매도 주문을 적극적으로 제공한다. 다시 말해 LP는 ETF를 사고파는 중간자 역할을 하면서 ETF 시장의 윤활유로 작용한다. 기초자산(주식, 채권, 원자재 등)의 본질 가치와 ETF 가격 간의 괴리를 방지하고, 원활하게 자산시장이 운영되도록 한다.
총체적인 ‘내부통제 부실’ 가능성
신한투자증권의 이번 사고는 ETF LP 부서의 본질적인 역할(중간자 역할)에서 벗어난 트레이딩으로 인해 일어났다. 이 손실이 2개월 넘게 은폐되었다는 점도 의아한 대목이다. 신한투자증권 측은 해당 사고가 8월2일부터 10월10일까지 지속되었고, 문제를 일으킨 직원이 그동안 허위 스와프거래로 문제를 감추려 했다고 설명한다. 이번 손실에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가 큰 폭으로 하락한 8월5일 ‘검은 월요일’의 여파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제 부서를 따로 두는 증권사 특성상 허위 스와프거래를 통해 ‘위장’이 가능했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총체적인 ‘내부통제 부실’이라 지적받는 이유다.
ETF가 대중화되고 거래 규모도 갈수록 증가하는 와중에 발생한 문제라 사태의 후폭풍이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10월14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금융권에서 각종 횡령, 부정 대출 등 금융사고가 지속돼 우려스러운 가운데 신한투자증권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라면서 금감원에 이번 사고에 대한 철저한 검사와 조사를 요구했다. 이날 금융감독원은 현장검사에 착수했고, 이와 동시에 국내 증권사와 주요 자산운용사의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전수 점검에 들어갔다.
이번 손실이 신한투자증권 기업이나 금융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채권 평가 기관 3사(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NICE신용평가)가 발표한 리포트를 종합해보면, 예상 손실금액은 신한투자증권이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의 검사 결과에 따른 최종 손실금액을 따져봐야 하지만, 신한투자증권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2106억원)과 회사 자본력(약 5조원)을 감안하면 회사가 무너질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로 인해 증권사 전반의 영업 환경과 리스크 관리를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국내 증권사를 둘러싼 환경 변화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10월14일 NICE신용평가 이혁준 금융평가본부장은 자사 홈페이지 칼럼을 통해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은행계 금융회사는 보수적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 본부장은 “은행계 금융회사일수록 경영 기조나 리스크 관리가 보수적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다고 답변한다”라고 언급했다. 부동산금융 사업 비중이 높고, 최근 수익성이 저하되었으며, 고위험 고수익 경영 기조를 가진 증권사 가운데 은행계 증권사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이런 주장과 함께 “일부 은행계 금융회사를 지켜보면 부잣집 도련님이 뒷감당을 걱정하지 않고 무리하게 일을 벌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특정 금융회사를 지목하지는 않았으나, 이 칼럼이 발표된 시점을 고려할 때 신한투자증권이 주된 비판 대상 중 하나라는 해석이 다수 나온다.
지난해 자본시장연구원 이효섭 선임연구위원은 ‘종투사 10년 평가 및 한국형 IB 발전전략’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국내 IB(투자은행) 산업의 명과 암을 조망했다. 2013년에 시작된 종투사(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는 ‘국내 종투사의 글로벌 IB 성장’을 목표로 삼아 도입되었다. 증권사가 자기자본금을 늘려 다양한 혁신 벤처기업에 투자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이다. 현재 신한투자증권을 비롯해 9개 증권사가 종투사로 지정됐다. 그러나 위 보고서는 2013~2023년 동안 국내 종투사들이 양적 성장에는 성공했지만, 기업여신 중 상당 비율이 부동산 부문에 편중되어 있고, 당초 제도 도입의 목적이었던 모험자본 공급에서는 성과가 미미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부동산PF 사태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분야가 증권업종이다. NICE신용평가가 9월23일에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이 문제는 부각된다.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는 부동산금융’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보고서는 특히 중소형 증권사에서 2020년 이후 뒤늦게 부동산 부문에 집중했고, 2023년 금리인상과 부동산PF 환경 저하가 나타나면서 부실 비용이 증가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에 사고가 터진 신한투자증권이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편’이라는 점이다. 9월20일 한국신용평가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신한투자증권의 부동산금융 노출도는 자기자본 대비 47%로 대형사 평균(57%)을 하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금융에 노출된 비율이 여전히 크고, 우발적인 손실로 인한 영업 환경 변화가 신한투자증권에는 악재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1300억원 손실 사고는 10년 넘게 양적 팽창을 거듭해온 한국 증권업에 ‘위험통제 능력’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를 묻고 있다. 가뜩이나 양적 팽창으로 인한 후유증(부동산금융 문제)을 겪는 와중에 업계 전반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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