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망해도 사랑하리’라는 모자라게 모진 이들

임인택 기자 2024. 11. 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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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지연의 새 소설집엔 모질지 못한 자들이 많다.

시대의 투영인 듯 작품 전반에 금전 관계가 삽화로서 잦은 터, 계산에 무력한 사람, 청춘에게 통용되는 미덕과 달리 "미루는 버릇 때문에 될 일도 안 될 것" 같은 사람, "누가 나쁜 짓을 해도 금방 용서를 해버"리는 사람, 하여 양태를 추리자니, 전 남친 때문에 생긴 빚을 그냥 떠안겠다는 사람('반려빚'), 사촌의 돈까지 빌려 잠적한 전 남친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사람('포기'), 남편이 불륜 끝 이혼을 요구해도 화 한 번 못 내거나 훗날 단란해 보이는 불륜 가족의 사진을 간직해 두는 사람('좋아하는 마음 없이'). 모질지 못한 사람은 모자란 사람이 되고 마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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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두 번째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을 펴낸 김지연 작가.

조금 망한 사랑

김지연 지음 l 문학동네 l 1만7000원

소설가 김지연의 새 소설집엔 모질지 못한 자들이 많다. 시대의 투영인 듯 작품 전반에 금전 관계가 삽화로서 잦은 터, 계산에 무력한 사람, 청춘에게 통용되는 미덕과 달리 “미루는 버릇 때문에 될 일도 안 될 것” 같은 사람, “누가 나쁜 짓을 해도 금방 용서를 해버”리는 사람, 하여 양태를 추리자니, 전 남친 때문에 생긴 빚을 그냥 떠안겠다는 사람(‘반려빚’), 사촌의 돈까지 빌려 잠적한 전 남친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사람(‘포기’), 남편이 불륜 끝 이혼을 요구해도 화 한 번 못 내거나 훗날 단란해 보이는 불륜 가족의 사진을 간직해 두는 사람(‘좋아하는 마음 없이’)….

모질지 못한 사람은 모자란 사람이 되고 마는 때다. 따지고 응징해 제 몫을 챙기는 대신, 지레 체념하고 제 탓을 가늠한다.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의 형상이다. 김지연 작가가 2년여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소설집이다. 작품엔 죽음도 많다. 다만 그 ‘사건’은 소설 안에서 결코 사건답게 서사되지 않는다. 죽음 이전과 이후, 이별과 같은 사건의 이전과 이후 절단되지 않는 마음의 섬세한 결, 접혀 가려진 주름을 활자로 드러내는 데 작가는 치중할 뿐이다. 자처한 몫이다. “별일이 안 일어나는 것 같지만, 거기에 사는 사람들 나름의 속사정 같은 걸 세심하게 이야기하고 싶다”(2018년 등단 때 작가 인터뷰)는 말대로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의 평이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 여성 안지. 결혼 1주년도 안 되어 이혼을 당한다. 불륜 남편과 상대 여자가 아이도 데려간다. 안지도 딱히 반발하진 않았다. 10년 뒤 그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부터가 소설의 알짬일 것이다. 상대 여자는 아이의 양육비를 청해온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 전개되는 안지의 행위는, 모진 이들에게 얼마나 비현실적일까. 작가에게 ‘과거’는 지난 때가 아니라, 잊지 못한 때다. 간직된 것이다. 진짜 모진 이들이다. 그들의 모진 생존이 2할의 애틋함, 3할의 담담함, 5할의 달곰함으로 펼쳐진다. 첫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로도 관계가 풍요로워지던 마법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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