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씹을수록 고소하고 쫄깃한 식감…“수구레국밥, 맛 개않네요~”

김보경 기자 2024. 11. 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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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밥상] (65)대구 달성 ‘수구레국밥’
수구레, 소 가죽과 살 사이 붙은 쫄깃한 근육
선지·대파·고춧가루 등 넣고 1시간 이상 삶아
뚝배기에 담아 간마늘·땡초 더하면 국물 얼큰
다양한 식감 느끼고 싶다면 ‘볶음·무침’ 추천
대구 달성군 현풍백년도깨비시장에 있는 ‘십이리할매소구레국밥’. 매주 수요일 인근 도축장에서 가져온 수구레를 60㎏씩 손질한다.

장이 서면 사람이 모인다. 손님이 흥정하는 말소리와 상인의 호객 소리가 시끌벅적하게 활기를 띠고 방앗간의 고소한 기름 냄새가 시장 입구까지 마중 나온다. 대구 달성군 현풍읍엔 매달 5일과 10일에 열리는 ‘현풍백년도깨비시장’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에 개장해 100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는데 조선 후기 현풍장 때부터 세어 보면 250년은 족히 넘는다. 1980년대까지 이곳엔 제법 큰 우시장이 있었다. 인근 경북 고령·청도, 경남 창녕 등지에서도 소를 사고팔려고 장이 서는 전날부터 사람과 소로 북적였다. 이 우시장 길목 좌판에서 부들부들한 수구레와 탱글탱글한 선지를 넣어 얼큰하게 끓인 ‘수구레국밥’은 이른 새벽부터 장터에 모인 사람들의 속을 든든하게 데워준 음식이다.

수구레국밥.

‘수구레’는 소의 가죽과 살 사이에 붙은 쫄깃한 피부 근육이다. 소 한마리에 2㎏ 미만으로 나오는 특수부위로 지방이 거의 없고 대부분 콜라겐과 젤라틴 성분이다. 따라서 관절 건강에 도움을 주고 낮은 열량에 콜레스테롤도 적어 부담이 없다. 풍미가 뛰어난 부위는 아니지만 씹을수록 고소하고 쫄깃한 식감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수구레로 만든 음식은 우시장이 있는 시골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대구·창녕 등 경상도 지역에선 ‘소구레’라고도 부르며 주로 국밥에 넣어 먹는다. 지금이야 옛 추억을 회상하거나 이색 음식으로 찾아 먹곤 하지만 고기가 귀했던 옛날엔 소고기를 대신하던 서민 음식이었다.

수구레는 손질하기 까다로운 부위다. 소가죽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수구레만 정교하게 잘라내야 하는데 손이 많이 가는 탓에 수구레를 파는 곳이 많이 줄었다. 수구레를 깨끗하게 씻는 일도 만만치 않다. 도축장에서 바로 받아온 수구레는 마치 생선 비늘처럼 미끈거리는 얇은 막 형태다. 이를 센 불에 삶으면 수구레가 부풀어 오르며 꼬들꼬들해진다. 수구레가 고르게 팽창할 때까지 삶은 뒤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어야 누린내가 나지 않는다.

간단한 반찬과 함께 차려진 수구레국밥(오른쪽)과 수구레볶음(왼쪽) 한상. 대구=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상설 시장으로 재단장한 현풍시장 한쪽엔 10여곳의 수구레국밥을 파는 식당이 줄지어 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식당마다 하얀 김을 폴폴 풍기는 가마솥은 지나가던 손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옛 향수가 진하게 느껴지는 ‘십이리할매소구레국밥’은 현풍시장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이다. 벌써 70년이 훌쩍 넘은 식당은 2대 사장 이두연씨(75)와 그의 딸들인 오지희(46)·오미희씨(43)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커다란 가마솥 두개에 보기만 해도 얼큰한 수구레국밥이 펄펄 끓고 있다. 이 사장은 깨끗하게 손질한 수구레와 직접 만든 선지만 있으면 맛이 난다고 설명한다.

“수구레·선지·대파에 고춧가루·소금 기본 양념만 넣어도 깊은 맛이 나요. 왼쪽 가마솥에서 딴딴했던 수구레가 아주 부들부들해질 때까지 1시간 이상 끓인 후 오른쪽 가마솥으로 옮겨 육수가 우러나게 계속 끓여주는 거예요. 옛날 좌판에서 팔 땐 우거지도 넣었는데 그땐 수구레도 귀하니까 나물로 양을 채운 거죠.”

오래된 식당이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찾아온다. 수구레국밥을 처음 먹어본 이들은 “수구레가 뭐예요?” “수구레는 처음 먹어보는데 냄새는 안 납니꺼?”라며 걱정 어린 질문을 던지지만 국밥을 비운 후엔 하나같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개않네요” 한다. 그 모습을 보니 맛이 더욱 궁금해진다. 수구레국밥은 주문과 동시에 커다란 국자로 가마솥을 깊게 휘휘 저은 뒤 오목한 뚝배기에 담는다. 마무리로 간마늘 한 큰술, 잘게 썬 땡초(땡고추) 한 큰술을 수북하게 얹어 낸다. 선지와 수구레가 국물 위로 고개를 드러낼 만큼 푸짐하다. 먼저 국물 맛을 본다. 과연 대구의 맛이다. 맵고 얼큰하고 강렬하다. 수구레는 지방질 같기도, 푹 삶은 도가니 같기도 한 모양이다. 입에 넣으면 부드럽게 씹히다가 끝엔 쫄깃한 식감이 느껴진다. 잡내 없이 고소한 육즙이 선지와 잘 어울린다. 수구레 식감을 다양하게 느끼고 싶다면 수구레볶음과 수구레무침을 맛보면 된다. 수구레볶음은 고춧가루 양념에 빠르게 볶아내 쫄깃한 식감이다. 수구레무침은 삶은 수구레를 그대로 썰어 채소와 함께 초고추장 양념에 무쳐내는데 힘줄처럼 식감이 오독오독하다.

펄펄 끓여낸 수구레국밥과 장터에 모인 사람들의 온기 때문일까. 기온이 차가워질수록 대구 현풍시장엔 훈훈한 공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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