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쁜 운동 없이 건강을 바라나요? 요행입니다...걷지 말고 당장 뛰세요!"
뇌를 치료하는 의사 러너가 22년 동안 달리면서 알게 된 것들
정세희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인터뷰
편집자주
내일은 오늘보다 맛있는 인생, 멋있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라이프스타일 담당 기자가 한 달에 한 번, 요즘의 맛과 멋을 찾아 전합니다.
3시간 38분 23초.
정세희(47) 서울대 의대 재활의학교실 교수(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재활의학과 교수)가 미국 시카고마라톤에 2022년 출전해 세운 본인 최고 기록이다. 전공의 2년 차인 2003년 달리기를 시작한 뒤로 그는 22년간 멈추지 않았다. 거의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 천변을 약 10㎞, 1시간씩 달렸다. 지금까지 30회 이상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현재는 42.195㎞를 3시간대에 완주하는 준전문가 러너가 됐다.
정 교수는 요즘의 러닝 붐이 반갑다. 운동, 특히 달리기가 몸과 마음에 주는 긍정적 효과를 너무 잘 알아서다. 그러나 러닝이 유행이 되면서 반갑지 않은 일도 생겼다. 러닝의 A부터 Z까지 백가쟁명식 논쟁의 대상이 된 것이다. 완벽한 자세란 이래야 한다는 달리는 방법 등 러닝 초보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카더라'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 선수가 논란 종결자로 유튜브에 등판할 정도였다.
그래서 의사이자 러너인 정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정 교수는 "잘못된 조언 때문에 시간과 노력, 돈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착지법 같은 테크닉을 고민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달리는 게 이득"이라고 말했다. '달리기 예찬론자' 정 교수에게 그처럼 오랜 기간 즐겁고 건강하게 달리는 비법을 물었다.
Q. 달리기의 매력이 뭘까요.
"달리기는 몸에도 좋지만 정신 건강에도 굉장히 좋아요. 활력이 생기고, 일상에서 일희일비하는 일이 줄어듭니다. 달리는 중에 질문도, 답도 떠올라요. 저는 가급적 야외 달리기를 추천하는데요,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생각도 정리되고 스트레스도 사라지거든요.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들이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Q. 블로그나 책 등을 통해 달리기가 뇌 건강에 좋다고 하셨는데요.
"달리기가 뇌에 좋다는 건 수많은 연구로 이미 밝혀져 있는 거예요. 뇌세포가 퇴화되는 파킨슨병은 대표적인 치료가 약물 치료거든요. 그런데 약물 치료로도 죽는 뇌세포를 막지 못해요. 약물은 뇌세포에서 분비하는 물질이 적어지니까 그 물질을 약으로 넣어주는 거예요. 안경 쓰는 거랑 똑같은 거죠. 눈을 근본적으로 좋게 하지는 못하지만 렌즈를 덧대는 것과 같은 대증적 치료거든요. 그런데 파킨슨 환자들에게 달리기를 시키면 뇌세포의 퇴화가 줄어요. 약물 치료는 병의 진행을 못 막아도, 유산소 운동은 병을 지연시키는 거죠."
Q. 꼭 달리기가 아니어도 되겠네요.
"네. 하지만 달리기는 러닝화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바로 시작할 수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어렸을 때 모두 뛰어다녔고 인류 역사를 봐도 수백만 년을 달렸습니다. 누구든 배우지 않아도 달릴 수 있다는 게 달리기의 매력이에요."
Q. PT 같은 근력 운동을 하면, 유산소 운동은 안 해도 될까요.
"그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건강 지표는 '심폐 체력'입니다. 이건 유산소 운동을 통해서만 기를 수 있어요. 근력 운동이 멋진 몸을 갖게 해 줄 수는 있겠지만 '보기 좋은 몸'보다는 '건강한 몸'이 되길 원한다면 유산소 운동은 꼭 하시기를 권합니다."
Q. 달리기하면 무릎이 나간다는데요.
"그러면 저는 속으로 '누가 할 소리'라고 하죠. 물론 달리기를 할 때 몸무게 8배 정도의 부하가 무릎에 가해지는 건 맞아요. 하지만 본인의 근력이 충분하다면 그 정도 체중은 견고히 버티거든요. 오히려 달리기는 관절에 매우 좋아요. 달릴 때 강화되는 허벅지, 엉덩이 근육이 무릎 관절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거든요. 연구 결과로도 증명이 됐어요. 달리기를 하지 않은 사람이 꾸준히 달렸던 사람보다 무릎의 퇴행성 관절염 위험이 3배 더 높았습니다. 무릎에 안 좋은 운동은 방향 전환이 많고 급감속, 급가속하는 테니스, 축구, 농구와 같은 운동이에요."
Q. 하루에 만 보씩 걷습니다. 이 정도 운동량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아니요. 일반인에게 걷기는 운동이 안 됩니다. 우리가 환자의 사망률을 살필 때 당뇨, 암 같은 여러 지표를 고려하잖아요. 그런데 그보다 중요하게 보는 게 '심폐 체력'입니다. 심폐 체력이 좋으면 건강 수명이 길어져요. 걷기는 이 심폐 체력을 기르는 데 전혀 기여를 못 해요. 심폐 체력이 좋아지려면 숨이 차고, 심장이 빠르게 뛰고, 땀이 나는 운동을 해야 해요. 일반인에게 걷기는 칼로리를 소모했다, 그 시간 동안 앉아 있지 않았다는 수준 정도예요. 걷기가 운동이 되는 경우는 80대 이상 고령자 정도예요."
Q. 뭐든 과하면 독이 된다는데 마라톤은 괜찮을까요?
"힘든 운동을 많이 하면 오히려 위험하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2015년, 미국 국립암센터가 66만여 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중·고강도 운동을 가이드라인(적정 수준)의 3~5배로 했던 사람은 아예 하지 않은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0.61배로 줄었고, 10배 이상 했던 사람의 사망 위험도 0.69배로 여전히 낮았어요. 2023년 연구에서도 전체 사망률, 심혈관계 질환 발생률, 암 발생률 모두 운동을 많이 하면 할수록 계속 더 낮아진다는 사실이 보고됐습니다."
Q. 러닝 클래스에서 자세를 배우고 싶어요.
"'자세 교정' 러닝 클래스에 간다는 건 정말 권하지 않습니다. 운동은 정답이지만 운동에는 정답이 없어요. 이상적인 자세라는 게 있긴 하지만, 세계적인 선수들 자세도 다 제각각이거든요. 왜냐하면 그 사람의 근력, 운동 경험, 나이, 신체가 다 다르고 그 사람이 그 조건에서 낼 수 있는 최선이 달리기 자세로 나오는 거거든요. 어떤 사람의 근력과 심폐 체력이 안 좋다면 자세도 안 좋을 수밖에 없어요. 자세는 그저 부산물일 뿐입니다. 그것을 바꾸면 그 사람한테는 그게 비경제적인 달리기가 되는 거예요. 에너지 효율은 떨어지고, 부상 위험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팔치기(팔 동작), 미드풋이냐 리어풋이냐 생각하지 마시고 편한 대로 하시면 됩니다."
Q. 하지 말아야 할 자세는 없을까요.
"보폭을 넓게 하면서 위아래로 수직 진폭이 큰 주법이나 다리를 과도하게 앞으로 내는 '오버스트라이드(overstride)'는 피하는 게 좋습니다. 이런 자세는 무릎에 좋지 않고 에너지 효율이 떨어집니다."
Q. 달리기할 때, 카본화는 필수일까요?
"초보자들에게 카본화는 과해요. 마치 운전면허 땄는데 제일 좋은 세단 사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카본화는 지면 반발력을 극대화해서, 똑같은 거리와 시간을 달려도 다리 피로도를 훨씬 줄게 만들어 줍니다. 에너지 효율을 높여 주니까 기록도 단축되고요. 카본화 자체는 문제가 아니에요. 저도 카본화를 신습니다. 하지만 신는 사람의 근력이나 자세가 아직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카본화를 신으면 활용도 못 하고 부상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서 권하지 않습니다. 초보자라면 일반 러닝화로도 충분해요."
Q. 운동과 함께 식단도 병행하려 합니다. 어떤 음식이 몸에 좋을까요?
"환자분들이 '제 몸에 좋은 음식이 뭐예요?'라고 자주 물으세요. 그런데 음식으로 건강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리고 정확히는 '음식'이 아니라 '식사'라고 하는 게 맞죠. 물론 내가 먹는 행위, 식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중요해요. 과식하지 않는다, 가공식품을 먹지 않는다, 단순당을 피한다와 같은 것들은 신경 쓰셔야죠. 하지만 '토마토나 블루베리가 몸에 좋나요?'와 같은 유의 접근은 건강에 도움이 안 됩니다.
음식보다 훨씬 중요한 건 생활습관, 운동이에요. 왜냐하면 식단은 내가 뭘 먹을 건데, A를 먹을 거냐 B를 먹을 거냐의 차이죠. 별로 수고롭지 않아요. 이왕이면 좋은 것을 먹어서 내가 그것으로 어떻게 이득을 보겠다는 얄팍한 심리가 담겨 있죠. 하지만 건강은 쉽게 얻어지지 않습니다. 힘들고 불편하지만 참고 노력을 해야 해요."
Q. '혼뛰' vs '크루', 무엇을 추천하시나요?
"저는 혼자 뛰어요. 하지만 같이 뛰면 훨씬 재미있어요. 혼자 뛰면 힘들다는 것을 계속 자각하거든요. 그런데 같이 뛰면서 이야기하다 보면 주의 집중력이 신체적 힘듦에서 다른 데로 넘어가요. 그래서 훨씬 쉽죠. 러닝 크루가 욕먹기도 하지만, 저는 어떤 식으로든 더 많은 사람이 달리고, 옆 사람한테 권하는 이런 분위기가 좋습니다."
"달리세요" 내 몸이 기억합니다
최근 책 '길 위의 뇌'를 낸 정 교수는 책에서도, 인터뷰에서도 '숨 가쁜 운동' 없이 건강을 기대하지 말라고 일침을 날렸다. 그는 진료실에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직접 바른 자세와 틀린 자세를 시범 보이며 '운동 처방'을 할 만큼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정 교수는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크기의 뇌출혈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보여주는 임상 경로가 너무 다르다"며 "그건 발병 전 생활습관과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환자분들이 약을 먹어서, 좋은 기계가 있으면, 내 몸이 어떻게 치료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람 몸은 절대 그런 성격이 아니에요. 하다못해 30년 전에 운동했던 것도, 과거에 술 마시고 담배 피웠던 것도 우리 몸에 다 남아 있어요. 이런 습관이 회복을 가릅니다. 어떤 병이 생기기 전에 '운동 저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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