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 교육받고 AI교과서로 수업하라니”...졸속 도입 움직임에 교사들 멘붕

유주연 기자(avril419@mk.co.kr), 권한울 기자(hanfence@mk.co.kr), 이용익 기자(yongik@mk.co.kr) 2024. 11. 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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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AI 탑재된 디지털교과서
내년 초중고 단계적 도입

예산 3조 투입 사업인데
부실 도입으로 혼란 우려

통신망·관리인력 태부족
학부모 “문해력 떨어질라”
교육부 “속도 조절할 것”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가 12월에 임박해 나옵니다. 학년말 업무에 방학이 이어지니 준비가 제대로 될 지 의문이에요. 담임 교사 배정은 보통 2월 20일 전후로 이뤄지니 3·4학년을 배정받은 다수 선생님들은 일주일 남짓 연수 받고 AI디지털교과서 수업에 투입되야 합니다.” (서울시 A초등학교 교사)

7일 교육부에 따르면 내년 3월부터 전국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영어·수학·정보 과목에 AI 디지털교과서가 전면 도입된다.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까지 넉 달이 채 남지 않았지만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준비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디지털교과서는 인공지능 기능을 바탕으로 학생의 수업 참여율 등 개별 수준을 파악해 수준에 맞는 문제를 주고 다양한 학습 자료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를 위해 기기구입 등 인프라스트럭처 확충에 1조2000억원, 교과서 구독료에 향후 4년간 최소 1조90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정되는 등 총 3조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다. 하지만 졸속도입으로 인해 막대한 예산이 낭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우선 AI 디지털교과서 검정 심사가 제작 기간 연장 등을 이유로 당초 계획보다 3개월 뒤로 밀리면서 교사들의 준비 기간이 반토막이 났다. 검정 심사를 거쳐 교실에서 사용될 디지털교과서는 이달 말에나 발표될 예정이다.

교육부가 올해 8월까지 약 9000여명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교육 관련 연수를 실시했지만 실제로 내년에 도입될 디지털교과서가 준비되지 못해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진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1년차 초등학교 교사 문정환씨(가명)는 “교육부 연수를 듣고도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교사로서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답을 얻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런 지적이 높아지자 교육부는 올해 말까지 2000여명의 교원에 대해 추가 연수를 실시하고, 각 학교별 선도교사를 통해 교사들을 지도하도록 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아울러 2월말 학년 배정을 완료한 교사들을 대상으로 약 6시간의 디지털교과서 관련 연수도 제공한다 하지만 “6시간 속성교육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는 반발의 목소리가 크다. 서울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21년차 교사는 “방학 때는 교사들의 연수 참여율이 높지 않은 편”이라며 “몇 학년을 배정받게 될지는 결국 2월 말께 결정되는데, 연수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고 말했다.

교육과정 개정 시기와 맞물린 초등학교 현장의 혼란은 특히 심각하다. 초등학교 3·4학년은 2022 개정교육과정이 내년에 첫 적용되는 학년이기 때문에 새 교육과정 준비에만도 시간이 많이 드는 상황에서 디지털교과서 도입까지 촉박하게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디지털교과서 포비아‘가 확산하고 있다. 충분한 검증 없는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자칫 학생들에게 집중력·문해력 저하, 시력 문제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한 초등학생 학부모는 “집에서는 스마트폰이나 테블릿과 같은 디지털기기를 일부러 멀리하게 하고 책을 가깝게 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디지털교과서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날까봐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교사 개개인의 디지털 역량에 따라 디지털교과서 활용 수준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디지털 기기에 대한 교사의 이해도나 활용능력에 따라 교육의 질의 크게 차이가 날 것이라는 우려다. 최악의 경우엔 디지털 문제집 수준의 보조자료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통신망을 비롯한 인프라 문제도 첩첩산중이다. 세계 최초 AI디지털교과서 도입은 통신망과 관련 인력 등 인프라 구축을 전제로 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디지털 교과서 활용에 필요한 트래픽을 위해 통신망을 개선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달 중 설치 사업자를 선정하고 곧바로 설치 공사를 하더라도 내년에야 공사가 끝날 전망이다. 더욱이 망 구축 후 안정화 테스트까지 하려면 추가적인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일반 가정 인터넷과 달라서 공사 후에도 최적화 작업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관리 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교육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 17개 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에 보급된 기기는 총 397만 7705대지만 관리할 전문 인력은 823명에 불과하다. 이 중 콜센터 인력(67명)을 제외하면 756명에 그친다. 산술적으로 1인당 평균 5262대에 달하는 기기를 관리해야 하는 셈이다. 디지털기기 유지보수를 담당할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학교 현장 교사들이 본래의 교육 외 업무로 고장 난 기기 수리까지 떠맡는 이중 부담을 겪고 있다.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앞두고 현장 교사는 물론 시도 교육감들의 우려가 커지자 교육부는 “2026년 도입 교과목 수를 조정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영어, 수학, 정보 교과의 디지털교과서 효과성은 세계적으로 많이 검증돼 내년도에 무리 없이 적용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있다”면서도 “2026학년도 이후는 전문가 검토와 시도 교육청 협의를 거쳐 조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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