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아프면 언제든 집으로… ‘가족이 우선’ 사내 문화 덕이죠

윤상진 기자 2024. 11. 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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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아이 낳게 하는 일터] 삼성전자

지난달 31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삼성 디지털시티(수원 사업장) 제4 어린이집. 3층 강당에서 흰색 상의와 청바지를 맞춰 입은 영유아 100여 명이 차례대로 ‘수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린이집의 한 해 과정을 마무리한 것을 기념해 찍는 사진이다. 이곳은 삼성전자가 올해 새로 문을 연 사내 어린이집이다. 제4 어린이집에만 300명이 다닐 수 있고, 기존 1~3 어린이집까지 합친 정원은 1200명으로 전국 최대 규모다.

지난달 31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삼성디지털시티에 있는 삼성전자 제4 어린이집 놀이 공간에서 직원들이 자녀와 함께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삼성디지털시티에 있는 사내 어린이집(4곳) 정원은 총 1200명 규모로, 희망하는 직원 모두 자녀를 보낼 수 있다. /박상훈 기자

올해 제4 어린이집이 생기면서 삼성 디지털시티에 근무하는 직원(약 3만2000명)은 희망한다면 모두 사내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사내 어린이집의 운영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갑작스럽게 야근을 해야 하거나,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경우에도 부담 없이 자녀를 맡길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영유아부터 대학생까지 직원들의 자녀를 ‘토털 케어’ 해주는 것이 삼성전자 가족 친화 제도의 특징이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자녀 학자금 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영유아는 회사 안에 대규모 어린이집을 지어 부모가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게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임직원의 일·가정 양립이 회사 경쟁력에도 큰 영향을 준다고 보고, 다양한 지원 제도를 선제적으로 도입해왔다”며 “임직원의 삶의 질과 근무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제도와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에서 전략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선예연(36)씨는 최근 초교 2학년 아들의 한자 참관 수업에 참석했다. 오전에 출근해 업무를 보다가, 오후에 2시간 정도 자리를 비우고 다녀왔다. 따로 연차를 내거나 근무 시간 변경을 위해 결재를 받지도 않았다. 상사와 동료들에게 말로 양해를 구한 것이 전부였다. 못다 한 업무는 학교에 다녀온 후 끝냈다. 선씨는 “출퇴근 시간은 물론 근무 시간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제도 덕에 아이들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삼성전자가 운영하는 가족 친화 제도 중엔 법으로 정해진 기준보다 수혜 범위가 넓거나, 법에 정해져 있지 않은 혜택이 많다. 육아휴직이 대표적이다. 현재 법정 기준은 아이 1명당 1년까지 쓸 수 있고 내년 2월부터 최대 1년 6개월로 늘어나지만, 삼성전자에서는 아이당 2년까지 사용 가능하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근무 시간을 줄여서 일할 수 있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도 자녀당 2년까지 쓸 수 있다(법정 1년).

무엇보다 직원들은 2015년부터 시행된 ‘자율 출퇴근제’ 이후 육아가 수월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삼성전자엔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다. 매달 약 160~170시간의 필수 근무 시간만 채우면 된다.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업무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오후 12시 넘어 출근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이용해 많은 직원이 자녀의 등하교 시간에 맞춰 출퇴근을 한다. 자연스레 가족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도 생겼다고 한다. 이종달(37)씨는 “맡은 일을 제대로 하고, 동시에 가정에도 충실하자는 인식을 (직원들이) 갖게 됐다”고 했다. 급하게 자녀를 병원에 데려가거나 자녀의 학교 행사가 있는 경우에도 부서장이나 임원들이 “가족 일부터 보고 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덕에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떠나는 직원들도 늘고 있다. 삼성전자의 육아휴직자는 2021년 3935명에서 작년 4477명으로 13.7% 늘었다. 2년 이상 시간을 갖는 직원도 적지 않다. 3살 아들과 2살 딸을 둔 정송희(33)씨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합쳐 2년 6개월을 연달아 쉬고 최근 사무실로 복귀했다. 정씨는 “휴직할 때 팀 동료들과 상사가 ‘늦게 와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돌아오라’며 격려해줘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했다.

2022년부터는 6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사용한 직원들의 직장 재적응을 돕는 ‘리보딩(Re-boarding·재승선)’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복직 1개월 전부터 직무 역량과 관련된 강의를 온라인으로 듣고, 육아휴직을 먼저 사용한 선배 사원들이 강사로 나서 ‘복직 팁’을 알려주기도 한다. 앞서 복귀를 경험한 선배 강사들이 ‘다시 입사했다는 생각으로 3개월을 다니면 적응이 된다’며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자녀 대상 회사 지원 제도는 어떻게 사용하면 좋은지’ 등의 정보도 전수해준다.

인사팀에선 모든 휴직자에게 반기별로 한 번씩 회사 소식을 담은 ‘뉴스 레터’를 이메일로 보내주는데, 변경된 회사의 제도나 회사 관련 뉴스들을 미리 접하게 해 재적응을 돕자는 취지다. 1년 이상 육아휴직한 직원은 복직 후 6개월까지는 주 3회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시간 단위로 쓸 수 있는 ‘리보딩 휴가’도 6일이 지급된다. 자녀에게 많은 손이 가는 시기인 만큼, 회사 생활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육아휴직 사용 후 회사로 다시 돌아오는 복귀율은 작년 기준 남성 97.7%, 여성 99%에 이른다.

최근엔 남성 직원들한테도 육아휴직이 장려되는 분위기라고 한다. 10년 차 직원 남장현(38)씨는 “입사 초기만 하더라도 남성 직원이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면 ‘남자가 무슨’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았지만, 최근엔 이런 분위기가 아예 없어졌다”고 말했다. 오히려 남성 임원이 직원들에게 ‘아이와 유대를 쌓을 수 있는 시간을 놓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경우도 생겼다는 것이다. 회사 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은 2021년 25.3%에서 작년 29.1%로 올랐다.

/수원=윤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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