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군사협력 심화 막으려면 대중관계 개선해야 [한중일 글로벌 삼국지]
(서울=뉴스1) 백범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초빙교수 = 2022년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후(제2차 세계대전 후) 질서에 크고 긴 균열을 남겼다. 북한은 전후 질서의 최대 희생양 가운데 하나인 한반도에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화(戰火)를 불러들일 수 있을 만큼 위험한 도발을 감행했다. 러시아 파병을 결정한 것이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져온 전후 질서 변화의 흐름을 타고 가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 파병을 강행했다.
파병된 북한군은 우크라이나에 점령당한 러시아령 쿠르스크는 물론, 러시아가 합병을 선언한 도네츠크, 헤르손, 자포리자 전선에도 투입될 수 있다. 지난 6월19일 체결된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제4조는 '일방이 개별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는 경우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군사모험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미국을 포함한 대서양 연합 전체를 들고 일어나게 만들었다. 대서양 연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중립적이었던 핀란드와 스웨덴마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도 가입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엔 상임이사국들 간 직접 군사충돌의 문턱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뜻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진영 유엔 상임이사국들이 다 함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비슷한 사건이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인 1968년 8월 체코슬로바키아(1993년 1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에서 일어났다. 소련군을 포함한 바르샤바조약군 약 20만 명이 수도 프라하를 침공한 것이다. 프라하 사태를 가장 강하게 비난한 나라는 서방진영의 미국과 서독 등이 아니라, 반(反)소련 공산진영의 중국, 유고슬라비아 등이었다. 특히 중국은 프라하 사태가 살계경후(殺鷄儆猴·닭을 죽여 원숭이를 복종하게 만든다는 뜻)이자 성동격서(聲東擊西·동쪽에서 소란을 피운 다음 서쪽을 공격한다는 뜻) 전략임을 간파하고, 소련의 침공에 대비했다.
그해 12월과 다음 해 3월 소련군이 아무르강(헤이룽장)의 하중도 다만스키섬(진보도)에 상륙해 중국군과 무력충돌을 벌였다.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중소 관계는 소련 말기인 1989년이 돼서야 정상화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 취임 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매년 4~5차례, 지난 10월 말 러시아 카잔에서 개최된 브릭스(BRICS) 정상회의 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지금까지 무려 45차례나 회동했다. 이는 중러 두 나라 관계가 밀접하다는 뜻도 되지만, 정상끼리 협의, 해결해야만 할 정도의 문제가 산적한 전략적 라이벌이라는 뜻도 된다.
중국이 직면한 '가장 주요한 모순(矛盾)'은 미중 전략적 대립과 경쟁이다. 중국은 공통의 이념이나 가치, 국익이 아니라, 나토로 대표되는 대서양 연합으로부터 함께 견제받는 러시아와 힘을 모아 대항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러시아와 협력하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등에서의 중러 간 이해관계는 상충된다. 특히 북한에 대한 중러 간 지정학적 이해관계는 상충을 넘어 대립적이까지 하다.
북한은 최대 후견국을 자처해 온 중국의 우려와 견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파병을 결정했다. 북한에게는 중국이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 외화와 첨단 군사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조와 핵잠수함 건조.운용 등과 관련된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이 북한으로 넘어갈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중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러시아의 지원에 힘입어 북한의 무기 성능이 개량되면 방어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몇 배의 비용을 더 투입해야 한다. 북러 군사협력 심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대중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한국이 러시아 첨단 군사기술의 북한 이전을 늦추거나 저지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량의 공격용 무기를 지원하는 등 나토와 함께 러시아에 고강도로 대응하면 어떻게 될까. 효과는 있을까. 오히려 러시아가 군사기술 이전을 가속화하지는 않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가 전술핵무기를 만지작거리며, 중국이 유라시아의 지정학적 파국을 막기 위해 러시아를 군사 지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면, 동아시아의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북한뿐 아니라 중국도 러시아를 군사 지원하게 된다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라시아의 동쪽 한반도로 이전,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중러가 군사적으로 밀착하게 되면 한반도와 대만해협은 6·25 전야(前夜)의 애치슨 라인(Aecheson Line)과 같이 '불안정의 호(弧)'가 아니라 '전쟁의 호' 안에 갇히게 될 수 있다. 한국이 가장 피해야 할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고, 첨단 군사기술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와의 관계도 가능한 조속히, 제한적이나마 개선해야 한다.
미일의 중국에 대한 장, 단기 입장은 이미 오래전 결정됐다. 경제력 쇠퇴와 내정 불안을 겪고 있는 일본은 더 이상 과거처럼 견고한 나라가 아니다. 향후 10~20년간 한국의 중국에 대한 입장이 매우 중요해졌다. 중국은 대만해협의 현상 유지냐, 타파냐, 사이에서 한국의 입장을 물어보며 가지 않을 수 없다. 군사적, 경제적으로 비중이 작지 않은 한국이 미일 동맹과 더 밀착하게 되면 지금의 러시아처럼 중국도 고립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향후 10~20년간 대만해협 현상타파로 가는 길을 가겠다고 하면, 한국은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준비를 해 나가야 한다. 중국이 군사적 모험을 감행할 수 없도록 미국과 일본 등 견제세력에 힘을 보태야 한다.
한국의 일부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외교를 국익이 아니라, 선악의 눈으로 보려 한다. 한국 외교는 앞으로 크게 변해야 한다. 당장은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됨에 따라 야기될 세계정세 변화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 새 정부의 정책방향에 따라 나토마저 발을 뺄지 모르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새로 발을 담그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한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우리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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