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트럼프의 귀환, 시험대 오른 한국

여론독자부 2024. 11. 8.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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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전 북한인권대사
'거래 외교' 파고 한반도 먼저 올수도
'한미동맹, 자국에 도움' 지속 강조
韓기업의 美경제 기여 설득 나서야
[서울경제]

숱한 여론조사와 초박빙 대선 예측이 무색하게 도널드 트럼프는 개표 하루 만에 미국 대통령으로 돌아왔다. 경제와 이민 문제처럼 실생활과 맞닿은 현안에 답을 원하는 미국인들은 글로벌 리더십보다 ‘검증된 스트롱맨’을 선택했다. 성별이나 다양성보다 보수적 가치를, 이념보다 실질적 경험을 중시하는 미국 주류의 정서를 감안하면 이 같은 결과는 그리 놀랍지 않다. 그러나 그의 귀환이 불러올 파장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이미 자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로 기울어진 미국이지만 이번 선거로 상하원마저 공화당이 장악하면서 트럼프는 더욱 강력한 권력을 쥐게 됐다. 이는 중국 봉쇄와 동맹국들에 대한 경제적 부담 전가를 포함한 압박 전략이 본격화될 신호로 보인다. 트럼프는 미국 중심의 공급망과 안보 네트워크 재편을 위해 동맹국에 더 강한 자립과 부담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며 이에 따라 각국과 기업들은 ‘미국의 재채기’로 불거질 경제 및 안보 불안에 대한 대비를 서두르고 있다.

위기와 불확실성은 항상 존재하지만 현 국제 정세는 한층 더 위험천만하다. 미중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의 불안정성 속에서 미국 주도의 기존 국제 질서에 맞선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확장 등으로 새로운 진영 간 대결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이 같은 ‘블록화’ 현상은 트럼프 1기와 맞물려 서구 내부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민주주의의 신뢰를 약화시키며 권위주의 체제의 확산을 초래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기치로 연대를 꾀했으나 글로벌 리더십을 국가 이익보다 우선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다.

이제 트럼프의 귀환은 ‘거래 외교’를 앞세워 원칙과 신뢰 대신 힘과 거래가 지배하는 혼란의 시대를 다시 소환하고 있다. 설사 4년 후 미국이 민주주의와 국제적 역할을 강조하는 리더십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돌아간다 해도 자국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유권자 성향을 고려할 때 과거의 초강대국 미국의 모습으로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런 변화의 파고가 한반도에 가장 먼저 닿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미국의 안보 공약에 의존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적 연계가 깊은 이중 딜레마에 놓여 있다. 트럼프는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 부르며 방위비 대폭 인상을 요구했고, 중국 경제 의존도를 줄이지 않으면 안보 협력 조건을 충족할 수 없다는 압박을 가해왔다. 그가 재등장하면서 한미일 협력 구도가 미일 중심의 위계적 구조로 개편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크게 제한하면서 더 큰 동맹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는 또한 ‘톱다운’ 방식의 협상을 선호하기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협상을 위해 한국을 배제한 채 비핵화 대신 군축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는 한미동맹의 ‘안보 레드라인’을 넘는 문제로 한국의 전략적 취약성을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 미국 의회가 북한 비핵화와 같은 중대한 문제에 대해 행정부를 견제할 가능성도 있지만 공화당 주도 하에 이런 기대는 더욱 쉽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한미동맹이 미국에도 유익하다는 점을 선제적으로 설득하며, 한국의 중요성을 민관학 차원에서 꾸준히 강조해야 한다. 또 최근 긴밀한 한미 협력을 통해 추진해 온 북한 인권 개선 노력에 있어서도 ‘인권 스위치’가 꺼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경제적으로 미국은 보호무역과 감세 정책으로 자국 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촉진하는 반면 한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은 2023년 기준 대미 투자 1위국으로서 미국 동맹국 중 제조업과 첨단 기술, 소프트파워에서 강점을 가진 중요한 파트너임을 상기시키며 한미동맹이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목표와 부합하다는 점을 부각해야 한다. ‘동맹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lliance Great Again)’라는 기조로 접근해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에서 경제적 기여를 통해 동맹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도전 속에서 한국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내부 분열을 극복하는 일이다. 외교와 안보마저 정치적 갈등의 도구로 변질되고 있는 현실은 결국 국가 발전과 생존까지 위협할 수밖에 없다.

정파적 이해를 넘어 안보·경제· 외교 문제에 대해 초당적 협력과 국익을 중심으로 하나 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이 거대한 파고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굳건히 하고 국제사회에서 믿을 수 있는 선도 중견국의 위상을 유지하며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할 때이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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