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34] 나는, 날으는, 나르는
작아서 더 그럴 수 있었을까. 폴짝 뛰어오르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스파이크 넣고 내려앉을 때도 사뿐했지 아마. 참새가 톡톡 튀며 옮겨 다니듯. 그 ‘작은 새’ 조혜정씨가 아주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배구 선수로 한창 이름 떨칠 때 신문·방송에서 ‘날으는’이라고도 했는데. ‘나는’이라 하면, 공중에 떠서 움직임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일인칭 대명사 ‘나’에 조사 ‘는’이 붙은 말로 헷갈릴까 봐 그럴 법도 한 시절이었다.
동사나 형용사 어간의 마지막 음소(낱소리) ‘ㄹ’이 어떤 환경에서 탈락하는 현상을 예전엔 ‘ㄹ 불규칙 활용’이라 했다. ‘다물다/다무니 밀다/미세 살다/삽디다 이끌다/이끄오’처럼 ‘ㄴ, ㅅ, ㅂ, 오’ 앞에서는 무조건 ㄹ이 사라지므로 요즘은 불규칙이 아니라 그냥 ‘ㄹ 탈락’이라 한단다. ‘날다’도 그래서 ‘나는’이 옳다. ‘낯설은, 잠들은, 녹슬은’이 아니라 ‘낯선, 잠든, 녹슨’ 하듯이.
ㄹ이 탈락하는 조건이 아닐 때 ‘으’를 넣는 잘못도 흔하다. ‘등을 밀으려고, 시간이 줄으므로’ ‘귀가 멀을지 몰라’…. ㄹ 아닌 받침으로 끝난 어간에 ‘려고, 므로, ㄹ지’ 같은 어미가 붙으면 매개모음을 쓴다(닫으려고, 같으므로, 좋을지). 유독 ㄹ 받침만 예외여서 ‘밀려고, 줄므로, 멀지’가 맞는 표기다.
그럼 ‘놀음, 얼음, 졸음’도 잘못 아닐까. 이 말들은 파생 접미사 ‘음’이 붙어 아예 명사로 굳어버린 예외. 원래대로 매개모음 없이 쓰는 명사형(동사나 형용사지만 명사 노릇을 하게 만드는 활용형)과는 다르다. 결국 ‘놀음을 실컷 즐기는/실컷 놂은 즐겁다’ ‘얼음이 보이는 강/강이 얾을 보면서’ ‘졸음 운전은 위험해/운전하면서 졺은 위험해’로 구별할 수 있다.
‘나는 작은 새’의 부음(訃音)을 살피다 ‘날으는 원더우먼’이 생각났다. 어쩌면 이들은 ‘나르는 작은 새’요 ‘나르는 원더우먼’이었는지 모른다. 한쪽은 자부심과 희망, 다른 쪽은 환상과 통쾌함을 날라다 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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