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이익을"… '섬유 사업보국 실천' 코오롱 이동찬

이한듬 기자 2024. 11. 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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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으로 나라에는 이익을, 후손에는 풍요로움을, 사원에겐 보람을 주고 싶다."

고(故)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의 '사업보국'(事業報國, 사업을 통해 나라에 이바지한다) 철학이 담긴 발언이다.

이 명예회장은 경북 영일 출신으로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1957년에 부친과 함께 코오롱그룹의 모태인 한국나일론을 설립, 국내 첫 나일론 공장을 건설하면서 우리나라 화학섬유시대를 개척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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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10주기… 국내 섬유산업 성장 견인
"사업으로 나라에는 이익을, 후손에는 풍요로움을, 사원에겐 보람을 주고 싶다."

고(故)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의 '사업보국'(事業報國, 사업을 통해 나라에 이바지한다) 철학이 담긴 발언이다. 이동찬 명예회장은 과거 한국전쟁 여파로 제대로 의복조차 입지 못하던 국민에게 따뜻한 옷을 입게하겠다는 신념 아래 부친 이원만 창업주와 국내 최초로 나일론 공장을 세우며 한국 섬유산업의 발전을 견인했다.

8일은 이동찬 명예회장의 10주기다. 이 명예회장은 경북 영일 출신으로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1957년에 부친과 함께 코오롱그룹의 모태인 한국나일론을 설립, 국내 첫 나일론 공장을 건설하면서 우리나라 화학섬유시대를 개척한 인물이다.

이 명예회장은 창업 1세대는 아니지만 부친과 함께 사업의 기초를 다진 '1.5세대' 경영인으로 인정 받는다. 한국나일론은 1963년 국내 최초로 나일론사 공장 준공을 시작으로 한국 섬유산업 증흥의 발판을 다졌다. 당시 나일론 공장 설립은 국내 섬유산업에 큰 획을 그은 사건으로 꼽힌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은 섬유수출에 따른 외화벌이를 통해 경제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 명예회장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코오롱상사, 코오롱나일론, 코오롱폴리에스터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코오롱그룹을 현재 재계 37위로 키워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80년대에는 타이어코드, 필름, 메디컬 등 관련 분야로 영역을 확대해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성공했다.

1982년부터는 14년 동안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맡았다. 노사문제가 심각했던 시절 경총의 회장으로서 노사관계 발전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89년에는 경제5단체가 참여하는 경제단체협의회 창설을 주도했고 1990년에는 노사와 공익대표가 참석하는 국민경제사회협의회를 발족시켰다. 1993년에는 한국노총과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냈다. 1994년에는 '산업평화 선언'을 통해 노사협력의 기틀을 닦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천에도 앞장섰다. 특히 한국 스포츠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70년 여자실업농구연맹 회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대한농구협회장, 대한골프협회장 등을 지내며 한국 체육계 발전에 이바지 했다.

마라톤에도 남다른 관심을 뒀다. 고교마라톤대회를 만들고 코오롱 마라톤팀을 운영하면서 국민마라토너 황영조와 이봉주 등 대표 선수들을 길러냈다.

1996년 아들인 이웅렬 전 코오롱 회장에게 경영을 물려 준 뒤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는 화가로 변신해 예술인의 삶을 살았다. 회사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데 열중했다. 주로 산과 강, 바다 등 자연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다. 1992년 고희전에 이어 2001년 팔순전, 2009년 미수전 등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초등학교 동창생들을 비롯한 지인들과 낚시여행을 다니면서 노후를 즐겼다. 당시 외제 고급승용차량 대신 국내 기업 차량인 카니발을 주로 이용하고, 숙박시설도 고급 호텔보다는 낚시터 인근의 저렴한 민박이나 여관 등을 이용하는 사실이 알려져 재벌기업 회장 답지 않은 소박하고 검소한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2014년 11월8일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0년이 흐른 현재에도 한국 산업을 대표하는 진정한 기업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이한듬 기자 mumfor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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